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속에서 나오니 한마음 속에 모든 걸 맡겨 놓으세요
한마음 속에서 나오니 한마음 속에 모든 걸 맡겨 놓으세요
  • 대행 스님
  • 승인 2018.06.1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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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에 한번 굴러서 나오는 그 마음은 바로 법이 된다

 

오늘 이렇게 날씨도 좋지 않은데 마음으로 즐겁게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떠한 마음이냐 하면, 오히려 여러분이 부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렇습니까? 스님네들이나 여러분이 도반으로서 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궂은 날씨도 마다 않으시고 이렇게 한자리를 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밑바닥이 차지는 않습니까?

대중 예!

큰스님 허허허, 몹시 걱정이 됩니다. 나는 이렇게 방석을 깔고 앉았는데 여러분은 찬 바닥에 앉아서 말입니다. 이럴수록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활하시는 것을 보면 항상 자기 마음에서 나오니까 자기 마음인 줄만 아시고 그것을 다스리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과거에 살 때 인연 지은 악업 선업의 그 생명체들이 과거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러분 몸속에 다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돼서 말입니다. 한 덩어리에 있죠. 그런데 그 한 덩어리가 컴퓨터라면 바로 그 덩어리 속에 의식들이 잠재하고 있어요. 잠재하고 있다가 살아나가는 데에 차례차례로 생각을 내게 해서 애고도 오게 하고 불만도 생기게 하고 싸움도 하게 하고 병고도 생기게 하는 그 가지가지를 어떻게 말로 다 하리까. 그런데 여러분이 생활하는 가운데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거, 안에서 천차만별로 일어나는 거, 그것을 마음이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은 우주에 직결이 돼 있고 세상과도 가설이 돼 있는 바로 한마음의 주인공입니다. 그 주인공 속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경험과 체험을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나쁘고 좋은 거를 너무나 잘 압니다. 해(害)가 오는 것도 알고 또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잘 알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잘 압니다. 알고 있는 이 마음이 각자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서 그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의식들이 자꾸자꾸 나오게 되면 그 마음을 거쳐서 나옵니다. 나오는 구멍은 한 구멍이기 때문이죠. 들고 나는 구멍이 한 구멍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그 몸속에 있는 생명의 의식들이 바로 악업 선업을 지은 장본인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마음이 나오면 그저 내 마음이 그렇게 하는 줄 아시지만 내 마음이 그러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은 잘못됐다는 것도 알고 잘된다는 것도 알고 전체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마음도 그 마음속에 있고 모두 다 잘 아는데, 그 아는 마음대로 행하는 게 아니라 잠재해 있는 생명의 의식에 의해서 행을 하고 있거든요. 이 뜻을 헤아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러분 마음은 해(害)가 오는 것도 알고 또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잘 알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잘 압니다.
알고 있는 이 마음이 각자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해하시게끔 이러한 말을 항상 해 드리죠. 마음의 선장이 있고, 그 선장에 의해서 의식들이, 자생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이런 소립니다. 그 자생중생들의 의식이 내 마음을 거치면서 나오는 것을 항상 마음의 선장으로 다스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건 줄 알고 속아서 항상 그렇게 헤매고 있다는 얘기죠. 마음 하나 잘 쓰면 잘 쓰는 대로 모두가 뒤바꿔지고 이 세상이 그렇게 참답게 잘 돌아갑니다. 빛보다도 더 빨리 지구도 돌아가고 모두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놓인 이 컵 자체도, 이 책상도 모두가 다 지금 쉴 새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거를 진짜인 줄 알고 항상 나오는 대로 분노를 일으키고 그러시는데, 거기에서는 내가 인연 지은 대로, 즉 말하자면 악업을 지었으면 악업이 나오고 선업을 지었으면 선업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 모든, 즉 말하자면 유전성이라든가 영계성, 업보성, 세균성, 인과성 이 전체가 바로 내 악업 선업 지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나가는 데 쉴 사이 없이 안팎에서 자꾸 나오는 것을, 나오는 대로 속고 자꾸자꾸 끄달리신다 이겁니다.

