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 스님의 문명 기행기-②페트라서 보내는 편지

조계종 교육원은 4월 1~11일까지 승려해외연수 ‘혜국스님과 함께하는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해외문명기행’을 진행했다. 당시 연수 진행을 담당한 교육부장 진광 스님이 서간문 형식의 기행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스님의 기행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여기는 세계문화유산인 고대 대상무역로의 중심이었던 페트라 유적지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비행기로 요르단(Jordan)의 수도인 암만(Amman)으로 들어와 다음날 곧바로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Petra) 유적을 보러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미생(未生)’의 마지막 장면의 무대로, 세계인에게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성배의 진실편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촬영 무대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에 페트라의 알 카즈네 신전을 배경으로중국의 대문호인 루쉰(魯迅)의 소설 ‘고향’중의 한 대목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던 장면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희망(希望)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나 또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감으로써 최초(最初)이자 최고(最高)의 길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내 삶과 수행이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희망의 지표(指標)로 남고 싶습니다. 당신 또한 당신의 길위에서 항상하듯이 말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옛날 배낭여행 당시에 비싼 입장료(현재 9만원 정도)로 인해 게스트 하우스에서 읽은 창수 씨의 조언에 따라 새벽 5시 이전에 담을 타넘어 몰래 도둑구경을 하였던 일명 ‘창수성지순례’의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혹여 베드윈족이나 관리인에게 붙잡히면 “절대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말고 일본인이라 말하십시오. 국가망신 입니다!”라는 글귀가 생각나 미소짓곤 합니다.

그날도 페트라 유적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웠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던 페트라는 향료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나바테아인은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서 해안에 이르는 대상무역로를 독차지하며 크게 번성하였으나 무역로가 바뀌자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812년 스위스의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이 도시의 유적을 발견하게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존 버건 신부는 이 도시를 가리켜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처럼 붉은 도시”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페트라의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역시 장밋빛 사암을 깍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알 카즈네 피라움(파라오의 보물)입니다. 높이 40m, 너비 28m의 정면 모습은 웅장하고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알 카즈네 신전 앞에 앉아 수많은 관광객과 낙타와 마차등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깁니다.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과 영욕을 느끼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바로 곁의 두 쌍둥이 소녀와 가족들은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문득 고향과 그리운 벗들이 눈물나게 그리워지는 것이 나도 이제 조금은 늙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대와 함께 이 풍광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신전에서 더 들어가면 로마시대의 원형극장과 목욕탕, 극장, 장터, 무덤 및 주거지등이 나옵니다. 주변 어느 동굴이 바로 창수님과 제가 이른 새벽 들어와 동굴에 숨은채 MP3를 들으며 3시간을 숨죽이며 기다리던 성지(?)입니다.

페트라 인근의 마을 집에서 눈썹이 길고 아름다운 어린 소녀를 보았습니다. 마치 낙타 눈썹처럼 길고 아름다워 금방이라도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릴 듯 합니다. 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세상은 좀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로 가득 찼으면 하고 빌어 봅니다.

암만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막에서는 호수인양 신기루가 펼쳐집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신기루에 속아 절망하고 괴로워했을 겁니다. 현실 또한 사막의 신기루처럼 참이 아닌 거짓과 허상의 신기루를 쫓아다니곤 합니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르쳐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 놓아 버리는 ‘방하착(放下著)’과 그르쳐가지 않는 ‘막착거(莫錯去)’의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막의 일몰과 석양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이제 곧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별들이 떠올라 밤을 밝히겠지요. 사막 어딘가의 오아시스에는 또 누군가의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가듯이. 그렇게 사막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습니다. 이런 순간이면 어린왕자를 만나러 무작정 사막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여우랑 보아뱀이랑 바오밥 나무도 만나러 말입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지금은 갈 수 없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와 팔미라 그리고 알레포를 그려 봅니다. 그리고 아직도 분쟁중인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나 그곳에 다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인간을 언제까지 무참하게 할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꿈에도 그리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여! 세계문화 유산인 우마야드 모스크와 시장, 그리고 내가 묵던 숙소의 주인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무사히 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란서 만난 이라크 바그다드의 할아버지는 지금도 살아계실까요? 부디 살아계셔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어 봅니다.

언젠가 알레포 숙소에서 6~7명의 의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한 한의대 본과 여학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한의학이 의학이나 의술을 떠나 일종의 카운셀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침으로 환자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경청과 공감, 그리고 상담을 통한 정신적 치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종교도 그런 카운셀링이자 인간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종교가 인간을 위해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합니다.

세계의 대다수 종교는 사막지대에서 출현 했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무언가 이상향을 꿈꿀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렇게 출현한 종교가 신의 위세를 빌어 인간위에 군림함으로써 오늘의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종교가 필요한 때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갔다 오면 다른 중동 이슬람 국가를 들어갈 수 없어서 저 또한 엄두를 못내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곳을 방문한다고 하니 긴장과 함께 짜릿한 전율과 환희가 일어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을 앞두고 설레이는 마음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님은 기독교 성지순레 가면 안되나요”라는 도발적 질문에 드디어 그 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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