똥 누고선 반드시 밑을 닦고 깨끗하게 일어설 수 있어야!
똥 누고선 반드시 밑을 닦고 깨끗하게 일어설 수 있어야!
  • 대행 스님
  • 승인 2018.11.2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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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활하면서 모든 걸 이 한마음으로서 조복을 받아야!

(지난 호에 이어서)

하여튼 여러분이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우리가 앞으로 남들에게도 홍보를 해서 이 어려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그런 진로를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러분도 한 분 한 분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려운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마음 가난한 사람, 부잔데도 가난한 사람 또 정말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그렇게 하세요. 나도 여러분을 위해서 여북하면 몸을 뒤틀고 못 쓰는 사람 또 단전을 하다가 잘못되어서 가정 파탄이 나고 모두 못 살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한 집이라도 알게 하면 좋은 일인데, 정말이지 이 공부를 여러분이 하면서 얼마나 좋게 사는지 나는 그거 생각만 하면은 흐뭇하고 또 내려다보면 ‘아휴, 모두 나 예전에 모를 때 모습이구나. 저렇게 모자라게 사는구나.’ 하고 씁쓸하게 침을 삼키죠.

모든 것은 당신이 있길래 세상이 있고 상대성 원리가 생긴 거니까,
모든 거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거 당신에게 모든 거를 맡겨 놓고 그래야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면서 새 입력이 들어가면서 새로이 살 길이 생기는 거죠.

하여튼 그저 하치 못하다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에 옮기면서 생활 자체가 그대로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니까, 모든 것은 당신이 있길래 세상이 있고 상대성 원리가 생긴 거니까, 모든 거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거 당신에게 모든 거를 맡겨 놓고 그래야 입력이,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면서 새 입력이 들어가면서 새로이 살 길이 생기는 거죠. 여러분 중에 공부하는 데 질문할 게 있으면 질문하시고요, 그다음에 뭐, 아프니 어쩌니 하는 거는 그냥 평상시에 11시서부터 12시 반까지 이렇게 하니까 평상시에 오시고요.

대중 스님 가운데서 스님, 아직 1번은 말씀 안 하셨는데요.

큰스님 아이, 그것도 또 잊어버렸네. 하하하. 이 질문이 들어온 게 말입니다, ‘주인공 뿌리 너만이 잘 이끌어 줄 수 있어.’ 이러라고 내가 일렀거든요. 부처님께서는 말입니다, 때에 따라 곤충도 됐다 짐승도 됐다가 작부도 됐다가, 남자도 됐다 여자도 됐다, 아이도 됐다가 어른도 됐다 늙은이도 됐다가 별게 다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여여하시고 걸림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부처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도 이름은 이름일 뿐입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에요. 너라고 한들, 부처라고 한들,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들, 지장이라고 한들, 이름은 이름일 뿐인데 내가 그렇게 말해 드리는 거는 자기 중심 주는 자기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살던 자기기 때문에, 이것이 밀접하기 때문에, 너라고 하는 게 더 정답고 더 밀접하게 들어가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진실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너라고 한다고…, 왜 이런 게 있죠. 자식이 귀하면은 손주가 귀하고 귀엽고 그러면 “어휴, 요놈의 자식!” 그러고서 요렇게 궁둥이를 쳐 주는 수도 있죠. 그게 욕입니까? 그건 욕이 아닙니다. 또 “아! 이 문둥이 같은 놈의 새끼! 왜 이제 왔어?” 하고 그럴 때 그것이 욕입니까? 욕 아닙니다. 이름이 욕일 뿐이지 그 속에는 뜨거운 정열이 포함된 이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얼마나 치열하게 믿고 얼마나 밀접하게 만들기 위해서 ‘너만이, 너만이 할 수 있다.’ 하고 이렇게 하라고 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게, 그게 못된 이름입니까? 아주 깔보고 그냥 뭉개는 이름입니까?

