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때는 자기 내면세계에 주인공 안테나를 세워 놓아야
배울 때는 자기 내면세계에 주인공 안테나를 세워 놓아야
  • 대행 스님
  • 승인 2018.07.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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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이 다 공했으니 포함해서 공한 주인공에 놓으라

 

무엇을 세워서 공부해야 하는지요

질문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인 그 가운데에서, 세상이 본래 공하고 공한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세워서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그리고 본래자성불이라고 하셨는데 또다시 무엇을 닦아 나가야 하는지요.

답변 그러니 제일 조건은 뭐냐. 내 주인공의 안테나. ‘주인’이라는 건 축을 말하고 ‘공’이라는 것은 프로펠러와 같이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24시간 살아나가시는 데에 고정관념과 고정된 행과 고정된 말과, 고정되게 듣는 거와 고정되게 만나는 거와 고정되게 가고 오는 거와 고정되게 먹는 거…, 그렇게 고정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정된 것이 있다고 본다면 그렇다고 말씀하십시오. 모든 게 고정됨이 없습니다. 왜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라고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루 온종일 그렇게 놓고 가면서도, 고정됨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공했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분은 ‘그것이 도대체 뭐길래 주인공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주인이자 공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혜능 선사가 이런 말을 했죠? 오조 홍인 선사가 밤중에, 삼경에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오라는 말이나 했나요? 주장자를 탕 탕 탕 세 번 쳤었죠. 그러니까 벌써 알고서 삼경에 들어갔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얘깁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금강경』을 강설하시는데 육조 스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죠. 네 가지 조건 말입니다. ‘본래자성불이 청정함을 어떻게 알았으리까.’ 이런 말이요. 이 중에 청정이라는 자체는, 바다가 깊어서 모든 물이 바닷물로 다 모이는 거. 더러운 거 깨끗한 거, 구정물 깨끗한 물 뭐, 고름물 핏물 다 한데 합쳐서 거기에 모이는 거. 모이는 그것도 아니라고 해서 젖는 거. 허허, 똥물에도 젖고 핏물에도 젖지 않습니까? 그걸 청정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어찌 본래자성불이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생멸이 없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일체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움죽거림이 없이 들이고 내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이 네 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맡겨 놓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은사 아닌 은사,
참은사를 만날 것입니다. 진짜 은사!
자기를 수시로 이끌고 다닐 수 있는 참자기를 말입니다.

고정관념도 없고 어떤 것도 없이 여러분은 그대로 본래 자성, 바로 신이며 본래자성불입니다. 여러분은 본래자성불인데 그 본래자성불 가운데에 바로 중생들이 수없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여자 남자가 둘이 아니요, 동서가 둘이 아니요, 세상이 전부 둘이 아니다.”라고 한 겁니다. 그 뜻을 아신다면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돌리면서, 깔보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아상 부리지 말고, 살생을 일부러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실천해 가십시오. 그러면 이런 계율들을 일부러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그 지혜롭고 자비스러운 마음으로써,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회사에서나 사회에서나 위로는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통솔력이 있어서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손을 쩍 벌려서 다 안아 줄 수 있는 지혜와 자비를 가져야만이 우리 이 마음이, 요 지금 마음속에 있는 중생들이 다 회전을 해 줍니다. 그러면서 ‘아, 당신이시여! 당신도 나고 나도 당신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하면서 화목하게, 즉 말하자면 파워를 일으키지 않고 회전을 해 줄 때에 내 몸도 건강하게 되고, 건강한 몸을 가졌으니 마음도 건강해져서 일하는 것도 능률이 나고 가정에서도 화목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또 능력이 있어서 위로는, 부모 조상들한테는 묵은 빚을 갚을 수 있고 아래로는 햇빛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비로소 원심력이라고 하는 겁니다.

원심력은…, 보는 것만도 도가 아니고 남의 속을 아는 것도 도가 아니고, 과거의 일을 잘 아는 것도 도가 아니고 오고 가는 것이 없이 오고 가는 것도 도가 아닙니다. 그 오신통도 놓고 나와야 바로 원통력을 굴릴 수 있다 이겁니다.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굴릴 수가 없어요!

