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차 전상서] 신위의 ‘남다시병서’
[초의 차 전상서] 신위의 ‘남다시병서’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10.15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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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차는 시인의 벗”… 차 품격 노래
신위의 ‘남다시병서’ 전문. 제자 박영보의 ‘남다병서’에 화운한 것으로, 스승과 제자가 공히 초의차를 맛보고 쓴 것이라 눈길을 끈다.
신위의 ‘남다시병서’ 전문. 제자 박영보의 ‘남다병서’에 화운한 것으로, 스승과 제자가 공히 초의차를 맛보고 쓴 것이라 눈길을 끈다.

신위(申緯, 1769~1845)는 초의와 교유했던 인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이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칭송받는 그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제자로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1812년 주청사서장관으로, 연경을 방문할 때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을 만나 고담(古談)을 나눈다. 그가 옹방강을 만난 것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전별시를 지어 조언했기 때문일 터다. 아무튼 그가 초의를 만난 것은 1831년 홍현주(洪顯周, 1793~1865)의 청량산방에서다.

당시 신위는 홍현주의 부탁으로 초의 스승 완호의 탑명(塔銘)과 글씨를 쓰기로 했지만 귀양을 가는 와중이었기에 완호의 탑명과 글씨를 완성하지 못한 채 1858년경에야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이 탑명의 글씨를 완성하여 완호 탑이 세워진다.

신위, 시·서·화 삼절로 칭송받아
제자 박영보 ‘남다병서’ 화운해
같은 체재의 ‘남다시병서’ 지어

“초의, 차문화 중흥 이뤄” 평가
조선 사대부 茶 인식을 드러내

특히 신위와 초의 인연은 신위가 1830년 용경 별장에서 쓴 ‘남다시병서(南茶詩幷序)’에서 빛났다. 그의 이 다시(茶詩)는 제자 박영보의 ‘남다병서’에 화운한 것으로, 초의차를 칭송하였는데 이는 스승과 제자가 초의차를 맛 본 후 화운하여 지은 시라는 점이다. 후일 신위는 추사와 함께 초의차의 완성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초의가 이룩한 차 문화의 중흥을 “500년 만에 집대성”한 인물이라 평가했다.

무엇보다 유려한 문체의 이 다시(茶詩)는 조선 후기 사대부의 차에 대한 인식을 아울러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긴 두루마리 형태인 ‘남다시병서(南茶詩幷序)’는 크기가 23.6×78cm이며 서문이 함께 수록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병서(幷序)라고 하였다. 앞서 소개한 박영보의 ‘남다병서(南茶幷序)’와 같은 체재로 쓴 다시(茶詩)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다는 호남과 영남에서 나는 것이다. 신라시대(勝國)에 사람들이 중국(中州)에서 차 씨를 가져와 산과 골짜기에 파종하였다. 종종 차 싹이 돋았지만 후인들은 쓸모없는 잡초라 여겨 그 (차의)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근래에 차가 나는 산지의 사람들이 차를 따다가 (차를) 달여 마셨으니 (이것이) 곧 차이다. 초의는 몸소 차를 만들어 당대의 명사에게 보냈는데 이산중이 (차를) 얻어 금령에게 나누어 주었다. 금령이 나를 위해 (차를) 달여 맛보았다. 이로 인해 (그가) ‘남다가’를 지어 나에게 보이니 나 또한 그의 뜻에 화답하노라.

