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장치 부수고 절도… 20년 지나도 ‘묘연’

사진 왼쪽부터 현대 도난된 갑사 약사여래회상도, 갑사칠성도, 갑사 신중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鷄龍山) 서남부 연천봉 아래에 위치한 갑사는 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의 말사(末寺)이다. 갑사(甲寺)는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 불렸다. 이 사찰은 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679년 의상(義湘)이 사찰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갑사는 859년과 887년에 중창하였지만 구체적인 현황을 알 수 있는 문헌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신라 화엄십찰 중 한 곳, 갑사
80~90년대 불화 3점 도난 확인
재산목록 비교 시 10점 더 유출

소장 문화재 체계적인 자료 연구는
잊혀진 사찰의 역사 복원하는 방법

1424년 4월 조정에서 전국의 사원에 거주하는 스님과 토지의 소유를 정할 때, 예조에서 ‘충청도 공주 계룡사는 원래 100결의 토지가 있었지만, 이제 50결을 더해서 70명의 승려를 거주토록 할 것’을 건의할 정도로 충남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1583년 여름에 정문루(正門樓)가 중수되고, 1584년 여름에 철 8,000근으로 대종(大鐘)을 주조하였다.

1597년에 일어난 정유재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후, 1604년에 인호(印浩), 경순(敬淳), 성안(性安), 병윤(竝胤) 등이 대웅전과 진해당(振海堂)을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1617년 내부 수미단에 삼세불과 그 사이사이에 보살상 4구를 배치한 삼불과 칠보살의 칠존이 봉안되었다. 1654년에 사정(思淨), 신휘(愼徽) 등이 관찰사 강백년(姜栢年)의 도움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1659년에 여주목사 이지천(李志賤)이 지은 계룡산갑사사적비를 건립하였고, 1738년에 표충원(表忠院)을 세웠으며, 1797년에 원선사(圓禪師)가 중창하였고, 1875년에 중수를 거쳐 1899년에 적묵당(寂默堂)을 신축하였다. 일제강점기 1584년에 주조된 동종은 금속기의 공출로 제공되었다가 광복 후 인천에서 다시 찾아왔다.

일제강점기 갑사 재산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조선총독부 관보본이 남아있다. 두 내용의 품목과 수량이 차이가 나 작성 시기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재산대장에서는 불교회화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고 ‘불성급각존신탱화(佛聖及各尊神幀畵) 총 55점’으로 적어놓았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관보본은 1932년 11월 10일에 작성된 자료에서 불상과 불화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지만, 본사의 전각이나 암자별로 나누어 적었는지 불상, 불화, 공예 순으로 반복해서 적어놓았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2016년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는 갑사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로 약사회상도(1998.12.20 도난), 칠성도와 신중도(1984.3.29 도난)가 올라가 있다. 이외 일제강점기 55점에 달하던 불화는 현재 본사와 말사를 합쳐도 43점이라서 최소한 10점이 더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1730년대 불화승 의겸이 조성한 삼세불도 중 약사회상도 도난에 관해서는 신문 기록이 남아 있다.

〈한겨레신문〉 1998년 12월 24일자에는 “이상재 선생 유품, 공주 갑사 탱화 등 도난당해 (前略) 지난 21일에는 공주시 계룡명의 전통사찰인 갑사 대웅전에 도난방지용 열감지장치를 부수고 침입한 절도범이 가로 280cm, 세로 455cm의 탱화 ‘약사여래회상도’를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이들 도난 사건이 문화재 전문절도범 등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라며 기사화되었지만, 20여 년 동안 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재산대장에는 불교회화는 55점으로 적혀 있고, 1932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관보 재산대장에는 불교회화가 61점, 현재 갑사와 산내암자에 봉안된 불교회화는 합하여 38점이다. 그리고 현재 도난불화 가운데 대웅전 약사여래도, 칠성도와 신중도가 종단에 신고되었지만,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 칠성도와 신중도는 도난조차 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

도난된 갑사 대웅전 약사여래도는 대웅전에 걸려 있는 삼세불도 중의 하나로, 현재 영산회상도와 아미타여래도는 보물 제16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가로 285cm, 세로 441cm라 도난당한 약사여래도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중앙에 자리한 약사불은 키형 광배를 갖추고 오른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은 상태로 대의자락을 반원형으로 걸치고 있다. 약사불 아래로 협시보살과 사천왕 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화면의 윗부분 여래의 광배 좌우로는 불제자 아라한과 신중들을 꽉 차게 그려 넣었다. 세련된 필치로 각 존상의 얼굴과 신체, 문양 등을 표현하고,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이 불화와 같이 그려진 영산회상도와 아미타회상도의 화기를 참조하면, 1730년에 수화승(首畵員) 의겸(義謙)과 행종(幸宗), 채인(採仁), 일민(日敏), 덕민(德敏), 각천(覺天), 지원(智元), 정관(晶寬), 책활(策闊)이 함께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도는 기존 자료에 의하면 1820년에 조성된 작품이다. 전체 화면가운데 상하를 구름으로 구획하고, 화면 상단 중앙에 배치한 치성광여래는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르고 있으며, 그 좌우에 보관을 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서 있다.

그 옆으로 칠원성군이 화현한 칠여래 등이 합장을 하고, 하단에는 수성노인을 중심으로 자미대제와 칠원성군이 일렬로 서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19세기에 그려진 칠성도 가운데 매우 귀한 구도라서 특별전시회에 출품되어 나온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자료에 따르면 신중도 또한 칠성도와 함께 1820년에 조성된 작품이다. 화면 구성을 보면, 전체화면을 상하로 구획하고, 하단 중앙 위태천을 중심으로 신장(神將)을 화면 가득 빽빽이 채우고, 상단에는 대자재천을 중심으로 범천과 제석천 등을 배치하였다. 화면의 인물 배치와 설채법 등에서 19세기 전반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양식적인 특징이 보이고 있다.

공주 갑사는 동학사와 더불어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수 백점의 성보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다.

재작년 대웅전 내부 수미단에 삼세불과 여래존상 사이사이에 보살상 네 구를 배치한 삼불사보살(三佛四菩薩)의 칠존(七尊)이 1617년에 비구니 묘총(妙聰)과 은덕(恩德)이 시주하여 조각승 행사(幸思), 덕현(德玄), 응매(應梅) 등이 제작한 것이 새롭게 밝혀져 임진왜란 이후 갑사의 역사를 복원하게 되었다. 이처럼 갑사에 소장된 문화재의 체계적인 자료 공개와 연구는 잊혀진 사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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