그러니 내가 항상 여러분한테 얘기해 드리는 것은 여러분을 끄달리게 하는 그 마음을, 잘 나오는 거든지 못 나오는 거든지, 잘 나와서 잘 이루어지는 것은 감사하게 마음의 선장에 놓고, 잘 안 나오는 것은 ‘잘 나오게 하는 것도 선장에게 달려 있으니까 당신만이 잘 이끌어 갈 수 있게끔 나오게 할 수 있다.’ 하고 거기에다가 맡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맡겨 놓으면 맡겨 놓는 대로 의심을 하고, 또는 맡길 수가 없다고 그러거든요. 여러분의 마음의 선장은 하나지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장이라는 그 타이틀이 선장이 아닙니다. 진짜 그 좋은 생각과 알 수 있는 마음, 심안으로 볼 수 있는 마음,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마음,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 있는 마음, 남의 속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 자기가 부모의 몸을 빌려서 영원함과 더불어 형성됐다는 앎을 숙명통이라고 한다면 그 다섯 가지 속에서 바로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이 된 것처럼 항상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몸속의 그 의식들이 컴퓨터에 입력돼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겁니다. “나오는 것처럼”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거 들으실 때는 어려우시겠지만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어요. 무조건 내 마음의 선장은 그 모든 걸 알고 보고 듣고 하지마는 바로 몸속에 있는 중생들은 그렇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거기서 입력된 대로 나오기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선장에 의해서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까 한마음 속에다가 모든 걸 맡겨 놓으시라는 겁니다. 그 안에서 병이 났으니까 그 안에서 고쳐야 하고, 그 안에서 애고를 내보낸 거니까 그 안에서 애고를 처리해야 하고, 모든 것은 다 그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대답이 안 나옵니다. 하하하….

대중 네! (대중 웃음, 박수)

