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유마경(維摩經) 2

〈유마경〉을 읽는 내내 나는 유마거사의 ‘청정한 마음이 정토를 만든다.’라는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청정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탐욕과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다. 모든 중생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으니 만일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그때서야 치유된다.” 는 말처럼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보살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항상 부처님처럼 살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신명을 다 바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보살, 혹은 불자의 삶은 자비심으로 오로지 중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제자품〉에서 유마거사가 병이 깊어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많은 이들이 병문안을 갔다가 오히려 유마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가르침을 듣게 되자 더욱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정작 부처님의 제자는 한 명도 오지 않자 왜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연민의 마음조차 내지 않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문병을 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병문안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라며 발뺌을 하는데 그 이유는 유마에게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은 화려한 설법으로 깔끔하게도 한 방에 설복을 당해 이번에도 갔다가 낭패를 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다는 것은 바로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자비심이 많은 가섭은 가난한 사람에게 복을 지어주기 위해 특별히 가난한 동네만 다니며 걸식하고 설법하였다. 그런 가섭에게 유마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함을 내세워 걸식할 때에도 수행자는 빈부라는 분별심을 내지 않은 무심한 상태로 걸식을 통해 대 자유를 얻어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가짐을 지니라 충고했다. 대승의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설법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니 가섭으로선 이 날의 사건으로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란 안목을 성취하게 된다. 중생을 바라보는 안목을 분별하는 마음 없이 지닌다는 것은 진정한 보살행이 아니면 어렵다. 매사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 이루어져야 가능할텐데 집착하지 않는다면 나의 의식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금강경〉에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라 하고, 〈유마경〉에선 ‘우리는 머무는 바 없이 모든 법을 세운다(無住本入一切法)’말한다. 무주(無住)에서만 집착하지 않는 무분별의 마음이 가능하다는 유마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삶의 자유로움,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할 줄 아는 여유로움을 지닌 마음을 지녀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중생의 사랑이라는 것은 불평등한 사랑이지만 보살의 사랑은 평등한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까 보살의 사랑은 중생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고 부처님의 사랑은 중생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리라. 사리불이 천녀를 만났을 때 여인은 성불할 수 없다는 조건을 알면서도 왜 몸을 바꾸지 않느냐 묻자. 천녀는 피식 웃으며 유마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최소한 남녀의 차별상을 벗어나야 한다며 순식간에 사리불을 여인으로 바꾸었다가 되돌려 놓는다. 모든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우린 단지 이름이 남자. 여자일 뿐이다.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이 일체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중생을 차별하는 마음 없이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과 미움, 청정과 부정, 중생과 부처님, 번뇌와 해탈 이 모든 것을 벗어나 자유롭게 둘이 아닌 하나로 사랑하는 것, 그런 자비의 마음, 보살의 정신을 갖는다는 것을 우리는 불이(不二) 정신이라 한다.

유마는 법자재보살로부터 문수보살까지 32분의 보살에게 ‘어떻게 하면 불이법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모두 자유롭게 각자 깨달은 바를 말해보시라!’고 질문한다. 보살들은 유마와 담론을 통해 가장 불교적인 궁극적인 가르침, 중도, 혹은 절대 평등의 경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진정한 부처님의 안목을 새롭게 정비한다.

32명의 보살들이 나름 불이법문을 설하는 것을 다 듣고 난 문수보살은 이런 논리적 견해보다 직접 체험하라고 말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마는 문수를 향해 묵묵히 침묵한다. 어쩌면 유마의 언어적 유희를 문수가 한 방 날린 것처럼 보인다. 고수 중의 고수인 유마와 문수는 이렇게 우리의 안목을 높혀 놓았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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