불법이라는 거대하고 광대무변한 우리의 이 마음 하나가 수억을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있고 수억을 살리려 해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도법이, 바로 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한테 다 주어져 있으니까 여러분이 한생각을 잘하셔서 실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배울 때는 자기 내면세계에 주인공 안테나를 탁 세워 놓고 ‘보고 듣고 하는 오신통이 모두 여기에 관련이 되어 있구나!’ 하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이 안테나를 세우지 않으면 세균이나 유전성이나 영계가 들어와서 내 집이 빈집인 줄 알고 맘대로 왕래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안테나는 바로 자동적으로 버릴 건 버리고 들일 건 들이게끔 해서 내 몸과 내 가정과 사회를 튼튼히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안테나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금 현시대를 잘 내다보십시오. 텔레비전이나 전화나 모든 게 안테나를 세우지 않고는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몸뚱이가 나왔으면 칼을 뺀 거와 같습니다. 그냥 갈 수는 없죠?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거를 모르고 그냥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근본마저도 공해서 없다 하셨는데

질문 큰스님께서는 내 안에 근본이 분명히 있으니 그 근본을 놓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법문에서는 근본마저도 공해서 없다고 하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저의 사량으로는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답변 “자식의 묘지가 있고 아비의 묘지가 있는데 이 아비의 묘지에서 아들로 가면 아들로 하나가 되고 아들의 묘지에서 아들이 아버지한테로 가면 아버지로 하나가 되느니라.” 언젠가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이게 왜냐. 내가 육신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을 하게 되면 자식이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랬다가 한순간 ‘아, 이게 주인공을 놓쳤구나.’ 이럴 때는 벌써 아버지로 한데 합쳐지는 겁니다. 이걸 아셔야 돼요. 이 마음이, 이 마음 근본이 바로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도 공했고 부동한 그 근본도 공했다 이겁니다. 그리고 이건 움죽거리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것도 허수아비고 이것도 말하자면 뿌리 없는 기둥처럼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 근본이란 얘깁니다. 그러니까 무한의 능력을 가진 바다와 같다 이겁니다. 그래서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이 선장이 지금 문제입니다. 선장이 어떻게 육신을, 차를 끌고 다니며 기름을 어떻게 넣어 가지고 어떻게 끌어야 올바로 끌고 다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올바로 알려면 무조건 이유를 붙이지 말고, 꼬리를 붙이지 말고…. 아, 내가 공한 이치는 아시겠죠? 내가 왜 공했다는지. 없어서 공한 게 아니라 너무 빠르게 돌아가니까, 어떤 거 할 때 나라고 세울 수 없으니까 공했죠. 그래 부처님께서 “사대와 오온이 공한 줄 알면 그대로 여여하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여기에다 모든 거를 놓고 갔을 때 비로소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댁의 것들이 아니에요. 댁의 주인 거지 이 육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 관리하는 관리인이에요. 차도 운전수에 달려 있는 거지 꼬라박든 뭐, 좋은 데 아스팔트로 끌고 가든, 또 잘못해서 부딪치든 그 운전수에 달렸지 누구에게 달렸습니까. 또 딴 차가 와서 받아도 아, 그 운전수에 달렸지 누구에게 달렸습니까. 그러니까 그 차가 있기 때문에 또 그 차가 받은 거지 그 차가 없다면 왜 받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차를 끌고 다닐 때에 올바로 차를 끌고 다닌다면 기름도 올바로 자꾸 넣어 가면서 끌고 다닐 텐데, 그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올바로 끌고 다니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누구에게 항거합니까. “차가 지금 꼬라박혔으니 이걸 어떡하겠습니까.” 하고 누구더러 물어봅니까? 운전수가 그렇게 했는데 운전수가 그걸 또 물어봐요.

