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을 성보들] 하동 쌍계사의 도난 성보
[다시 찾을 성보들] 하동 쌍계사의 도난 성보
  • 최선일 문화재청 감정위원, 홍은미 옥천사 학예실장
  • 승인 2018.05.15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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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미타불, 대학박물관에 있었네
1988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회상도(사진 왼쪽)과 서울의 한 대학 박물관서 전시를 통해 공개한 아미타회상도(사진 오른쪽)의 모습. 둘의 도상과 불보살의 배치가 매우 유사하다.
1988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회상도(사진 왼쪽)과 서울의 한 대학 박물관서 전시를 통해 공개한 아미타회상도(사진 오른쪽)의 모습. 둘의 도상과 불보살의 배치가 매우 유사하다.

우리나라 불교문화재는 화재와 수해 등의 자연 재해를 비롯하여 전쟁 중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몽고 침략, 임진왜란, 한국전쟁은 전국적으로 대규모 사찰 파괴를 불러일으켰고, 종전 후 새로운 성보물의 제작으로 인해 불교미술사의 시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 중에 지리산 내에 있는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하동 쌍계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동 쌍계사는 1953년 9월 18일에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끝까지 저항하다 숨진 빗점골과 불과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많은 피해를 볼 수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소실되지 않아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조선 불교미술의 寶庫, 쌍계사
1980년대부터 많은 성보 도난
화엄변상도·목조문수상 등 주요
국사암 아미타도 1988년 도난
2013년 대학博 전시회서 확인
쌍계사, 본사 차원 대책 세워야

이 사찰도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1980년부터 최근까지 상당히 많은 성보를 도난당했다. 조계종이 2016년 펴낸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 따르면 현재 조계종 총무원이나 문화재청에 신고된 도난문화재는 신중도(1781년 作, 1997.8.4 도난)와 화엄경변상도(1790년 作, 1997.8.4 도난), 문수보살동자상(1705년 作, 2002.12.13 도난), 말사인 국사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1988.3.23. 도난) 등이다. 이 가운데 국사암 불화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 신고되어 있지 않다(문화재청 누리집 도난문화재).

쌍계사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남쪽에 있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부속 암자는 4개이고,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다. 이 절은 722년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이 창건했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사리를 구해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알려준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840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6년에 선비 스님이 팔상전을 중수하였고, 1506년에는 진주 목사인 한사개(韓士价)가 후원해 불사를 이루었다. 1540년에 주변 환경이 매우 피폐해지자 중섬 스님이 조정에 알려 예조로부터 쌍계사 주변 5리 이내에는 나무를 베거나 불을 놓는 것을 금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3년 만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팔영루의 지붕을 고치고 진공대사대공탑비 앞뒤에 석축을 쌓았으며 연못을 만들었다.

1543년부터 운수승 혜수 스님이 중수를 발원해 몇 년 만에 대웅전을 시작으로 금당과 방장실을 고쳤고, 1549년에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이를 1632년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과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 스님이 함께 힘을 모아 화주 덕화 스님과 함께 중창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때의 중창은 예전 터가 너무 좁아 지금의 자리에 옮겨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 응진전, 명왕전, 관음전, 화엄전, 팔영루 및 여러 요사들을 건립하고, 마당 한 가운데 진감국사대공탑비를 두었다. 이후 1675년에 인계(印戒) 스님이, 1695년에 백암성총(栢庵性聰, 1631~1700) 스님이, 1735년에 법훈(法訓) 스님이, 1850년에 쌍운(雙雲) 스님이 각각 중수하였다. 또 1864년 봄에 담월(潭月) 스님과 용담(龍潭) 스님이 육조정상탑전의 칠층석탑(정상탑)을 지었다.

1997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화엄경변상도(사진 좌). 1997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신중도(사진 우).
1997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화엄경변상도(사진 좌). 1997년 도난된 하동 쌍계사 신중도(사진 우).

쌍계사에서 유출된 문화재는 상당히 많지만, 도난 신고된 성보물은 3점이고, 국사암에 4점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은 화엄경변상도와 목조문수동자상이다. 화엄경변상도는 <화엄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줄인 말로, 주요 내용은 석가모니가 중인도 마가다국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룬 뒤 구름처럼 모인 대중들에게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말한 것이다. 경전의 권수에 따라서 40화엄, 60화엄, 80화엄으로 나뉘며 경을 설한 장소(處)와 경을 설하는 모임(會)에 따라 60화엄은 7처8회, 80화엄은 7처9회로 구분된다.

조선 후기 그려진 ‘화엄경변상도’는 80화엄에 따라 7장소에서 9번 화엄법회를 열었던 모습을 도해하여 ‘화엄회도’ ‘화엄7처9회도’라고 불린다. 이 소재는 1765년에 만들어진 김룡사 화장암을 비롯하여 1770년에 송광사, 1780년에 선암사, 1790년에 쌍계사에서 그려졌고,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통도사 작품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 18세기 만들어진 네 점의 작품 가운데 김룡사 화엄경변상도는 기록만 남아있고, 선암사, 쌍계사 소장 화엄경변상도는 유출되었고, 송광사 소장본(국보 314호)만 남아있다.

화엄경변상도는 상·하단 모두 법회장면이 거의 대칭을 이루고, 여러 모임을 짜임새 있는 구도로 그려놓았다. 황토색 바탕에 적색과 녹색 등을 사용하고, 각 회주인 보살형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여러 성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면 아래에는 보현보살이 대중들에게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화엄경>39품 중의 ‘화장세계품’ 내용을 도해한 ‘연화장세계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2002년 12월에 도난당한 목조문수동자상은 같이 조성된 보현보살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705년에 색난·석현·행탄 스님 등 17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대형불상으로, 현존 보현보살상의 높이가 118.7cm이며, 조선후기 제작된 문수동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3월 23일에 국사암에서 도난당한 불화는 도난 이전 촬영된 사진을 보면, 화면은 정방형에 가까운 크기의 구성으로 팔대 보살과 여섯 제자를 세열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수미단 위에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는 정상계주가 둥근 보주 형태이고, 편삼을 입지 않고 대의만 착용하고,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리고, 왼손을 배 위에 내린 수인을 취하고 있다. 정상 계주에서는 서광이 세 가닥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팔대보살은 백의를 입고 정병을 든 관음보살, 관음 맞은편에 경책을 든 대세지보살과 옆에 석장을 든 지장보살이 서 있다. 관음 옆에 여의를 든 보살은 지장보살과 짝을 이루는 미륵보살로 보이고, 전면의 네 보살상은 연꽃을 든 문수와 보현보살, 합장한 두 보살상은 제장애보살과 금강장보살로 추정된다. 상단의 6명의 나한상이 좌우로 3구씩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영산회상도와 같이 도난당한 나한상은 크기와 구도 및 세부 표현에서 같이 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불화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아미타여래도와 동일한 불화가 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불화는 서울 모 대학에서 개최한 ‘내세에의 염원’(2013)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두 작품은 본존의 자세와 광배 표현, 보살상의 자세와 지물, 나한상의 얼굴과 자세 등이 동일하다. 대학박물관에 소장된 불화는 규격이 세로 145.7·가로 134㎝라 일제강점기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세로 4척8촌, 가로 4척4촌인데. 1933년 1월 14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소장품 목록 중 후불탱 8건 14점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쌍계사에서는 본사 차원으로, 말사와 암자에 현존하는 성보물과 이전 작성된 재산대장을 비교해서 유물 문화재의 현황과 사진 등의 수집과 분석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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