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심외무법의 경지

과연 꿈이란 무엇인가요?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은 현재의식이 만들어낸 세계라 한다면, 꿈은 현재의식이 만든 분별심이 사라지고 잠재의식이 만든 세계라 하겠습니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의 말씀처럼 현재의식이 만든 현실세계는 모두 자신의 마음이 만든 세계요, 따라서 이 전개된 삼라만상이란 모두 자신의 마음의 표현이며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속의 모든 현상은 모두 자신의 잠재의식의 표현이며 자신의 분신인 것입니다. 꿈속에서 개를 보았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자신의 진심(嗔心)을 본 것이요, 꿈속에서 돼지를 보았다면 자신의 탐심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돼지꿈이 길몽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돼지꿈을 꾸고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돼지를 꿈에 본 것은 자신의 탐심을 발견하고 해탈한 것으로, 그 결과 거액의 복권을 타서 횡재한다는 길몽이 되는 것입니다.

꿈속은 현재의식이 쉬는 상태입니다. 현재의식이 일으키는 각종 분별심이 사라지고 잠재의식이 드러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속마음을 본다는 뜻입니다. 겉마음을 보는 지혜가 얄팍한 지혜라면, 속마음까지 보는 지혜는 깊은 지혜일 것입니다. 속마음(제 7식)을 볼 수 있는 지혜란 무엇일까요? 지금 현재의식의 뿌리인 전생을 보는 것입니다. 꿈에 분별심이 쉬면서 전생의 모습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생의 모습을 보는 지혜는 자신의 미래를 보는 지혜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금강경〉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별심을 부처님께 바쳐 소멸하게 되므로, 꿈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속마음을 보며, 경우에 따라 속마음의 뿌리, 즉 전생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고 미래의 운명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영국의 영웅 넬슨 제독보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휠씬 더 존경했다는 일본의 도고헤이하지로 제독은 일본 초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러일전쟁(1903~1905)때 러시아 발틱함대를 완전히 전멸시킨 일본의 10대 명장 중 하나입니다.

일본 해군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하게 하는 방법을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도고 장군이 점심을 먹고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항로를 전혀 알 수 없었던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대한해협 쪽으로 지나가는 게 보여서 ‘아, 조금 있으면 러시아 배가 이 해협 쪽으로 오겠구나. 이곳은 물살이 센데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습하면 러시아 함대를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도고 제독은 꿈에서 얻은 힌트대로 물살이 센 곳에 군사를 매복하였다가 잘못 진입한 러시아 함대를 전멸시키며 드디어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 전생은 도고 제독이 비몽사몽 조는 순간, 분별심이 사라진 그 순간에 얻어진 지혜로 승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라는 부정적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승산이 없다는 분별심이 사라지며 나타난 지혜광명이 승전보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모르겠다.”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친 결과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