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과 물을 벗삼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건네주며 대자연과 함께 노니는 것이 형님의 삼공지위(三公地位)와 바꿀 것 없는 내 복이라 생각해 찾지 않았습니다”


당나라 때 배휴, 배탁이란 등이 붙어나온 쌍둥이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외삼촌 집에 의탁하며 살고 있던 중 한 스님과 외삼촌과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아이들이 이 집서 같이 살면, 이 집안도 망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이들은 외삼촌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 떠돌다가 산중 암자서 부목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아침에 목욕탕서 청소를 하다가 보자기를 발견했는데, 풀어보니 값진 보물(寶物)로 만들어진 삼전대였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이것 하나면 평생을 부자로 편히 살 수가 있었지만, 필히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 생각하고 기다리던 중, 할머니가 허겁지겁 달려 오시며 보자기를 찾으시니 배휴가 그것을 내어 드렸다.

사연(事緣)인즉 부농(富農)으로 외아들이 있는데, 아들의 실수로 마을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삼전대를 구해서 원님에게 바치면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하여 모든 재산을 팔아 사가지고 오던 중 절()이 있으니 목욕재계 하고 잠시 부처님전에 예배드리고 아들을 살리겠다는 급한 마음에 삼전대를 잊고 간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외삼촌집에 다시 가니 마침 전에 오셨던 스님이 계시는데, 배휴를 보고 외삼촌에게 하시는 말씀이 저 아이를 잘 공부시키면 나중에 삼정승(三政丞)은 물론 대도(大道)를 이룰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유인즉 전에는 배휴의 관상(觀相)을 보았지만 지금은 심성(心性)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한 배휴는 정승이 되었다. 하지만 헤어진 동생인 배탁을 찾을 수 없던 차에 황하강을 배 타고 건너게 되었는데, 여름이라 사공이 웃옷을 벗고 노를 젓고 있었다. 그의 등에 나 있는 흉터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배휴 정승은 그가 자신이 그토록 찾던 동생 배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는 내가 정승이 된 소식을 못들었느냐?”하고 묻자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배탁이 답했다.

그럼 왜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하자, 배탁은 형님은 형님의 복으로 정승이 되어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나는 산과 물을 벗삼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건네주며 대자연과 함께 노니는 것이 형님의 삼공지위(三公地位)와 바꿀 것 없는 내 복이라 생각해 찾지 않았습니다고 답했다. 그리고 결사코 그는 형을 따라가지 않았다. 언제인가 홍주자사(洪州刺史)로 있던 배휴가 이 절에 왔다가 벽에 그려진 고승들의 화상(畵像)을 보고, 안내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저것이 어느 고승들의 상()입니까? 형상은 그럴 듯한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안내하는 스님이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이 절에는 선사(禪師)가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근간에 한 스님이 오셨는데 선사 같이 보인다고 답했다. 사실 그는 황벽선사였다. 선사는 백장의 법을 받아 여러 곳을 다니다가 용흥사에 머물면서 청소나 하고 밥을 얻어 먹고 있으면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자 배휴는 그 선사를 불러 오라고 했다. 배휴가 선사에게 물었다.

지금 저 벽에 그려진 고승들은 어디에 있소?"

이때 선사는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배휴는 깜짝 놀라며 엉겁결에 하고 대답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언하에 깨달음을 얻고 배휴는 즉시 황벽 선사에게 귀의 하였다. 그 자리는 행행도처(行行到處) 지지발처(至至發處), 즉 가고 옴이 없는 동시(同時)이고 역천겁이불고 항만세이장금이라. 천겁이 지나도 옛 되지않고 만세를 뻗쳐 바로 지금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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