큰스님 지금 우리에게는 생활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그 속에서 뛰어야 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천하는 대로 순응해서, 즉 말하자면 내 마음속으로 두뇌, 즉 누진을 굴려서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입니다. 시대에 따르면서 한생각을 해서 뛸 때에 천 리를 뛸 수 있고 만 리를 뛸 수 있는 그런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 내용을 모르시지만 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항상 얘기해 드리죠. 이 자리에 앉아서도 자기 집을 갔다 올 수 있다고요.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시면서도 자기 집에 갔다가 한꺼번에 보고 오실 수 있죠? 내 육신이 움죽거리지 않고도 집에 갔다 올 수 있듯이 무엇이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눈이 떠지지 못하고 마음의 귀가 뜨이지 못해서, 지금 여기서 자기 집에 갔다 오는 것처럼 어디든 그렇게 갔다 오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상세히 보고 오실 수가 없는 거죠. 갔다 온다 못 갔다 온다 이런 것도 없죠. 지금 집에 갔다 오시는 데는 내가 “갔다” 하고 말할 수도 없고 “왔다” 하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한 찰나에 내가 그냥 눈 한 번 깜짝하니까 그냥 갔다 오게 되고 알게 되더라.” 이런 거와 똑같이, 심안이 뜨이면 일체를 다 우주와 더불어 같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이 공부 하시는 분들에 한해서도 그렇고 일체제불도 그렇고, 모든 천백억화신의 보살들도 그렇고 역대에 내려오는 조사님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한테 내가 “너희 집에 갔다 왔다.” 이러지는 않아도 여러분 가정에 가면 뜰이 어떻게 돼 있고 신발이 어떻게 놓여 있는 것까지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뱃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공부입니다. 여러분의 뱃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가 하면 여러분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으며,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거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러분한테 얘기해 드리는 것은 미래에 어떻게 되고 과거에 어떻게 됐고 이것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앞으로 오지 않았으니까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 있다면 여러분의 몸속에 지금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연이 돼서 자생중생들이 북적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는 뜻은, 왜, 요새 컴퓨터 있죠? 컴퓨터에다 입력을 해 놓으면 입력대로 나오지 그 외에 다른 게 나오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컴퓨터에 입력이 되듯 모두 자동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여러분이 가정생활을 하며 살아나가는 지금 생활 속에 자꾸자꾸 나오는 겁니다. 좋은 일도 나오고 언짢은 일도 나오고 애고도 생기고 병고도 생기고 뭐, 일이 한두 건이 아니죠. 이렇게 생기는 이치가 어디에서 나오느냐? 과거에 죄를 많이 지어서 내가 이렇다고 하는데, 입력이 돼서 바로 여러분 몸속에 있는 겁니다. 그런 거니까 과거도 찾지 말고 미래도 찾지 말고, 현실도 모든 게 공했다 이겁니다. 단지 입력대로 나오는 거니까 그 입력한 데다가 다시금 맡겨 놓는다면 과거에 입력된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팔자 운명도, 영계성, 세균성, 인과성, 유전성, 업보성 이 모두가 무너지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새로이 생각하고 사시는 그것이 그냥 입력돼서 자꾸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려 있고, 여러분이 어떡하면 사는 동안까지 애고나 병고에 휘달리지 않고 자유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는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교가 생겼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교는 영원한 겁니다. 생명이 불(佛)이요, 말로 전달이 되고 통신으로 전달이 되고 뜻으로 전달이 되고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되는 그 자체가, 바로 무의 세계 유의 세계, 죽은 세상 산 세상이 전부 연결이 되고 곤충에 이르기까지 연결이 되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 깎은 사람만이 불교를 믿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든지 가톨릭교를 믿든지, 알라신교를 믿든지 티베트 불교를 믿든지, 어떠한 종교를 믿든 간에 불교 안에 있는 거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왕지사 칼을 뽑았으면 그 칼로 내 동료들도 살리고 이웃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고, 모든 일체 만물의 은혜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법을 배운다면 모든 조상들과 일체제불의 은혜도, 돌 쪼가리 하나 나무 한 그루의 은혜도 다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최상승 공부를 하는 겁니다. 지금 과학이 아무리 발전이 됐다 하더라도 과학자들이 자기가 은하가 될 수가 없고 자기가 태양이 될 수가 없고, 자기가 위성이 될 수가 없고 자기가 나무가 될 수가 없고, 자기가 곤충이 될 수가 없고, 천차만별의 일체 만물만생이 자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일체 만물만생이 다 내가 될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용도, 어떤 소원이든지 그것에 따라서 모두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고 분자로 화해서 여러분 모두에게 응해 주시는 응신으로서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 만 개도 되고, 곤충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을 꽉 차게 다 응해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뜻이 그러하다 이겁니다. 만약에 소가 무명을 벗겨 달라고 애달프게 애원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정성을 지극하게 한다면 바로 부처님은 소 속에 들어가서 그 소 무명을 벗겨 줄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마음이 그 소 속에 들어간다면 소가 되시고, 한 찰나에 말입니다. 한 찰나에 무명을 벗겨 주고 나오시고, 돼지 속에 들어가면 돼지의 무명을 벗기고 나오시고, 사람의 차원에 따라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화하시고, 또 찰나에 화해서 부처가 되시고, 이렇게 찰나찰나에 나투시는 그 만 가지 법은 헤아릴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말로 하려면, 바로 평등공법으로서 문 없는 문으로 오고 감이 없이 여러분에게 응해 주시는 천차만별의 이름을 가진 여래라고 합니다. 또 부처님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 여러분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공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리를 하니까 또 이 생각이 나네요. 마음은 바다도 없기 때문에 배도 소용이 없고 높은 산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미국을 간다고 합시다. 그런다면 산과 물을 넘는다고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미국도 한 찰나요, 요 문지방 너머도 한 찰나입니다. 마음이기 때문에 저승과 이승을 찰나찰나 한 찰나에 넘나들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이 세상 자체가 바로 죽은 세상 산 세상이지 딴 세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생활을 하시면서 잘 아시겠죠. 나쁜 일을 하면 교도소에 가고 감옥소에 가고 경찰서에 가고 이런다고요. 또 남이 알지 못하게 일을 저질렀는데 남이 모른다고 그래서 지옥고가 없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은 것을 여러분 마음속에서 알기 때문에 그게 마음의 지옥고입니다. 마음에 지옥고가 벌어지기 때문에 현상세계에 나오는 대로 받는 겁니다. 마음에 지옥고가 입력이 돼 있으니 그게 안 받고 될 법한 일입니까? 한 치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은 거는 여러분이 꼭 받게 마련이고, 여러분이 좋은 일을 하신 거는 여러분이 그 결과를 꼭 받게 마련이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줬다고 해서 ‘내가 그걸 줬지.’ 이러지 마세요. ‘내가 살렸지.’, ‘내가 참 많은 걸 갖다 주었는데….’ 하시지만 그게 아닙니다. 남을 갖다 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왜 은행에 돈을 갖다 넣습니까? 그 은행 사람들 잘 먹고 잘살라고 갖다 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되찾아다 쓸 양으로 은행에 갖다 넣으시죠?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냥 남은 이렇게 힘들여서 얘기하는데 여러분은 그저 희미하고 아리송하게, 들을 때만 듣고 그냥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씀드린 것을 좀 심사숙고해서 이 손을 가슴에 얹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이 행동 하나에, 이 마음먹고 행동 한 번 하는 데에, 허! 세세생생이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세세생생이 달려 있는가 하면 자손 대까지 내려가면서 달려 있는 겁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보니까 어떤 거사가 직수굿이 짐을 지고 가는데…, 스님네들이 어떠한 일을 하든 상관없이 자기 일만 꾸준히 할 수 있는 어떤 거사가 눈에 보였습니다. 근데 그 아주 하찮은 것이지만 꾸준히 짊어지고 가는, 아무 이유도 붙이지 않고 가는 그 행을 보고 ‘아!’ 하고서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천 년 만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다고 그러지만 여러분이 하나하나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정말 눈 뜨고 귀 뜬 사람한테 한 번 띄기만 하면 그게 천지를 진동하고도 남음이 있는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조그만 거라고 우습게 생각하고 크다고 크게 생각을 하고 이러지 마세요. 조그마한 데서도, 즉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의 뜻이 아마 거기에 맞지 않는가 싶습니다. 내가 경험을 해 보니까 그렇거든요.