내 삶은 담박하나 차벽(茶癖)이 있는데
(차를) 마시니 정신이 환하네.
용단봉차는 모두 가품이라
화려한 그릇에 낙장(酪漿)은 쓸데없이 너무 사치하네.
한 잔의 차로도 기름진 음식 씻어내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어남은 옥천자(노동)가 경험했네.
아득한 강남, 육우(陸羽)를 생각하며
홀로 〈다경〉을 품고 은밀히 베꼈네.
금령은 늦게 나를 불러(초금관은 금령의 당호이다)
질화로를 가져다가 먼저 차를 달이네.
이 차 씨 영호남에 파종해
푸른 산에서 천년을 홀로 피고 맺네.
스님들 이리저리 이끼처럼 밟고 다니고
나무꾼은 (차나무를) 베고 또 쪼개내네.
아는 사람 없는 골짜기 난향처럼 은근한 향기,
초의스님 차 따기에 두 손이 분주하다.
승루에는 곡우절 봄비 내리고
(왕완정이 ‘사손사원시(謝孫思遠詩)’에 “근래에 보낸 차, 어린 싹으로 만들었고 승루는 곡우 비에 막혔네.”라는 구절이 있다)
새로 만든 떡차, 붉은 비단에 쌌네.
(구양수의 ‘귀전록(歸田錄)’에 “근래 만든 차 더욱 정미해 붉은 비단으로 차를 쌌다”라고 하였다)
부처께 공양하고 남은 차는 시인의 벗이요,
묵객의 품격을 아름답게 높여 주네.
(노동의 ‘사맹간의다시’에 “사모 쓰고 손수 차를 달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산중이 얻어서 강옥의 금령에게 보내니(초사는 이산중의 자호이다.)
봉한 백자항아리에는 녹설아라 썼네.
(당나라 승려 재이의 시에“봉한 백자 항아리에 화전이라고 썼다네”라고 하였다.)
생강과 계피는 묵을수록 맵고
삼과 창출 그릇 안에서 약효가 더해지는 것보다 훨씬 낫네.
푸른 하늘 흰 구름에 물결 흔적이 남아 있고
(시우산의 다시에 “찬 구름 삼나무에 푸른빛이 더하다”라고 하였다.)
화려하게 장식한 옥명차, 자태를 뽐내지 말라.
(옹방강은 “화려하게 장식한 옥명차가 세상에서 가장 신묘하다”고 하였다.)
차와 먹은 상반되지만 그윽한 향, 단단함은 서로 같아서
(온공이 이르기를 “차는 희어지려 하고 먹은 검어지려 한다”고 하였고 동파는 “기이한 차나 은은한 먹은 모두 향이 있어서 그 덕이 같으며 모두 견고하니 절개가 같다”고 하였다. 온공은 “차와 먹은 상반된다”고 하였다.)
(차를)끼고 가는 고상한 사람, 몇 번이나 감탄했네.
건주의 섭씨 해마다 공물이 많아
차를 지고 가는 사람 먼 길까지 이어졌네.
이 차의 유래야 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경화에 부쳐온 것 마치 나비 떼처럼 많아라.
남쪽은 지금 풍미가 좋을 때니
이는 구루지역에서 단사가 나오는 격이라.
몸소 차를 포장하던 일 떠올리니
제이가 만든 묘한 차처럼 치아 사이로 차향이 피어나네.
이월에 주룩주룩 소나기 오는데
누룩수레 만나도 철철 넘치게 마시지 못하여 침만 흘리네.
시정(詩情)이 뜻에 맞는 건 (차를) 맛봄과 부합하는 것이니
금령이 있는 강의루가 곧 추관아라네.
(설능의 ‘사다(謝茶)’에 추관이“진발에게 부친 것은 도리어 시정에 합치됨을 맛봄에 있다”고 하였다. 당나라 사람들의 구속(舊俗)에는 대성출령과 군절진(軍節鎭)을 거치지 않은 자를 추관위(官衙)라 한다.)
南茶湖嶺間所産也 勝國時人 以中州茶種播諸山谷之間 種種有萌芽者然後 之人以蓬蒿之屬 視之 不能辨其眞 近爲土人採之 煎而飮之 乃茶也 草衣禪師親自蒸焙 以遺一時名士 李山中得之 分于錦 錦爲我煎嘗 因以南茶歌示余 余亦和其意焉
吾生澹味癖於茶 飮令人神氣華
龍團鳳尾摠佳品 酪漿金盤空太奢
假此一洗粱肉 風腋來從玉川家
江南憶桑苧 獨抱遺經書密斜
苕錦主人(苕錦館 錦室名)夕邀我 先將土生澹霞
爲言此種種湖嶺 碧山千年空結花
雲衲踏盡等苔 樵童芟去兼
無人識得谷蘭馨 草衣雙手叉
僧樓穀雨細飛節(王阮亭謝孫思遠詩寄茶有燒筍僧樓穀雨)新餠蒸焙囊絳紗(歐陽脩歸田錄 近歲製作尤精束茶以紗)
供佛餘波及詩侶 紗帽籠頭添品嘉(盧仝謝孟簡儀茶詩 有紗帽籠頭手自煎)
苕士得之寄江屋(苕士李山中自號也) 白封題綠雪芽(唐僧齊已詩 白封題記火前)
大勝薑桂老愈辣 却與蔘朮籠裏加
沈碧寒雲水生痕(施愚山茶詩沈碧寒雲杉) 釵頭玉茗須莫誇(方翁釵頭玉茗天下妙)
德操與墨自相反 抱向高人三歎嗟
(溫公曰茶欲白墨欲黑 東坡曰奇茶妙墨俱香 是其同德也 皆堅是其同操也 溫公曰 茶墨相反)
建州葉氏歲多貢 勞人絡繹途里遐
此品流來不煩力 寄到京華如蝶
南鄕到今好風味 便是句漏生丹砂
記得親包社前 齊已妙製香生牙
春陰蚓鳴驟雨來 未流涎逢車
詩情賴有合得嘗 江意樓是官衙
(薛能謝茶詩 官寄與眞抛却 賴有詩情合得嘗 唐人舊俗以不歷臺省出領兼軍節鎭者 爲官)

조선 후기 차는 불로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신위는 차를 따는 계절이 오면 마치 “구루지역에서 단사가 나오는 격이라”라 한 것이다. 단사(丹砂)는 신선이 양생을 위해 만드는 약의 원료이다. 당시 초의차가 어떤 맛과 품격을 갖춘 차였을까.

바로 신위는 초의차를 맛본 사람이다. 그의 증언엔 “치아 사이로 차향이 피어나”는 차였다는 것이다. 마치 당대 승려 제이가 만든 차처럼 향기로웠다는 것이다. 당시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들은 신위가 내린 초의차의 평가를 수긍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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