그리고 여러분,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말을 많이 듣죠? 지금 밥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밥 먹죠? 내가 밥 한 그릇을 놓고 먹을 때에 ‘주인공!’ 하면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우주 전체, 일체 제불, 일체 보살, 일체 중생이 전체 한마음으로 들어서 주인공이거든요. 주인이자 공했다 이겁니다. 일체 모두가 전부 공했는데 바로 그 공한 게 둘이 아니어서 내 주인공에 그냥 전체가 직결돼 있어요. 이 우주 전체 삼라대천세계의 근본마저도 없기 때문에 내 근본에 직결돼 있는 이 자체가 바로 한마음 주인공이에요, 그냥.

여러분! ‘대(對)가 없다, 근본도 없다’ 이런 얘기를 지금 비유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분이 대들보이자 근본이라고 합시다. 근데 그 아버지라는 분은 모두를 먹여 살리고 심부름하느라고 열났지, 근본은 근본이라도 근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진데, 이름은 아버진데 그냥 전부의 심부름꾼이에요, 똥 친 막대기처럼. 그래서 대가 없는 게 부처다 이겁니다. 가정에 충실하게 남편 노릇을 하고 자식 노릇을 하고, 또는 아버지 노릇을 하고 형님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 또 바깥에 나가서도 질서를 문란치 않게 하고 시간과 도의와 의리를 지키며 무슨 말을 해도 신뢰받는 사람, 계율을 지킨다 안 지킨다를 떠나서 인간의 도리를 그대로 하는 사람이라야만 그것이 대 없는 아버지, 대 없는 부처다 이거예요. 대가 없는 게 부처지 대가 있으면, 하나라도 거기 끼어 있으면 부처가 아닙니다. 보살 노릇도 할 수 없어요.

그런 거와 같이 지금 부처님의 뜻은,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기 이전에 여러분 주인공의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렇게 들고 나면서 여러분을 이끌어 주니까 몸 안에서는 모두 진화돼 가지고 천백억화신으로서 호법신이 되고 수호신이 되고 화신이 되고 법신이 됩니다. 지금 내 몸뚱이 하나 속에 온갖 인과로 뭉친 그 중생들이 화해서 들고 나면서 그렇게 바깥 경계 안 경계를 수호한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뜻을 아셔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는 일체라고 그전에도 항상 말했죠.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이나 과학, 공학, 의학, 지리학, 이것들을 전체 한데 합친 공부라고요. 그러니 항상 얘기한 “한 찰나에 들어왔다 한 찰나에 나가시고” 하는 게, 우리가 공부하면서 한생각을 내면 그렇게 들고 난다는 것이니 불가사의한 법이라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을 저 천국에 갖다 놨다가 금방 이리로 갖다 놔도 여러분은 어디 갔다 왔는지 모르니 불가사의하다는 거죠. 그거를 거짓이라고 한다면 요렇게 한번 표현을 해 볼까요? 지구를 버스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지구가 그냥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태워 가지고 어디 타국에, 그냥 막 여러 별성을 통해서 다른 천체에 갖다 놨다가 여기 데려다 놔도 여러분은 모르지 않습니까? 빛보다 더 빠르고 찰나찰나 돌아가는 겁니다.

염주알이 108개인 뜻

질문 어떤 스님들께서는 목에다 염주를 걸고 다니시기도 하던데요, 그 염주알이 108개인 뜻이 무엇인지요?

답변 백이라는 것은 이 큰 우주를 비유한다고 합시다. 팔이라는 거는 사무 사유의, 즉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이 모두를 따집니다. 이 세상 팔도라고 비유를 해도 되는 거고요. 이 사무 사유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의 반, 보이는 데 반입니다. 죽는 거 반 사는 거 반. 그럼 이렇게 따집시다. 죽은 사람이 반이라면 사는 사람이 반, 보이지 않는 데의 영령들이 반이라면 산 사람들이 반, 즉 말하자면 어느 사람이든지 정신계의 내 생명의 근본이 있다면 바로 육신 이 자체가 있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반반이.

