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재硏 9월 6일 발굴 현장 보고회서 발표

경주 황용사지 금당지에서 출토된 금동귀면. 처음으로 발굴됐으며,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유물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황용동 소재 황용사지에서 신라시대 금동귀면이 발견됐다. 이는 국내에서는 처음 발굴된 사례라 주목된다.

(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는 9월 6일 경주 황용동 소재 황용사지에서 1차 시·발굴조사 현장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 발굴조사사업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문화재청과 함께 진행 중인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이뤄졌으며, 경주 황용사지는 올해 2번째 조사였다.

사례 찾기 힘든 금동귀면
석탑 옥개석 장식공예 추정
사명 ‘皇龍寺’ 확인 瓦片도
“통일신라대 융성한 도량”


황용사지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경주 구황동에 있는 황룡사지와는 다른 사찰이다.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의하면 황용사는 선덕여왕 2년(633년)에 창건됐으며, 당시 명칭은 황둔사(黃芚寺)라고 불렸다. 이후 소성왕대에 황용사(黃龍寺)로 바뀌어 중창, 중수 등의 과정을 겪으며 사세를 유지해 왔다.

조사 전부터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을 비롯해 고려시대 승탑, 초석, 석축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정비·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시·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걸이가 있는 투조 금동귀면, 석불, 용두편, 하대석 편 등 사찰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유물들을 발굴했다.

특히 금당지 동탑 기단 하단부에서 발견된 투조 금동귀면은 현재까지 발견된 바 없는 유물로 주목을 받았다. 금동귀면의 크기는 15cm정도로 투조 기법으로 매우 입체감 있게 만들어졌다.
최인창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이번에 출토된 금동귀면은 아직까지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사례”라면서 “석탑 부재 옥개석 모서리에 못 구멍이 확인되고 금동귀면 귀 하부에도 못이 있어 옥개석 장식으로만 추정할 뿐 확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8세기 쌍탑가람과 금동귀면 장식, 12지신 양각 불대좌하대석 등도 함께 출토돼 황용사가 통일신라시대 매우 융성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황용사(皇龍寺) 명문기와편. 문헌을 통해 전해졌던 황용사(黃龍寺)는 본래 사찰명이 아님이 확인됐다.

또한 이번 발굴에서는 기존 문헌으로 알려진 ‘황용사(黃龍寺)’가 아닌 본래 사찰명이 ‘황용사(皇龍寺)’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문기와편이 출토돼 눈길을 끌었다.

회암사지 출토 용두편과 유사한 용두편이 발견돼 조선시대에도 사격이 높았음이 추정된다는 게 연구소 측의 주장이다.

이번 발굴조사에는 황용사의 가람 구조와 규모들도 확인됐다. 황용사는 계곡 주변에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축조한 산지형 가람으로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지 5동, 탑지, 축대, 석렬 등 다양한 유구가 중복돼 출토됐다.

최 팀장은 “현재 쌍탑이 남아있는 구역의 경우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고려시대에는 주변의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중창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황용사의 사역이 현재 추정 사역보다 훨씬 넓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사찰 성격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추가로 얻는다면 통일신라 경주 지역 쌍탑 가람과 조선시대 경주 불교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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