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경영 산문에 들다] 21. 사찰의 상업행위
[사찰경영 산문에 들다] 21. 사찰의 상업행위
  • 조기룡 교수
  • 승인 2018.11.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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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생산 간 선택은 원칙·실존의 고민

부동산 광고매체에 교회 매물이 넘쳐나고 있다. 교회매매 전문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교회매매에는 신도 수까지 계산되어 가격이 책정된다는 뉴스가 공중파의 유명 탐사 프로그램에서 보도되기도 하였다. 종교의 차이를 떠나 현시대의 종교인으로서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불교계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불교계 신문에는 사찰과 포교당 매물 광고가 지면을 차지하고 있으며, 온라인상에는 사찰매매 전문 사이트들이 존재한다.

재정부족, 폐사의 주원인
일부 사찰생산으로 재정 충족
재산 증대·영리 추구 경도 경계

종교시설 매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종교는 영리사업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기인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종교시설 매매가 영리사업으로 되는 것은 교회의 규모 즉 건축물의 크기와 신도의 수를 일정 부분 성장시킨 후 매매하여 수익을 챙길 때다. 이는 분명 종교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영리행위이다. 그런데 순수한 신앙심으로 전도 또는 포교를 하고자 종교시설을 건립하였지만 재정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만 하는 상황에 대해선 이해를 달리해야 한다. 불교적으로 설명하면, 전법교화의 순수한 원력으로 사찰과 포교당을 창건하였으나 현실적인 운영상의 문제로 폐사(閉寺) 혹은 매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선 비난이 아닌 분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찰이 문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의 부족이다. 그 원인에 대해선 신도의 감소 또는 사찰경영의 미흡 등 여러 가지를 들 수도 있으나 종국에는 재정의 부족으로 귀착된다. 여타의 조직운영과 마찬가지로 사찰의 운영에도 재정 즉 재화가 소요됨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혹자는 스님의 삶을 무소유라고만 여긴 채 사찰의 운영에는 세속적 고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분물(可分物)과 불가분물(不可分物) 그리고 이외 물건에 대한 율장의 소유 조항에 대한 적용을 떠나서, 스님의 삶이 무소유라고 하여도 사찰의 운영에는 상응하는 재화가 든다. 스님의 수행자로서 삶과 사찰의 살림살이는 상당부분 다른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하여, 한국불교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존재해왔다. 이판은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을, 사판은 사찰의 살림살이에 힘쓰는 스님을 지칭한다. 이사무애(理事無)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 스님들은 사(事)에 부딪혀 이(理)에 장애를 겪는다. 출가자라면 누구나 이판승으로서 수행자의 삶이 원칙임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군가는 실존을 위한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하기에 사판승의 소임을 사는 스님도 있어야 한다.