자기하고 둘이 아닌 그걸 만들기 위해서 그냥 ‘너만이 할 수 있잖아!’ 하고 할 때에 문제는 달라지죠. 그게 알아지게 되면, 포함해서 알아지게 되면 그때 가서는, 때에 따라서는 참 크나큰, 정열적이고도 크나큰, 뭐 어떻게 갚을 수가 없으리만큼 될 때에, 자기 마음이 스스로서 존경이 되고 스스로서 알게 되고 스스로서 행하게 될 때에 ‘아하! 이거는 부처님이라고 해도 내 몸뚱이 전체가 네 것이지 내 것이 하나도 없구나! 내가 사는 것도 없고 내가 하는 것도 없고, 내가 말하는 것도 없고 내가 보는 것도 없고, 내가 듣는 것도 없구나! 그러니 내가 나라고 할 게 하나도 없구나! 어, 그러니까 당신 거야.’ 이렇게 되겠죠.

그러니까 그 모두를 잘 아시고, 너라고 하는 것이 너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거는 뭐, 허허허, 참, 생각하면 극치적인 믿음을 가지라고 한 말입니다, 극치적이게. 아주 진짜로 형제간에도 진짜로 “너만은 할 수 있어.” 이러고 위로를 해 줄 때가 있죠. ‘너만은 할 수 있잖아!’ 하고 그럴 때 진정으로 아주 진실하게 들어가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거는 못된 이름도 아니고 잘된 이름도 아니고, 그 가운데에 뜨거운 정열이 들어간다는 거 아셔야 됩니다. 예, 그러고요, 그럼 말씀하세요.

질문자1(남) 스님,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마음에 불을 밝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마음선원에 처음 입문했을 때 스님께 질문드리는 그 마음과 지금 제 마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참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질문 드린다는 자체가 참 부끄럽습니다마는 많은 분들이 같이 더불어서 공부한다는 마음에 질문 두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네가 열 마디의 진실한 말을 하였을지라도 한 번의 침묵만 못하다.” 하셨습니다. 그 말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지금 날더러 뭐라고 그랬죠? 전자에 질문할 때와 지금은 뭐라고 말로 할 수 없으리만큼 감사하다 이랬죠?

질문자1(남) 예.

큰스님 나도요, 부처님의 그 뜻과 이 세상 돌아가는 이 모든 뜻을 말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것도 어떡하면 표현을 좀 해 줄까 해서 그냥 하는 거지 진짜로는 가고 옴도 없이 가고 오고, 온통 그냥 일어나는 줄 모르게 일어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그냥 뭐, 모두 그냥 빛보다 더 빨리 돌아가고 온통 이러는데 이거를 뭘로 말을 해요, 이거를. 여러분이 이 도리를 알아야만이 아마 이해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번에, 한 번 침묵만 못하다 이러는 거는 열 마디 말로 아무리 해 봤던들 소용이 없고 한 번 생각의 침묵이 그렇게 우주를 들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선원에 와 가지고 많은 스님들 말씀을 듣고는 저도 처음에는 도를 이루어 보려고 상당히 집착심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 현재 제 마음은 이 마음공부 하면서 한마음 공부는 단, 도도 아니요, 또 내가 잘살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편안함도 아니고, 말로 굳이 표현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맹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올바르게 먹고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큰스님 올바르게 그냥 생각하시고 살면요, 이 댁의 몸뚱이 속에 있는 의식들이 다 댁의 생각을 따라 줘서 한 침묵이 한생각이 돼서 한생각의 법이 돼요. 그래서 법이 됨으로써 그거를 이름해서 법신(法身)으로서 움죽거리는 거를 뜻하죠. 그걸 중용이라고 하죠.

그러니 모두 공부하시는 분들이 여기 와서 공부하는 질문을 할 때 자기가 알았더라도 남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하는 것도 그게 질문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든지 질문하실 분이 있으면 질문하시고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 말씀한 것 그것을 잘 생각해서 자기가, 자기가 터득을 해야지 남이 말을 하는 걸 듣고 그런가 보다 이렇게 그냥 이해만 해 가지곤 안 돼요. 냇물이 흘러가는데 끝이 없다 이러니까 끝이 없는 걸로만 그냥 알지 말고 진짜로 그 끝이 없는 걸 집어먹어 봐야 안단 얘깁니다. 나는 똥 누고 밑 안 씻는 사람은 끝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똥을 누고선 반드시 밑을 닦고 깨끗하게 일어설 수 있는 그러한 분들이라면 앞으로 성취를 꼭 하실 겁니다.

