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人行 必有我師’, ‘돈’말고 ‘사람’ 보라
‘三人行 必有我師’, ‘돈’말고 ‘사람’ 보라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8.07.13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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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前 국민은행장(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

민병덕 前국민은행장은 사원에서 은행장까지 오른 금융계의 신화이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전의 명수로 불린다. 이면에는 상생의 마음씀씀이가 있었다. 독실한 불자 금융인인 민 前 국민은행장은 현재 무보수로 핀테크 벤처기업 ‘올이프’ 회장을 맡아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공부와 경륜을 사회에 회향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민병덕 前 국민은행장은…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보문고·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국민은행에 입행한 이후 충무로지점 지점장, 영동지점 지점장 등을 거치며 영업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후 영업그룹 부행장을 거쳐 2010년 제4대 국민은행장에 선임됐다. 2011년 국군불교후원회장을 맡아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불사에 크게 기여했으며 2012년 불자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 성공 원동력
부하직원에 배워 위기 극복
‘영업의 달인’ 평가, 승승장구
“부처님이 위기 주신 것” 감사

Q: 민병덕 회장님은 국민은행 입사 후 평직원으로 시작해 은행장까지 하셨습니다. 금융계 신화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국민은행은 대기업인데 비결이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성격이 긍정적입니다. 안 되는 게 없다는 ‘I can do it’이 제 신조입니다. 은행에 첫 입사했을 당시 김천수 수석부행장께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신입행원들이 앉자마자 물컵 반을 들이키고 물컵을 보여주면서 ‘물이 반 담겨있는 잔을 바라볼 때 두가지 시각이 있다’고 하시는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반 컵이나 있네’란 긍정마인드로 직장 생활하면 분명 성공한다고 하는 겁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면 어떤 어려움이든 극복하고 반드시 성공하는 반면에, 매사 부정적이면 환영도 못 받고 직장에서는 도태된다. 제군들은 어떤 걸 선택하겠는가?’ 이런 말이 확 와닿았습니다.

이후 어느 영업이든 저는 사원이 아니라 지점장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서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하겠다고 했어요. 대신에 가정에 소홀해져서 집사람이 고생이 많았죠. 대신 사회에선 인정은 받게 됐습니다.

Q: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닌데, 진급 과정에서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경쟁도 심하고, 위기는 없었는지요?

제가 은행장이 되는데 도움이 된 것이 ‘영업’입니다. 사실 저는 영업을 잘 몰랐습니다. 인사업무만 10년을 했어요. 사람관리, 분업 등 그런 것도 은행장에겐 필요하죠. 근데 은행은 영업 안 되면 망하잖아요. 그만큼 영업능력을 중요하게 봅니다.

이런 제가 영업의 달인이 된 계기가 있었어요. 한때 송탄 지점에 가게 됐습니다. 그 지점은 당시에 퇴직을 얼마 안 남긴 고참 지점장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전 지점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부실 대출이 많아 업적 평가가 바닥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극복할 방안이 막막했습니다. 보통 실적이 안 좋으면 지점장이 1년만 되도 잘리기도 합니다. 먹여살려야 하는 가족이 많으니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냥 부지런히 돌아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요령있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었죠. 당시에 제 스승이 된 사람이 같은 지점 과장이었던 직원입니다. 그 직원은 저와 방문하고자 하는 기업이 있으면 아주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홈페이지, 기업 방침, 심지어 기술 동향까지 모두 공부했습니다.

보통 은행원이 반도체 기술 개발 현황과 시장 전망, 세계 흐름 등은 잘 모르지 않습니까. 영어와 불어에 능통해 원서를 가지고 공부하고 외국 사이트에서 최신 정보를 번역해 익히니 기업 운영진에서 매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이사, 거래 다 여기로 옮겨’ 이렇게 되는 거였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것을 부하 직원에게서 배웠습니다.

Q: 부하직원에게 배우기 쉽지 않은데요. 그냥 직원이 열심히 하는 대로만 해도 되지 않습니까?

논어에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란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동행해 가다보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죠. 근데 아랫사람이든 동료이든, 윗 사람이든 저는 다 제 스승으로 생각하고 배웠습니다. 영업도 후배한테 배운 거죠. 계속해서 노력해 당시 최악의 점포로 간 이후 다음 해에 전국에서 최고 이익을 내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도 위기가 왔습니다. 제가 동국대 출신이다 보니 은행 측에서 동국대가 위치한 충무로 지점장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문제는 충무로 인근이 출판 인쇄 사업체가 많은데, 인쇄 사업이 꺽인 상태란 점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충무로 지점이 등록금 수납 등 동국대 거래를 90% 이상 했는데, 총장님이 바뀌면서 거래은행이 바뀐 겁니다. 지점장으로 오자 마자 말이죠. 모두가 제가 이제 끝났다고 할 때였습니다.