이(理)는 원칙이요, 사(事)는 실존이다. 다시 말하면 수행은 원칙이요, 살림살이는 실존인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원칙과 실존은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흔히 사람들은 원칙이 아닌 실존을 선택하는 행위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비난한다. 하지만 서산(西山)대사로 보다 더 잘 알려진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의 선택을 사례로 생각하면 원칙과 실존 간에서 실존의 선택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서산대사는 일반인들에게 의승군 또는 승병장으로 대부분 기억되어 있다. 아마도 초·중등학교 국사시간에 그렇게 배우고 외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산대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었다. 그런 선승에게 있어서 임진왜란의 참전은 곧 불교의 최고 금계(禁戒)인 불살생계를 범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찌 고민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서산대사는 조선불교의 실존을 위하여 참전을 결정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에서 불교는 부모를 떠나서 임금이 아닌 부처를 섬기는 무군무부(無君無父)한 집단이었으며, 수행이라는 이유로 일하지 않고 방에 들어박혀 있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한 집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승려는 최하층 천민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임금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라고 절박한 마음으로 서산대사에게 승려들의 참전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서산대사는 승려의 최고 지위인 도총섭(都摠攝)이었으며, 참전의 거절은 유교적 명분이 없었던 조선불교의 멸절(滅絶)을 초래할 수 있었다. 서산대사는 지계(持戒)의 원칙과 조선불교의 실존 사이에서 갈등하고 최종적으로 실존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어찌 말 몇 마디로 간단하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굳이 청허 휴정의 사례까지 든 이유는 현재 많은 사찰들이 재정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실존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들 사찰들이 실존을 위하여 율장에는 부합하지 않으나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행위를 하고자 고민하거나 실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불교와 상황과 정도는 다르지만 현대 한국불교도 지계의 원칙과 사찰의 실존 간에서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사찰의 재원은 신도의 보시에 의하여 충당됨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국불교에서는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사찰이 실존을 위하여 생산행위를 하고는 한다. 실제로 한국사찰에서는 보시와 생산이 병존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불교에서는 남에게 무엇을 베풀어준다고 하는 보시(布施)의 공덕이 크게 강조되었다. 특히 출가자에 대한 보시는 종교적인 공덕을 가져오는 것이라 하여 매우 권장되었다. 그렇다고 보시의 덕이 재가자에게만 설해진 것은 아니었다. 출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중요한 덕목이었지만 출가자는 가족과 재산을 여의고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어줄 물건이나 재화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건이나 재화 대신에 설법을 재가자에게 베풀어주도록 하였다. 출가자는 법시(法施)로써 재가자는 재시(財施)로써 서로 보시하는 상호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출가자와 재가자는 법시와 재시로써 상호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재가자의 재시는 사찰의 주요한 재원이 되었다. 특히 초기불교교단에서는 출가자의 경제 행위가 일체 금지되었기 때문에 재시가 유일한 사찰의 재원 충족 방법이었다. 즉 당시의 출가자는 직접 경제적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다만 이 보시물을 잘 관리함으로써 불교교단을 유지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다른 교단도 모두 그러했던 것으로 출가자의 생활목표의 첫 번째가 수행하는데 있었고, 수행자는 걸식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인도 고래의 사회풍습이었으며, 또한 거처도 수하암상(樹下巖上)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생산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던 데 연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체의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재가자의 보시물만이 사찰 재원이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인도 상황을 현대 한국불교에 그대로 접목할 수는 없다. 초기불교에서 물질적·경제적 토대가 무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출가자들이 그러한 토대 없이도 수행자로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자연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재가자의 재시에 의하여 사원이 운영이 가능하였으며, 자연적으로는 온화한 날씨로 인하여 출가자가 수하암상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불교의 상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재가자의 재시만으로는 사찰이 존속될 수 없으며,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무 아래와 바위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중국 또는 일본은 인도와는 그 사회적·자연적 환경이 전혀 달라서 출가자들은 의식주 등 생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시대의 동북아 스님들은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선언하고 직접 논과 밭에 농사를 짓거나, 사하촌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었다. 그리고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선농불교에서 나아가 생산불교를 도모한다. 사찰이 소금이나 된장 등 식품류의 생산 및 판매, 건강보조제 성격의 약품류의 생산 및 판매, 사찰음식이나 국수를 파는 음식점의 운영, 불교용품점이나 찻집의 운영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기불교 인도와는 다른 시대적·사회적 환경에 적응한 한국불교의 실존적 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그 핵심은 사찰을 유지·운영하는 수단이 재가자의 보시에서 사찰의 생산 활동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보시와 더불어 생산 활동이 사찰 재원의 충족 방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찰 재정의 충족 원칙은 분명히 신도의 보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자의 마음에는 ‘보시가 최선이고 생산은 차선이다’라는 생각이 자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조직으로서 정체성을 망각하고 영리조직처럼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출가자는 사찰의 생산 활동이 스님의 소유 재산 증대나 영리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승가공동체의 소유로써 재원을 충족하는 행위이고 나아가 사회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쓰여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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