그러니까 백팔 염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돌리면서 염(念)하라고 한 겁니다, 그게. 백팔 번뇌가 있습니다. 이 번뇌, 사람이 그렇게 죽고 살고 하면서 돌아가면서 살려면 얼마나 많은 번뇌가 일어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는 게 애고가 오고, 죽음이 오고, 아픔이 오고, 슬픔이 오고 정말 여러 가지가 오니까 그게 찰나찰나 일어나지 않습니까, 속상하고 그러는 것도. 어떤 거든지 일어나는 그 자체를 두고 또 백팔번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번뇌, 이 망상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 즉 탐진치 이 삼독을 다 놓고 버려라. 놓고 돌려라. 이 지구 자체, 이 우주 전체 삼천대천세계 전체가 염주알 돌아가듯 하느니라. 빈틈이 없죠, 염주알 자체는요. 그래서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그 표현, 표시입니다, 그게.

참다운 공의 맛을 보려면

질문 『금강경』의 대의(大義)를 교학에서는 ‘파이집 현삼공(破二執 現三空)’이라 해서 집착을 없애고 공한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말하고 삼공은 아공(我空) 법공(法空) 보살공(菩薩空)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분별이 끊어진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이 마음공부를 통해서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금강경』에서 설하는 참다운 공의 맛을 볼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답변 예전에 큰 조사 스님네들은 말씀도 안 하시고 법상에 앉으셔서 주장자를 한 번 꽝 치고선 ‘이 눈이 보이느냐.’ 하시곤 낚싯밥을 던져서 건지게끔 하는 말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은 너무들 말로는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부처님 법이 어떤 것이냐.” 하면은 손가락을 드는 사람도 있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고 일어나서 걸음 걷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많습니다. 그리고 ‘참 맛이 좋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물을 떠다 놓는 사람도 있고 합장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많아요. 그것은 생략하고, 그런 말을 아무리 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가슴에 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바로 여러분의 그 깊은 잠재의식 속에, 참나가 공(空) 안에 들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에게 맡겨 놓으라고 하는 그것도 내가 공했고 이 세상이 다 공했으니 포함해서 공한 주인공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게 보이는 게 있기 때문에 부처도 이루고 세상이 공한 줄 알고 나도 공한 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다가 모든 일체 생활을, 들이고 내는 것을 다 몰락 놓고 ‘다 당신이 하는 거, 들이고 내는 걸 바로 당신이 하는 거니까 당신이 다 알아서 길잡이가 돼 주실 거다.’ 하고, 또 길잡이가 될 거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도 안 되는 거는 ‘나를 테스트 해 보는구나.’ 하고선 놓고, 또 되는 거는 감사하게 믿고 놓고, 모든 것을 맡겨 놓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은사 아닌 은사, 참은사를 만날 것입니다. 진짜 은사! 자기를 수시로 이끌고 다닐 수 있는 참자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가졌을 때 그것을 한 소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죠? 땅에서 싹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른들이 어린애 낳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어린애를 출산했을 때 갓 나와 가지고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한 소식 얻었다 할지라도 어린애 갓 낳은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내가 한 소식 했다는 말 할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내가 갓 나와서 사리를 알고 판단을 할 정도로 커졌을 때는 이 세상 돌아다니면서 크고 작은 걸 알기 때문에 자기가 체험하면서 놓고 다시 또 체험하면서 놓고, 참자기가 그렇게 거침없이 여여하게 돌고 행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어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한 소식 얻었다고 결론지어서 꽂아 놓지 말라는 얘깁니다. 한 소식 얻었다고 해서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될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고 늙었다가 또 애가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우리는 어른이 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심부름도 해 주고 심부름 하는 걸 받기도 하죠. 우리가 지금 높은 일만 합니까? 어린애를 낳아 가지고 똥 기저귀도 빨고 똥을 씻기도 하고, 어린애를 기를 때에 별의별 일을 다 합니다, 궂은일을. 어른이 돼서 애의 밑을 씻어 줘야 하고 애는 애기 때문에 또 애 노릇을 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높아도 높은 게 없고 얕아도 얕은 게 없이 평등한 진리의 그 뜻을 항상 생활 속에서 파악하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스스로 샘물이 솟듯, 솟아나는 그 샘물의 맛을 알고 역력하게 나를 끌고 다닐 수 있는 나의 참주인공이 진짜 생기는 것입니다, 홀연히. 그저 생산이 되기만 하면은 그때 가서는 언젠가는 성불할 단계가 오고 언젠가는 열반할 단계가 오죠. 어린애만 낳아 놓으면 저절로 어른 되고 늙어지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그 차원을 알고 차원이 높아져서 나중엔 백지로서 크고 작은 게 없고 내세울 게 없을 때는 또다시 요다음에 모습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여러분이 내 모습이기 때문에 따로 모습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자유스럽게, 여기만 내 집이 아니라 우주 삼천대천세계가 다 내 집이니 그저 한 찰나에 이 집도 내 집이요, 저 집도 내 집인데 따로 내가 내 몸을, 내 모습을 그려서 또 내놓을 게 뭐 있겠습니까?

