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의 길, 시코쿠] 8. 고행의 타이류지 가는 길
[정진의 길, 시코쿠] 8. 고행의 타이류지 가는 길
  • 박지산 자유기고가
  • 승인 2018.10.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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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 산길 넘어 자리한 코보 대사 수행처
벚꽃이 한창인 타이류지. 산이 높아 4월 하순까지 벚꽃이 남아있다.
벚꽃이 한창인 타이류지. 산이 높아 4월 하순까지 벚꽃이 남아있다.

21번을 향하는 길은 확실히 힘에 부쳤다. 길이 잘 닦여있긴 하나 쉴만한 구간 없이 그저 오르막의 연속. 배낭을 짊어 맨 채 몸을 숙여 쉬어가며 조금씩 오른다. 그래도 힘내서 걷는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도쿠시마 지방의 옛말에 “첫째는 쇼산지, 둘째는 카쿠린지, 셋째는 타이류지”라는 말로 순례의 난소를 전하고 있겠는가.

또 오르는 길의 산세가 깊다보니 멧돼지나 살무사, 말벌의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간혹 들려온다. 몇 년 전에 고령의 순례자가 탈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에히메현에서 만난 한 일본인 순례자는 그 발견자가 자신이라며 당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준 적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20년 전에 생긴 로프웨이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찰의 산문도 로프웨이 정류소 쪽에 새롭게 세워져있다. 그러다보니 도보 순례길의 끝에 만나는 산문은 왠지 낡고 쓸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서쪽 고야산’ 별칭… 위용 장엄
급경사로에 ‘대사 보호’ 외우며
코보 대사 수행한 바위절벽 올라
“대사는 어떤 기도 드렸나” 상념


알게 모르게 으스스하고 험준한 타이류지지만, 그 사세와 위용은 참으로 장엄하기 그지없다. 그 옛날 코보 대사가 직접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을 남기면서, 서쪽의 고야산(西の高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타이류지의 대사당은 흡사 고야산의 오쿠노인(奧之院)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산문을 지나 납경소 옆의 휴게소에 배낭을 푼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참배를 하기로 한다. 휴게소 벽에 붙은 광고 사이로 숙소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 로프웨이 정거장 옆에 민박집이 하나 있는데 1,500엔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도미토리(다인실)에 식사 불포함, 자신이 지참한 침낭사용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모든 조건에 걸리는 게 없는 나로선 거리낄 이유가 없다. 같이 걸어온 동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니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정말 이건 대사님이 굽어 살피셨네.”
“그동안 대충 예불했는데 오늘은 좀 잘 해야겠어.”
“필요할 때만 아미타불이라니, 그러면 되겠나.”

한바탕 왁자지껄 웃고는 본당을 향한다. 종루의 범종을 치고 본당에 가서 손을 모은다. 근데 어째 두 사람이 내 뒤로 나란히 서는 게 묘하다.

“왜 그래요?”
“박상 교쟈(行者)니까, 뭔가 박상이 독경하는 걸 따라하면 제대로 하는 거 아니겠어?”
“아이고! 나같이 되다 만 사람의 경을 따라 해서 뭣 하려고요!”
“센다츠(先達)상! 교쟈상!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선 출가 전의 발심자들을 행자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재가자로 계를 받아 수행하는 이들을 ‘행자(行者)’라고 한다. 또 여러 번 순례를 다녀서 다른 순례자들의 순례를 도와주는 이들을 ‘센다츠’라고 부른다. 시코쿠 순례를 5번 가량 하다 보니 ‘센다츠’라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또 스스로 시코쿠 순례를 하면서 일단 신분을 교쟈로 밝힌다. 그냥 오헨로상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수행을 위하여 이 길을 걷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교쟈라는 신분 덕에 시코쿠에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몇 번 겪은 적도 있다. 아마 차차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

어쩔 수 없이 경쇠를 잡고 예불을 시작한다. 보통 시코쿠 순례에서는 반야심경과 각 절의 본존 진언, 광명진언, 대사보호(大師寶號), 회향 순으로 예불을 올린다. ‘대사보호’는 시코쿠 순례의 특별한 명호다. ‘나무대사변조금강(南無大師遍照金剛)’이라는 이 명호는 이 길을 만들고 중생들을 구제한 코보 대사에게 귀의한다는 기도다. 시코쿠를 걷다보면 수없이 보고 듣다보니 순례 막바지엔 그냥 푸념하듯이 튀어나오곤 한다.

회향을 마치고 뒤돌아서서 인사를 하려고 봤더니 3명의 순례자가 따라 인사를 한다. 순간 당황해 오도카니 서있으니 “독경소리가 좋아서 그만 따라 붙어 예불을 했다”며 말을 건넨다. 대사당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하려니 모녀에 손자까지 3대가 같이 순례를 나왔단다. 어린아이가 자기 몸 만한 납경 족자를 등에 매고 척척 걷는 모습이 사뭇 귀엽다.

대사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니 재미있는 것이 있다. 나무에 액자 프레임이 하나 걸려있다. 이 프레임 안으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 아침에 걸어온 20번 카쿠린지가 보인다. 셋이서 저 멀리 보이는 사찰의 지붕을 보곤 입을 모아 말한다.

“저기서 걸어 왔다고?! 세상에, 우보천리라더니!”
대사당까지 참배를 마치고 다시 납경소로 돌아왔다. 납경장을 들고 가니 노스님께서 본존의 범자(梵字)를 납작한 붓으로 써주시는 게 특이하다. 내친김에 여쭈어 보았더니 ‘원래 범자는 납작한 붓으로 쓰는 게 정서(正書)’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찰에서의 참배를 마치고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차피 오늘 숙소는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 가야하고, 마지막 로프웨이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리된 거 코보 대사가 수행했다는 바위절벽을 가보기로 했다.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로프웨이 정류장을 지나쳐 다시 산길을 오른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할만 했는데 갑자기 급경사가 나타난다.