먼저 월급의 반은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미 떠나 버린 동국대 시장은 차치하고, 꺽였다고 평가 받는 출판 인쇄업 사장님들을 만났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 인쇄업도 위기가 기회였습니다.

건물이 없는 인쇄업자분들에게는 지금이라도 건물을 사라고 권유하고, 건물이 있는 인쇄업자 분들에게는 더 큰 건물로 미리 옮기라고 했습니다. 충무로는 서울 중심에 있고 발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본업인 인쇄업이 힘들더라도 임대업이나 다른 쪽으로 수익 변화가 충분히 가능했고, 이런 계획이 주효했습니다. 다시 충무로지점에서 전국 탑을 차지했습니다. 두 차례의 위기극복을 거치면서 저는 사내에서 ‘영업의 달인’ 소리를 들으며 본부장, 부행장을 거쳐 50대에 은행장을 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됐습니다.

민병덕 前 국민은행장은 IMF 등 위기에도 상생의 힘으로 딛고 일어선 기업이 많다며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相生, 성공의 지름길… “기업·조직 新성장동력 얻어”

직원에겐 ‘No’말라 강조
차분한 마음에 머리 맞대면
또 다른 방법이 도출 돼
“사람에게 답이 있어요”

Q: 지금와서 그분들이 고마워하겠네요. 은행 입장에서야 대출이자 등 수익 측면에서 권유했다고 해도 고객 입장서도 잘풀린 것 아닙니까?

그렇죠. 함께 잘되었죠. 그분들은 지금 인쇄업에 임대업으로도 잘 사십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은행이 은행 이익만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입니다. 고객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돈을 따라가다 보면 고객에게 손실을 입히며 은행의 이익을 추구할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고객이 떠납니다.

결국 상생해야 합니다. IMF나 2008년 금융위기 때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습니다. 모두가 은행은 비오면 우산을 뺏는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Q: 그래도 은행 측에서 위험이 크지 않습니까? 기업의 비전이나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할 듯하네요.

예. IMF때 사장님 손을 잡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기름때가 묻어서 미안해서 악수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성실함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고 비전을 봐야 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주변의 평판도 찾아보면 됩니다. 지역 향우회나 동종업계 등에 물어보면 됩니다.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투자하고 회생을 도와주면 결국 모두가 잘 되는 방향으로 이뤄집니다.

절대로 은행이 심사를 한다고 해서 갑의 위치에 서면 안됩니다.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열정을 보고 함께 커갈 수 있게 힘을 넣어줘야 합니다.

Q: 그럼에도 은행에 가면 참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은행에 갔다가 기분이 상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하지만 원하는대로 이뤄지면 참 고마워지는 게 또 은행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은행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No’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객한테 ‘안 됩니다’ 하면 화를 냅니다. 그런데 면전에서 ‘No’ 하지 말고, 이유를 설명한 다음 나중에 지점장이나 팀장에게 그 고객을 넘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화내는 분들이 숨을 좀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다른 측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생깁니다.

대부분 고객들은 ‘A는 A’ ‘B는 B’라는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금융업에 있다보면 꼭 A를 하지 않아도, 해결가능한 방법을 알지요. 일정부분이라도 문제가 해결되면 화난 마음은 고마움이 됩니다. 그런 분들이 충성고객이 되고 은행을 홍보하는 영업맨이 되는겁니다. 화가 애정으로 바뀌는 그 마음쓰임을 잘 아는게 중요합니다.

Q: ‘마음쓰임’이라고 하셨는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음이 중요하고, 경영도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금융업은 굉장히 민감한 직업같습니다. 사람을 응대하고 다루고, 또 사람이 민감해하는 돈을 다룹니다. 실수하면 피해도 매우 크고요. 조직관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최근 은행업무는 부동산과 시사, 의학까지 고객들의 필요한 모든 부분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확장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이 전천후가 되어야 합니다. 기계가 많은 일을 하지만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고, 결국 사람 관리가 중요합니다. 저는 드러난 실적을 가지고 사람을 일괄적으로 다루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두 차례 퇴직할 뻔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죠.

정년이 내일이라도 잘하면 승진시킨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점장들은 책임감으로 밤낮없이 뛰지만 팀장들은 실적 안 나와도 월급이 제때 나오니 나몰라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점장 승진이 안 된, 나이 많은 팀장들의 경우 더욱 심하죠. 이런 이들에게 지점장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사람마다 장점이 있습니다. 살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엉뚱한 일을 시켜면 제대로 능력발휘를 못하는 겁니다. 리더는 그것을 잘 캐치해야 합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용병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Q: 모든 사회생활이 그렇지만 경쟁 속에서 마음고생도 심하셨을 겁니다. 불교란 종교가 어떤 도움이 됐을까요?