알아듣기 쉽게 요렇게 말을 해 드리는 건데 이 차이가 얼마만큼 크고 귀중한 뜻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이 도리를 완벽하게 안다면 내가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이 내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모습은 다를지언정 마음이야 어찌 다를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마음이 둘이 아닐진대 당신 하나가 이 나라의 임금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어떠한 문제가 잘못돼 돌아갔을 땐 내가 그 대통령 속에 들어가서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거를 잘 지켜 나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커버해 나갈 수 있고…. 대통령의 마음도 그러겠지마는 그 마음과 이 마음이 둘이 아니어서 마음으로부터 오관을 통해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기가 잘못 끌고 간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그것을 확 고쳐서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모습을 따로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매한가지인 이런 세상에 내가 그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그 속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여기저기 나 아님이 없다 이겁니다.

그 뜻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선신에 이르기까지, 부처에 이르기까지 어디고 아니 닿는 데가 없이 내 몸 아닌 게 없다는 얘깁니다. 내 자리 아님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 “이런 것이 옳다, 저런 것이 옳다. 이런 것이 좀 낫다. 이것은 정법이 아니다. 사법이다. 무당이다.” 이렇게 흉볼 것도 없고…. 만약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높이 보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런 거를 흉보지 말고 ‘저런 거는 이렇게 해야 할 텐데….’ 마음 속으로…, 겉으로 입 밖에 내어 구업을 짓지 말고 항상 이익하게 마음을 내 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얘깁니다.

어린애들을 기를 때에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면 그 자녀들이 잘못한 거를 드러내겠습니까? 도둑질을 했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숨길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 자식을 사랑하듯이 숨기면서 거죽으로는 말없이 안으로 굴리면서 이익하게 마음을 내 주는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며 부처님의 뜻이며 바로 보살의 행이라고 봅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우리가 남을 해하게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아마도 억겁을 걸쳐 가면서 요만한 거 하나라도 내가 한 것만치 내게 돌아올 것입니다.

세상에 만약에 조그마한 소나무가 없다면 중치 소나무가 없고 중치 소나무가 없다면 큰 소나무가 없고, 또 삐뚤어진 게 없다면 바로 선 게 없을 겁니다. 조화가 이렇게 이루어져서 진리라고 이름을 지었고 산천초목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자연의 조화가 이렇게 보기 좋다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삐뚤어진 사람, 똑바로 곧게 올라간 사람, 옆으로 굴려진 사람, 땅 끝에 붙어서 자라지도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그렇지 않지만 마음이 그러해서 우리의 삶도 그렇게, 그런 행을 하면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 마음이 중하지 몸이 중한 게 아닙니다. 마음에서 비롯되어서 모든 것을, 몸은 행하게 되고 앉게 되고 서게 되고 말하게 되니까요. 우린 부처를 이룬다 하기 이전에, 깨치기 이전에 이 도리를 알아야 깨쳐도 ‘아하, 다 이렇게 하나하나 나투어 가면서 놓아가고 돌아가는 이 텅텅 빈 그릇을, 괜히 여기다가 내 마음으로 담아 놓고 무겁게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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