질문자1(남) 스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저한테 말씀해 주신 감로법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질문자2(여) 큰스님, 감사드립니다. 아버님이 운명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과 스님께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사를 초월하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일에 처하니까 그렇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고통스러워하실 때마다 정말 맨 처음에는 고통으로 보니까 참 고통스러웠는데, ‘한마음 주인공에 한자리 하시기 위해서 저렇게 산고를 겪고 있으시구나!' 그렇게 한마음 돌리니까 참 편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언니들이 큰스님 친견하고요, 그날 바로 편히 몸 벗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8형제인데요. 그 당시에 맨 큰오빠가 교도소에 가 있었어요. 이렇게 국토의 버려진 땅을 유용하게 썼는데 현행법으로는 위법이 되었나 봐요. 그래서 6개월 동안 있는 사이에 아버님이 굉장히 위독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서 ‘주인공, 당신이 있다면, 그 80평생을 사신 아버님께 장남 못 보고 가시게 하면 서로 한이 되니까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그러고 탁 맡겼거든요.

그랬는데 나중에 오빠가 나오고 나서 얘기를 들어 보니까 서류가 한데 뭉쳐지면 그게 죄가 과해 가지고 입건이 되고요, 서류가 나누어지면 죄가 약해져 가지고 이렇게 풀려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서류가 자연스럽게 풀려졌다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그건 저만 알고 있었죠.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곤 나중에 아버지하고…. 그런데 자식하고 부모지간이란 참 그렇게 착이 많구나 하는 걸 느낀 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경을 헤매시다가도 정말, 정말 곧 돌아가실 것같이 생겼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큰오빠 교도소에서 나오는 것 보고 그때 의식 잃으시고 한 삼 일 효도하실 수 있게끔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요, 저희 8형제 중 6형제는요, 한마음 공부를 다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큰오빠하고 막내오빠가 기독교거든요. 그래서 오빠하고 3일 동안 계속 아버지 이쪽 손 저쪽 손 잡고 오빠랑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대한 얘기하고 불교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저도 제 자신이 깜짝 놀란 게 그 성경책에 있는 말씀을 제가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또 오빠도 교도소에서 6개월 동안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나 봐요. 그래 가지고 둘이 얘기를 하니까 한마음이 그대로 통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가장 그 기독교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문제되었던 게 “왜 우리가 갈고 닦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없을까?” 그러면서 오빠한테 그걸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제 마음에서 ‘아! 우리 부처님도 내가 부처라고 하면서도 내가 부처라고 내세우면 이미 부처가 아니라고 그랬는데 이건 말이구나. 진리는 하나구나.’ 그러면서 어렴풋이나마 글자를 보지 말고 백지를 보라는 것을 좀 느꼈습니다.

그랬는데 그 장례식 절차가 문제가 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 세례를….

큰스님 그래서 그렇게 관했더니 오빠가 아버질 만나고 돌아가셨소?

