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2

수보리가 기원정사의 사리불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하자 급고독(수잣타)장자는 집안의 경사라며 무척 좋아했다. 코살라국에서 출가한 유일한 인물이 자기 조카이니 그를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은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다. 매일 기원정사에 와서 부처님을 뵙고 나면 조카스님을 보고 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는데 정작 수보리는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웠다.

공부하려고 앉아 있으면 그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 때문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없고 원망이 쌓여갔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부가 진전이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부처님께 상담하게 되니 바로 금강경의 시작이다.

탱화와 벽화 속에 등장하는 수보리는 언제나 나이가 많은 장로의 모습만 보다가 일본 나라의 흥복사(興福寺) 국보관에 덴표시대(天平, 729~749)를 대표하는 십대제자 조각상들 속에서 수보리와 마주친 나는 감동으로 울 뻔 했다. 출가해서 6~7년쯤 된 금강경속에 등장하는 수보리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발심해야 하며, 어떻게 수행해야하고, 수행과정에서 일어나는 흔들리는 번뇌의 마음을 항복받아야만 할까요?”(應云何住 云何修行 云何降伏其心, 魏譯本)

당시 수보리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딱 알맞은 질문이었다. 수보리가 처음 소승의 수행경지에서 철저한 자각의 마음으로 생사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가 머물고 있던 삶의 현장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번뇌의 마음이 자신을 갈아먹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성불의 길이 자신의 문제를 벗어나 자리이타의 본질, 일체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출가자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금강경은 수보리를 대승보살의 경지로 입문케 하는 경전이며 동시에 우리들에게도 개인의 삶의 문제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삶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경에선 우리들에게 한결 같이 의심을 끊고 그 자리에서 신심을 내는 것으로 길을 찾아 가도록 이끈다. 확고한 신심과 믿음이 없다면 중생은 보살이 될 수 없고 부처도 될 수 없다. 신심의 반대가 의심이니 이 의심은 도에 나아가는 마음을 장애한다.

누구나 청정한 수행을 하면 반드시 드는 이 의심에 셋이 있으니 사람을 의심하고, 부처님 법을 의심하고, 자기의 무한한 능력을 의심하는 것, 수보리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 수보리는 급고독장자를 의심하고, 깨침의 세계가 광대한 것에 놀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하고, 근기가 낮은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흔들렸을 때, 부처님은 그에게 금강같은 가르침으로 일시에 고민을 해결케 하셨다. 재물로 마음이 상했던 과거의 흔적과 상처가 현재의 삶을 장애하는 수보리에게 부처님의 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종류가 난생, 태생, 습생, 화생과 유색과 무색, 유상과 무상, 비유상 비무상들을 나는 다 남김없이 열반에 들게 하고자 한다. 보살은 이처럼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모두 인도하여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며, 중생을 인도했다는 생각도 내려 놓아야 한다. 왜냐면 수보리야 보살이 중생을 이끌면서 아상(교만심), 인상(우월감), 중생상(열등감), 수자상(애착과 집착심)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은 집착없는 마음으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해야하며 모양, 소리, 향기, , 감촉, 일체법까지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주상보시만이 공덕이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보살이라면 마땅이 부처님가르침대로 안주하면 된다.”

재물에 관한 장애(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던 젊은 수보리에게 부처님의 답변은 정말 최고의 가르침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너는 집착하는 마음없이 말 법으로써 중생에게 보시하거라.”

우리는 수보리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변인 금강경에서 펼쳐지는 철학적인 언어의 집착은 잊고, 보살의 삶을 위하여 해야 할 수행과 번뇌를 다스리는 법이 바로 차별 없는 마음으로 중생들에게 무주상 법보시의 바라밀행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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