심지어 경사로의 입구엔 “미끄러지기 쉬우니 한발 한발 ‘나무대사변조금강’을 염송하며 올라갑시다” 라는 비석까지 서있다. ‘괜히 왔나’ 싶어 돌아가려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올라간다. 하지만, 거의 기어가다시피 가는 경사다. 숨이 턱에 차 배낭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지려는 찰나에 절벽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샤신가다케(舍心ケ嶽)’. 기록에는 ‘샤신(舍身)’으로 기록된 것도 있는 바위 절벽이다. 코보 대사가 젊은 시절 몸과 사사로운 마음을 버려가며 수행을 하던 장소다. 지금이야 길이 어느정도 닦여 있지만 코보 대사 당시에는 말 그대로 험난한 길이었으리라. 코보 대사 스스로도 “아와국의 타이류산을 기어올랐다(攀阿國大瀧嶽)”고 남기고 있다.

대사께서 수행하셨다는 장소를 가기 위해선 길에서 조금 벗어나 쇠사슬을 잡고 바위를 넘어가야한다. 혹시 위험할지 몰라 안내판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슬을 잡고 좁은 바위틈을 넘어간다. 그러자 시야가 탁 트인 절벽이 나오고, 코보 대사상이 멀리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찰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젊은 시절의 코보 대사는 이곳에서 구문지법(求聞持法)이라는 기도를 했다고 전한다.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을 본존으로 모시고, 그 다라니를 1백만 번 염송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이 기도를 성취하면 그 어떤 경이나 논을 배워도 막힘없이 모두 통달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 법은 수행자 홀로 닦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그 성취의 증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반복해야한다. 그래서 시코쿠 순례길 위 여기저기에 코보 대사가 구문지법을 수행했다는 장소나 절이 전한다.

타이류지도 그 중 한 곳이다. 그 인연으로 허공장보살이 본존불로 모셔져있고, 한켠에 구문지법만을 수행하는 도량이 마련되어있다. 하지만 코보 대사의 전기에 구문지법을 성취한 곳은 24번 호츠미사키지 아래의 동굴로 전한다.

가만히 대사상의 옆에 앉아서 멀리 풍경을 바라본다. 1,200년 전 코보 대사도 이 풍경을 보시며 기도를 하셨으리라. 무엇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을까? 왜 구문지법을 닦으셨을까?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으려니 멀리 올라오는 로프웨이의 소음이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한다.

대사를 바라보며 예경을 하려해도 단애절벽이라 마땅히 서있을 만한 곳이 없다. 대사를 내려다보며 예를 표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바위를 디디고 내려가 본다. 어른 셋 정도가 겨우 설만한 공간이 대사상 바로 밑에 있다. 타나 남은 초와 향이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보니 다들 여기서 예경을 하는 듯 했다. 간단히 반야심경과 허공장보살 진언을 염송했다. 예전에 범어원음으로 진언을 외웠었는데 한동안 안하다 보니 혀가 꼬인다. 결국 일본식 발음으로 진언을 염송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대사님과 같이 지혜로운 수행자가 되게 하소서.”
다시 절벽길을 조심조심 더듬어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금방 로프웨이 역에 도착했다. 프랑스인 친구와 일본인 친구가 나를 부른다.

“박상! 여기 직원분이 차를 오셋타이 해주셔!”
로프웨이역 안의 기념품점에서 파는 차를 한잔 가득 따라주시기에 마셨더니 맛이 꼭 우동육수 맛이다. 육수가 아닌가 하고 물어본다.

“차 맛이 꼭...”
“네, 꼭 육수 맛이지요?”
“네, 대체 무슨 차인가요? 처음 마셔보는 맛이에요.”
“버섯 차에요. 이 산에서 나는 표고, 송이, 느타리 등등이 들어있어요”
“어쩐지 육수 맛이다 했네요!”

그렇게 우리는 버섯차라는 이름의 육수를 여러 컵 들이키고 로프웨이에 올랐다. 2㎞나 되는 거리를 움직이는 서일본 최장 로프웨이라고 한다. 기압차로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오늘의 숙소로 들어섰다.

민박 ‘소와카’. ‘소와카’는 일본어 발음으로 우리말 진언의 ‘사바하’에 해당된다. 숙소이름이 기분 좋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보통 전날 예약을 해야 하는데, 곧장 카운터로 들이닥쳐 3명이 묵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다행히도 도미토리는 아직 비어있단다. ‘원만히 성취되리라!(사바하)’. 오늘도 좋은 인연들과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짐을 풀었다.

순례의 Tip

타이류지 대사당 전경.
타이류지 대사당 전경.

- 12번 쇼산지에 비하면 편하지만 비탈진 산길이 이어진다. 자신의 리듬에 맞게 산행을 하자.
- 일본의 숙박업소는 최소 하루 전, 혹은 당일 점심까지는 예약해야 한다. 순례기와 같이 무작정 들이닥치는 건 가급적 사양하자.
- 로프웨이가 아닌 순례길을 따라 도보로 산을 내려갈 경우 숙박업소는 없고 노숙 포인트만 두 곳 있다. 숙박지를 잘 생각하고 하산하자. 도보로 내려갈 경우 순례기의 민박집까지는 도보 1시간 반 남짓(6.5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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