질문자2(여) 예.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영결식장에서요, 저희가 이 공부를 안 했더라면 어쩌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정말 하나가 돼 가지고 찬송가 부를 때 불러 드리고 모든 그런 절차를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초상집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잔칫집같이 그렇게 화목하게 이 일을 끝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전부 예배 절차도 다 하고 우리 한마음 선원 광주지원 스님들께서 시다림도 해 주시고 그랬거든요. 모든 걸 그렇게 해서 하나로 돌아갔는데 마음에서 의정이 나는 게, 물론 한마음으로 다 돌아가는데, ‘형식과 마음이 둘이 아닌데 어떻게 형식이 틀리는데 마음이 하나로 돌아갈까?’ 그게 의문이 생깁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큰스님 제각기 다, 일체 만물만생이 다 다르죠. 모습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고 모두가 달라요. 그러나 다른 그 자체는, 예를 들어서 비유하건대 불기둥이 땅을 딛고 하늘을 꿰고 있다고 합시다. 그 불기둥을 중간에 끼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수레바퀴와 같은 거예요. 그러니 모두가 그 불기둥에 꿰여 가지고 돌아가는 건데 그 돌아가는 것마다 똑같은 게 없어요. 전부 불기둥에, 한 불기둥에 꿰여서 돌아가는 거는 동일하지만 이 수레가 제각기 돌아가는 거는 차원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모든 게 전부 다르게 돌아가요. 그러니까 제각기 돌아가면서도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로 돌아가면서도 제각기 돌아가요.

그러니 이것을 사람들이 다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생각을 낼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가져야죠. 내 몸뚱이를 생각해 보세요. 다른 걸 보지 말고 내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들을 한번 보세요, 하나로 돌아가지 않나. 그러면서도 모습 다르지, 의식 다르지 다 생명은 똑같은데 전부 달라요. 그리고 소임 맡은 것도 전부 다르고요. 안 그래요? 위장 공장, 간장 공장, 허허허, 대장 공장, 소장 공장, 방광 공장, 콩팥 공장, 식도 공장 그냥 모두 제각기 다 다르죠. 그래도 하나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 모든 의식 자체를 모아서 모두 다스리는 선장 말입니다. 자기 영원한 선장, 주인공 말입니다.

질문자2(여)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맛있게 밥상 차려 주셨기 때문에 맛있게 먹고 맛있게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치않다 하지마는, 이게 생활 속에서 다 쓰이고 생활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아주 좋은 문제들입니다.

질문자3(남) 저는 오늘 큰스님을 처음 뵙습니다. 그렇지만 큰스님께서 설법하신 책을 보고 수행한 지는 한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수행하면서 제 마음에 너무 와 닿아서 진짜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 지금 와서 이렇게 돌이켜 보니까 그건 또 새로운 하나의 탐심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놓고 맡긴다는 게 하나의 그 끊고 뭐를 얻으려는 그런 마음이 더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걸 느끼는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 볼 때 내가 찾아야 될 나, ‘참나’와 그다음에, 맡기고 놓아야 될 이 ‘가아(假我)’ 이 차이가 많이 혼동이 됩니다.

