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오늘까지는 사과를 심어야 한다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오늘까지는 사과를 심어야 한다
  • 대행스님
  • 승인 2018.04.09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배가 나한테 있으니 편안하게 그냥 웃으면서 사세요!

 

바로 자기 자연의 불성(佛性), 그 자체를 아비라고 친다면
아비가 있다는 것을 아비가 증명을 하는 거지
자기가 무슨, 사량으로 있다 없다를 논의하느냐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스님! 정말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 정말 만나기 힘든 선지식을 모시고 이렇게 법문을 항상 듣게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모르면 제자들이 두 번, 세 번, 열 번 질문하는 것을 경을 통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항상 마음의 법을, 한마음의 법을 설법해 주셨습니다마는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서 간절히 질문하오니 관대하신 설법 부탁드리겠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불교라 하면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저 경을 통하여, 또는 참선을 통하여 깨닫는 줄 알고 오늘날도 명산대찰들을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큰스님께서 바로 우리 가슴에 와 닿고 바로 깨치는 공부, 즉 한마음의 도리를 가르쳐 주셔서 국내는 물론이고 현재 구미(歐美) 지역에까지 일대 선풍이 일고 있습니다. 앞으로 멀지 않아 구미뿐만 아니라 큰스님의 높으신 뜻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한마음 법이 번져 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차제에 새로 오신 신도님들도 많고 아직도 한마음의 법이 얼마나 훌륭한 법인가를 분명히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 한번 다시 명확하게, 분명하게 한마음의 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고 계시니 가섭이 혼자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죠. 그걸 전하고선 그 만좌중 속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럴 때 왜 그렇게 그 만좌중 속에, 그 만민이 있는 속으로 들어가셨겠습니까, 꽃을 들고? 우리는 모두가 이어짐이 없이 이어진다고 봅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지금 사회에 나가 사시지만 회사에도 회장이 없으면 직원이 없고 직원이 없으면 회장이 없습니다. 전부 상대성으로서 삽니다. 먹고삽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윗사람 말을 들어야 하고 아랫사람들을 지도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도 그런가 하면은, 염화미소의 그 뜻이 무엇인가? 부처 속에서 중생이 나왔고 중생 속에서 부처가 나왔으니 이건 모두가 한마음이에요.

지금 미국에서는 이렇게 말합디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삼천 년 전에 그 불바퀴가 우주에 돌아간다고, 삼천대천세계에 그 불바퀴가 돌아간다고 하셨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그걸 블랙홀이라고 과학자들이 말합니다. 세상에 미리미리 그렇게 일러 주셨건만 지금까지도 그거를 해득을 하지 못해서 참 모두들 야단들입니다마는, 크게 보지 마세요. 여러분이 천차만별의 생활을 하는 것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하나 수만 가지 일을 하고, 수만 마디를 하고, 수만 마디를 듣고, 수만 가지를 보고, 고정됨이 없이 그냥 먹고 살고 듣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한마음입니다. 그 한마음이 뭉쳐졌기 때문에 그게 불바퀴입니다. 이게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법바퀴예요, 네? 그래 불바퀴는 앞뒤 없는 불바퀴를 들락날락할 수 있어야만이 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바퀴는 생각을 내는 바퀴요, 불바퀴는 생각을 낼 것도 없이 더하고 덜함도 없는 자린데 법바퀴가 그대로 거기에 응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력은 크고 작은 게 없으나 큰 회사에서는 크게 끌어 쓰고 작은 회사에서는 작게 끌어 쓰고 일반 집에서는 또 그대로 끌어 쓰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끌어 쓰는 그 자체를 바로 법바퀴라고 하고 한마음이라고 합니다. 이해가 안 갑니까? 그러니 누가 그거를 하고 누가 쓰고 그럽니까? 바로 여러분이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속에 인과로 인해서 뭉쳐진 중생들이 많으니 그 의식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미산처럼 많습니다.” 하니까 “그래, 어쩐 일로 수미산같이 그렇게 많으냐?” 하니까 “수미산이라는 것은 이름일 뿐, 그것은 너무나 헤아릴 수가 없이 크고 많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잘 배우진 못했습니다. 무지렁이같아도 부처님이 해 놓으신 말씀을 보면은 벌써 이것이 탁 뛰어 올라와서 이치가 다 나오기 때문에 책장 한 장만 들쳐 봐도 벌써 그 책 한 권의 뜻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예전에 한암 스님도 경허 스님도 그러셨답니다. 책을 보다가 이거 가지고는 도저히 건질 수 없다 해서 책을 덮어 놓고 마음으로 들어가셨다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실천으로 마음의 수련을 쌓으신 겁니다. 그래서 수련을 쌓아 가지고 보니까 부처님 말씀이 하나도 버릴 게 없더라 이 소립니다. 그러면 내가 수련을 쌓지 않고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그 사실을 알겠습니까?