모두 부처님 가피라고 봐야겠지요. 저희 집안은 부모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어요. 보문고등학교나 동국대에 진학한 것도 부모님 영향이 컸어요. 살아오면서 저희 집안에 불행한 일이 있었어요. 저보다 10살 많은 형이 있었습니다. 형은 수재였어요. 그런데 제 나이 5살 때 형이 중학교 다니다가 학교 폭력으로 맞아서 장 파열로 사망했습니다.

형이 죽고 나니 부모님이 저를 학교에 안 보내려고 했어요. 그런 와중에 어머니께서 스님에게 애를 맡기면 명이 길어진다는 얘기를 들으셨나봐요. 부모님은 공주의 한 암자로 저를 보냈습니다.

머리를 깍고 행자복 입고 대웅전 청소하고 절하고 염불하곤 했습니다. 1년 반 쯤 절에서 있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시내에 어머니와 병원에 가기 위해 나섰습니다. 14살이었어요. 차 창가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니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1년 듣게 고등국민학교라고 중학교 전에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판단을 내린 게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거였죠. 당시 학교에 안 들어갔으면 스님이 됐겠죠. 그 선택으로 스님이 안 되고 은행장이 됐어요.

 

Q: 어렵게 얻은 아드님이 초파일에 태어나기도 했지만 불심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은행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던 것 같은데요.

제가 불교 종립학교를 계속 나왔지만 삶이 바쁘니 아내가 진관사에 다닐 때 함께 가서 절하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 공부를 한 건 현재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을 만나고 나서죠.

2010년 제가 국민은행장을 하던 시절 군종교구장으로 계셨습니다. 당시 자광 스님은 논산 연무대에 호국연무사 신축불사 모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저에게 군불교후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흔쾌히 맡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불교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은행장으로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과거 국민은행이 군 내 금융거래를 독점했는데 신한은행에 뺏겼던 상황이었습니다.

국방부 고위직들을 만나면 다들 젊었을 때는 국민은행을 썼는데, 왜 지금은 신한은행이냐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임기 중이든 임기가 끝나든 반드시 군 내 금융거래를 찾아오겠다고 원을 세운 상태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군불교후원회장을 맡아 자광 스님과 130억원을 모연해 법당을 지었습니다. 거의 다 자광 스님이 하시고 저는 조금 거들었는데 2012년 불자대상도 받게 됐습니다.

Q: 최근 사회가 상생, 더불어 사는 사회가 화두입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새로운 성장 동력 얻는데 화합과 상생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은행장을 하시면서 많은 기업을 상대하셨잖아요. 그 많은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보셨을 텐데 기업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부처님 뜻대로 보면 모든 게 연기법에 의해서 이것과 저것이 인연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부모님의 인연에 의해 이뤄진 것이죠. 모든 것이 관련된 인연이기에 항상 상생이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앞서 밝혔듯 ‘나만 잘 살겠다’ 하면 오래 못갑니다. 거상 임상옥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현재에도 대입되는 이야기입니다. 기업이 어려워져도 주위를 챙겼던 기업은 다시 잘 될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돌아옵니다.

Q: 요즘 봉사를 많이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봉사하시면서 얻은 기쁨은 뭐가 있을까요? 어떤 봉사들을 많이 하셨어요?

지난달까지 금융감독원서 옴부즈맨으로 2년 간 봉사를 했습니다. 한국베트남문화교류협회도 도와준 적이 있어요. 저는 요청만 오면, 특히 벤처기업들도 많이 돕고, 무보수로 도와줍니다. 올이프라는 기업도 창업에 있어서 도움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창업이 기술만 갖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인프라나 경영능력이 있어야 크게 성장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제가 가진 경륜을 활용해 도와주고 있습니다. 제가 재능기부를 해서 그 기업이 성장하면 큰 기쁨을 느낍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제 경력과 연륜, 인프라를 활용해서 사회 발전을 위해 재능기부 하겠다는 게 좌우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룰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를 필요로 하는 신생기업들이나 사회단체, 어디든 막론하고 언제든 가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취업, 실업, 창업문제에 대해서도 봉사할 의향이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아쉬웠거나 회한으로 남는 순간들이 있었나요?

너무 직장에만 열정을 쏟았던 것 같아요. 가정에는 무척 소홀했죠. 일에만 올인하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여생은 가정에도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집에서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 것도 재능기부에 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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