그렇게 하고 그 스님 말씀 중에 다 이렇게 듣고 이해는 가는데, 순간순간 저희들이 경계에 부딪칠 때, 즉 진심(瞋心)이라든가 심한 그 탐심에 부딪칠 때는, 그런 의식 이런 것도 되지도 않고 순간적으로 거기에 말려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러니까 정상적이 아니고 아주 심하게 번뇌가 많은 사람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는 마음은 안쪽으로 굴리면서 절도 많이 해 보고 또 참선도 좀 많이 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또 마음이 더 여여하고 좀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질문을 드리고자 하는 거는 찾아야 될 내 ‘참나’와 그다음에 놔야 될 ‘가아(假我)’와의 차이, 고다음에 마음은 안으로 굴리면서 절을 많이 하고 참선을 하는데, 그 수행 방법 두 가지를 제가 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큰스님 가아도 없고 참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기둥 하나가 이렇게 방편으로 있다면 굴레가, 거기에 끼고 돌아가는 굴레가 있습니다. 기둥은 움죽거리지 않지만 그 굴레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그 수레가 역시 댁에서 지금 살고 있는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일일이 가짜 나가 믿고 찾는 거, 또는 진짜 참나가 하는 거, 이렇게 따로따로 찾지 마세요. ‘주인공!’ 했으면요, 그 기둥째, 수레째 내가 찾는 나와 더불어 같이, 지금 댁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수레에서 굴러 나오는 거와 같습니다. 수레에서 자꾸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댁에는 자꾸 수레에서 나오는 대로 그 수레에다 다시 집어넣는 겁니다, 지금. 아시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참선을 하고 또는 참나를 찾으면서 절을 하고 이러는 것만 그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평상시에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뭐 똥 누고 싶으면 똥 누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럴 때 그냥 그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닥치는 대로 가는 그 자체가 바로 참선이자 그냥 도예요. 그러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그대로 하시란 말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앉아서 참선할 사이가 없는데도, 시간이 없는데도 참선한답시고 시간을 내서 앉았다면 그건 참선이 아니에요. 진짜 참선이라는 것은, 똥 누면서도 진짜 진실히 돌아간다면 이거는 참선이 돼서 그게 공덕이 되는 거고요, 공심(共心)으로 돌아가는 게 공덕이에요. 공심으로,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한마음으로 움죽거리고, 한마음으로 먹고, 한마음으로 살고, 한마음으로 용을 하고, 모두 이러는 것이 그대로 공덕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고 이렇게 살고 이런다면은, 자기를 보기까지 자기가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직선적으로 들어가세요. ‘그냥 생활 자체가 당신이 보고 듣고 하고 만나고, 식구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사랑하고 돈 벌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당신 주인공 뿌리에서 나오는 거니깐.’ 하고 거기다가 다 맡기고 믿고 일임하고, 그리고 꺼내 쓸 때는 거기서 또 꺼내 쓰고 이렇게 하세요. 아까 얘기 들으셨죠? ‘어, 아드님을 꼭 만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도 주인공 너밖에 없다.’ 할 때 아드님이 나와서 사흘을 지내고 난 뒤에야, 같이 계시다 돌아가셨다고요. 어때요? 이것이 ‘우연히’ 같죠? 우연히도 없고, 이건 우연히라는 건 더더욱 없어요. 내가 그냥 생각하고 사는 게 그대로 법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얘기했죠. 아, 이성계가 꿈을 다섯 가지를 꿨죠. 그리고 꿈을 꿀 때에 너무나 기막힌 꿈을 꿨죠. 색경이 그냥 와르르르 깨지는 거와, 꽃이 그냥 활짝 폈다 지는 거와, 대문에다가 허수아비를 매달아 놓은 꿈과, 까마귀가 까옥까옥하고 짖고 가는 꿈. 이렇게 모두 꿈을 꿨을 때에 기가 막힌 거 아닙니까, 그게. 그럴 때에 무학 대사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그런 얘긴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자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학 대사가 어떻게 꿈 해몽을 해 줬는지 아십니까? “당신 생각에 달려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꿈이요, 꿈꾼 것도 꿈이라. 그런데 그 가운데서 당신 생각하기에 달려 있으니까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 하고 나서 잠자코 있으니까 “야, 까옥까옥 짖는 그 까마귀는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오.” 가옥이니까, 음. 하하하. “색경이 와르르르 깨지는 거는 주변의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는 꿈이요, 또 그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것은 열매가 맺는 꿈이요, 또 허수아비를 쳐다보는 거는 백성들이 다 쳐다보고 우러러보는 것이요.” 아, 요렇게 딱 말씀을 해 주니까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임금 노릇을 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한생각에 생활이 왔다 갔다 해요. 정말입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한생각을 해서 거기다가 맡겨 놓으면은 이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서 모두 사람들 그 마음속에 들어가서 조절을 하게 돼 있죠. 아, 이런 비밀도 내가 얘기를 하니 이거 야단났죠. 하하하.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자생중생을 항복을 받는다면은, 조복을 받는다면 보살로 화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응신(應身)이 돼서 모든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응해 주시느니라.”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모든 걸 이 한마음으로서 조복을 받아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이치를 우리가 실천하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3(남) 스님! 스님 설법 감사합니다.

큰스님 실천하면서 그걸 느끼면서 체험하면서 이렇게 가야지 언제 이놈의 거를, 이렇다고 하는 걸 배워 가지고 언제 실천하고 터득하겠습니까? 죽고 나서 또 죽고 또 죽고 그러는데. 하하하. 그러니까 미리 아주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합해서 그냥 해 버려야죠.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4년 11월 20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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