항상 얘기했죠. 부처님께서 왜 해골바가지 모인 데다가 큰 절을 했을까?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보셔야죠. 사생자부이신 어버이신데 어떻게 하치못한 그 해골바가지에다가 절을 하시느냐 이거죠. 제자들이 볼 때는 그게 못마땅했죠. 하나 부처님께선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게 있느니라. 저 뼈다귀는 바로 과거면서도 미래에, 미래면서도 현실에 우리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이 될 수도 있고, 할머니도 될 수 있고 할아버지도 될 수 있고, 아버지도 될 수 있고 형제도 될 수 있느니라. 그러니 저 뼈다귀가 누구 뼈다귀인 줄 아느냐. 우리 부모의 뼈다귀일 수도 있고 다 그렇다.” 하고선 얘기를 하니까 그 제자들이 그때서야 “정말 이렇게 심오한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광대하고 심오한 줄을, 부모가 둘이 아니고 자식이 둘이 아니고 형제가 둘이 아님을 몰랐습니다.” 하고 그냥 울었다는 겁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죠. 저 미생물에서부터 거쳐 올 때에 무척이나 쫓기고 쫓고 이러다가 진화돼서 사람이 처음 나니깐, 모두 보니깐 나무, 물 뭐, 전부 정원이라고 합시다. 다 생겼는데 자기는 맨 나중에 나와 보니까 상대자가 하나도 없더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걸로 해서 불도 알아지고 망치도 알아지고 뭐, 칼도 알아지고, 점차적으로 그렇게 알아졌죠. 그래도 우리나라는 단군이라는 분이 출현하셔서 농사짓는 법이라든가 또는 인간이 살아나가는 도리, 충성, 효도 등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거를 전부 가르쳐 주셨단 말입니다. 단군께서 천부경 여든한 자(字), 팔십일 자를 남기고 가신 후에 부처님이 나셔서 또 그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가르치셨단 말입니다.

그러니 생각할 때 우리 조상 아님이 하나도 없고 우리 형제 아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남이 잘못되고, ‘아주 저건 못쓰는 사람이야’ 이럴 때도 ‘아, 저것이 몰랐을 때의 내 모습,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나는 저거보다도 더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또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아, 저것이 모를 때 내 모습이지.’ 하고 생각한다면 하나도 미울 게 없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머무르지 않는 법입니다. 머무르지 않는 데서 생각을 내랬지 머무르는 데서 생각을 낸다면은 바깥으로 끄달려서 그 바깥세상의, 유(有)의 세상의 노예가 되고, 반면에 또 바깥의 거를 하나라도 무시하고 돌아간다면은 그거는 또 무(無)의 세계의 노예가 되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참 차근차근히 우리의 영원한 친구, 바로 자기 자연의 불성(佛性), 그 자체를 아비라고 친다면 아비가 있다는 것을 아비가 증명을 하는 거지 자기가 무슨, 사량으로 있다 없다를 논의하느냐 이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자기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게 되겠죠. 자기 아비를 찾으면, 발견하면 말입니다.

지금 제가 볼 때는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곧 아르헨티나에도 지원이 생길 겁니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어딥니까? 콜로라도인가? 거긴 세계 사람들이 전부 공부하러 모이는 데입니다. 또 뉴욕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산호세 또 오하이오 주, 시카고, 앵커리지 이것만 해도 벌써 아홉 군데가 됩니다. 이거를 한번 돌려면 어떻게 됩니까? 워낙 먼 거리라 지원에서 지원으로 오고 가는 데만도 하루씩 걸리니 제대로 볼일 보고 다니려면 몇 날 며칠이 걸려야 될 거를, 바쁘니깐 그냥 밤에도 차 타고 움직이고 그렇게 진행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바쁘게 돌아쳐도 한 달 며칠이 걸렸습니다. 40일.