이걸 어떻게 속속들이 여러분한테 말로 다 하리까? 내가 스스로 깨친 건 내가 아는 것이지 여러분이 아시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이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체험하고 그러면서 반야줄을 잡고 놓치지 마시고 항상 생활하는 데서 행선으로써 하십시오. 참나를 믿고…, 그 의식에서 그냥 나오는 자체가 바로 헛생각으로 나오는 거니까, 그거를 번뇌 망상이라고 합니다. 헛생각으로 나오는 것을 마음에서 나오는 줄 알고 속지 마시고, 또 속지 않기 위해서 선장의 주장자에 모든 것을 다 맡겨 놓으십시오. 맡겨 놓으면 거기서 바로 입력이 되면서 나오기 때문에 모두가 재생이 되고, 구정물이 나올 것도 바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새 물로 바뀌어 나옵니다. 주장자에 한번 굴러서 나오는 그 마음은 바로 법이 되지마는 의식에서 나오는 생각대로만 여러분이 그냥 하신다면 그거는 바로 중생들의 마음이기 때문에 걸리게 됩니다. 모든 게 잘못되게 되고 잘되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파산까지 이르게 됐다고 어떡하면 좋으냐고 하기에 야단을 막 쳤습니다. 왜 당신네들이 그렇게 해 놓고, 그것도 처음에 그렇게 됐을 때 말을 하지 못하고 인제 아주 망하기 직전에 그냥, 다 뺏길 때 와서 얘기하느냐고요. 좀 생각들이 있어야죠. 야단을 치고 나니까 내 마음도 안됐죠. 하지만 그대로 보냈어요. 며칠 있다가 그게 어떻게 뒤집어져서 잘됐다고 좋다고 하고 왔는데 말입니다, 나는 그래도 미심쩍은 게 뭐냐 하면 그 한 찰나의 괴로운 거는 면했는데 그 사람에게 또 그런 게 닥쳐오면 어떡합니까, 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한테 자꾸자꾸 의지할 수가 있습니까? 자기가 뿌린 것 자기가 거두어야 하고 자기가 뿌려서는 안 될 일이라면 냉정하게 단호히 끊고, 해야 할 일이면 단호히 해야죠. 이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얻어야만이 이 세상에 조금도 어김이 없고 자유스럽고 즐겁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겁니다.