그러는 도중에 여러분이 참 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선 처음 시작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아주 발버둥이 치고 야단들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제일 먼저 여러분하고 친밀했기 때문에 그런지 보고 싶어서 그 참, 눈에 아롱거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롱거린다고 해서 착을 두지 말고 아른거리면 ‘아, 보고 싶구나.’ 그러고 ‘응, 둘이 아닌데.’ 하고 ‘둘이 아닌데’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그저 자기로 돌립니다. 그러나 참, 이렇게 오래 나갔다 오면요, 둘 아니면서도 땅도 한 땅이고 도량도 한 도량이면서도 너 나가 있어서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예가 있습니다. 그게 보고 싶다 해서 또 걸리지 마시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거고, 허허허, 또 가고 싶으면 가고 싶은 거고 이렇게 그냥 슬슬슬슬 그냥 넘어가라 이거죠.

기름을 치지 않는다면은 기계가 빡빡해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름을 항상 넉넉히 치면서 항상 손질을 하면서 저절로 굴러가게, 자동적으로 생각만 했다 하면 그냥 돌아가게끔 만들어 놓으신다면 머무르지 않는 데서 생각을 여여하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이 그대로 실상임을 아실 겁니다. 고만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리고 우리가 여러 군데를 다니다 보니까, 비행기 안에서 여러 시간 오면서 ‘신행회장을 많이 배출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행회장을 배출함으로써, 그러고도 또 이 도리를 마음에다가 그저 모르든 알든 모든 걸 맡기고 거기서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그냥 거기다가 죽으나 사나 맡기고 가는 사람이라야만이 그 회장을 할 수가 있겠죠. 만약에 생동생동한 사람을 회장을 시키면 그 회원들이 다 생동생동해질 테니까. 하하하.

그래서 학승으로 은사를 맞이한 사람은 꼭 학승이 되거든요. 부전승으로 오신 인연은 꼭 부전승 제자가 된다고요. 정말이에요. 화가승으로서 제자를 둔 사람은 꼭 화가로 나섭니다. 난 그거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헤어져서 그렇게 됐으니까. 그랬고, 나는 또 떠돌았으니까 그대로 그냥 됐고요.

그러니깐 그게 무시할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신행회장을 많이 배출해서 마음공부 하는 사람을 많이 배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만히 볼 때, ‘왜 그렇게 다양하게 늘어났나.’ 그러고 ‘그 신도들이 전부 벌어먹고 살게 돼 있는가.’ 이것도 검토해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행회장을 뽑아서 삼십 명 단위로 이렇게 맡겨져야 되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또 삼십 명이든 사십 명이든 좋습니다마는, 그 중에 이 도리를 몰라서 갈구하는 사람들을 자꾸 뽑고 또 단위를 넓히고 이렇게 해 나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두 번째는,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형제 법회를 따로 만들어서 첫째 일요일이나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한데 합쳐서 뭉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뭉쳐서 거기서도 신행회장을 뽑아서 삼십 명 단위로 나누어서 공부해 가면, 식구가 적다면은 서로 토론하기도 쉽고 아주 좋죠, 다양하고.

그리고 없는 사람을 도와서 서로 협력할 수도 있고 하는 거는 신행회장들이 모여서 같이 상의해서 하도록 이렇게 하면서, 또 아주 가난해서 학자금도 못 내는 사람들은 학자금도 우리가 거둬서 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이면 좀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캠핑을 와서 한자리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헤어질 것을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형제 법우님들 모인 장소에 전부 같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그리고 제가 여러분을 이끌어 갈 때는 반드시 같이 모이게끔 하시고요.