이 공부는 이 세상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공부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무렇게나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과학자들만 얘기할 게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도 가만히 보십시오. 모두 바깥으로 끄달리고 다닙니다. 지금 뿌리가 썩어서 죽어 가는데 저 딴 나무를, 남이 볼 때 크고 좋은 나무를 보고서 그냥 살려 달라고 하니, 아니, 그 나무에서 이쪽으로 와서 이쪽 싹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어리석습니다. 냉철하고 좀 단호하게 인생을 돌아다볼 줄 알고 자기가 어디서 와서 지금 무엇을 하면서 걷고 있는지 그것을 여러분이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 두 발을 만들어 놨습니까? 기울지도 틀지도 말라고 두 발을 해 놨지 않습니까? 한 발만 없어 보십시오. 절름발이죠! 왜 두 손을 만들어 놨습니까? 한 손이 없으면 병신일 뿐만 아니라 한 손으로 다 들 수가 없어요. 한 손으로 집을 거나 집지요. 이러니 한 다리 병신, 한 팔 병신, 한 귀 병신, 귀머거리, 한 눈 까막눈, 이렇다면 여러분이 살기가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지금 아시는 바와 같이 여러분은 한쪽 눈이 없고 한쪽 귀가 없고 한쪽 손이 없고 한쪽 발이 없습니다. 그것을 몽땅 다 겸해서 가지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태도와 하고 다니는 모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옷은 기워 입든 꿰매어 입든 얼룩얼룩하든 상관이 없어요. 아무리 옷 빛깔이 그렇다 하더라도 정갈스럽고 정돈이 돼 있어야죠. 신발도 그렇고 양말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이빨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이 정돈되지 않았다면 바보 병신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렇게 보인다면 벌써 상대방에게 간판이 무시를 당하는 겁니다. 이건 어디에나 다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왕지사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좀 더 시대를 좇아서 순응하면서 옳은 법을 배우면서 내 몸뚱이도 아주 정갈하게 정돈해서 다닐 줄 아는 그런 행이 필요하겠습니다.

오늘은 아주 짤막하게 한다고 그랬는데 좀 길었습니다. 여러분의 질문이나 모든 애고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꼬리표가 없더라도, 허허허…, 진짜 공부를 하다가 막히거나 이런 분들은 말씀하십시오.

질문자1(남) 먼저 한마음 주인공 도리를 공부하게 됨을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오늘 질문을 드리게 돼서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질문 사항이 많은데 다음 질문자를 위해서 우선 한 세 가지 정도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태어나면서 모습과 의식들도 제각각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 머리가 둔한 사람 등등 제각각 소질과 재능이 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날까지 진화되어 오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온 습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인지 한 말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거야 말하나마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차원에 따라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곤충에서 고등 동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차원은 자기가 마음의 계발을 하는 대로, 발전을 하는 대로 차원이 있는 겁니다. 누구나가 다, 모르면 차원이 낮고 알면 차원이 높고 이런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 간에도 천차만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공부를 하시라고 하는 거죠.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4년 6월 19일 광명선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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