청년들도 첫째 일요일에 모일 때 한쪽에, 저 방이 작으면 여기서라도 같이 한쪽에 청년 법우님들도 같이할 수 있게끔 하면서 이끌어 나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서로 미루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어린 국민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좀 신경을 써서 우리가 잘해 나가야 청소년 애들도 이렇게 같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 그런 마음의 씨를 뿌리는, 그리고 씨를 뿌려서 싹을 내서 실과를 거둘 수 있는 그런 교재가 필요하다 합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 사람들을 위해 ‘영원의 나’를 갖다가 교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걸 교재로 해서 주되 그거를 가르치는 사람을 또 우리가 가르쳐야 하니깐요.

우리가 그렇게 해서 지금 서독에도 그렇고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 불자들은 열심히 공부하셔서 어디를 나서도 손색이 없도록 이렇게 한다면 정말이지 여러분이 미래의 세계에 우주의 그 법의 능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 ‘능력이 있다’ 이런 아집을 버리시고 그대로 해 나간다면 우주정거장도 허가를 내서 세울 거 아닙니까. 무허가로 지었기 때문에 자꾸 무너지거든요. 예? 아, 웃을 게 아닙니다. 허허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다 그 속에서 부처님이, 그 보살이 참, 법을 전달해서 그렇게 되죠. 또 정치 지도자들도 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부진하면 ‘아, 내가 좀 더 공부를 해야겠어.’ 하면은 벌써 그 사람이 내가 되는 거니깐요. 그래서 여러분은 아무리 거지 같고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없고 못났어도 대통령도 될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아, 잠시 대통령 돼 보면 되는 거지, 그게 뭐 그렇게 좋은 겁니까? 귀찮을 텐데. 안 그럽니까? 하고 싶으면 대통령도 돼 보기도 하고 미래 세계의 지배인도 돼 보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 이겁니다. 이렇게 쉽게 말을 해서 안됐지만 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리입니다. 그것도 이름해서요. 허허허. 그러니까 이것이 반야심경에도 속해 있고 금강경에도 속해 있고 화엄경에도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실상을 찾고 발견하려면 나를 먼저, 미래 세계의 그 법계의 법을 여기에 (가슴을 짚어 보이시고) 전달이 되도록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요새 전화도 뭘 끼워 놓으면 사람이 없을 때 전화가 와도 다 녹음이 된다고 합디다. 그러고 팩스도 그냥 갖다 넣기만 하면 상대 쪽에 전달돼. 팩스뿐이 아냐. 그거보다 더 위대한 거는 지금 전파를 위성을 통해서 쓴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누구한테 간섭도 안 받고,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도 없고 귀찮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얼마나 자유스럽게 지배할 수 있습니까. 네? 억울하면 공부하세요, 모두. 하하하.

못살고 가난하고 못나고 이런 거 억울하면 공부하셔야 됩니다. 내가 못나서 뭐 이렇고 저렇고 하지 마시고요. 못난 것도 한 찰나고 잘난 것도 한 찰나니까 그런 걸 다 그저 묵살시키시고 이 도리를 배우는 데 전념을 다하세요. 여기 앉아서 계신 분들은 지금 도시락 싸 가지고 캠핑 왔다고 생각하시고요. 허허허.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더래요. 미래의 세계에 들어가는데 이 주장자에 사탕같이 꿴 그거를 하나씩 다 들었더라는 거예요. 다 들고선 들어가야만이 한자리를 할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여러분이 기를 쓰고 증득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그렇게 애를 쓰면 오히려 모자라게 됩니다. 그러니 애를 쓰지도 말고 애를 안 쓰지도 말고, 그냥 생활하는 데서 여여하게 돼 가는 대로 ‘이것이 바로 내 한마음, 이 한마음 의식, 한마음으로 주인공,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시고) 주장자 이것이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이니까 그대로 그냥 이렇게 해 나가고 있지 않나. 이끌어 주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내가 뭐 걱정이야. 보배가 나한테 있는데.’ 이럭하고선 부드럽게, 편안하게 그냥 웃으면서 사세요.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오늘까지는 사과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 있죠? 이따가 요 시간 지나면 내가 저 아래 나가서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거 겁내고 살아본 예가 한 번도 없어요. 이따가 죽는다 하더라도 내 할 일은 꼭 해야 되니까요. 뭘 그걸 두렵게 생각합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나 하나 버리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요. 여러분이 ‘내가, 내가 살아. 내가….’ 이러니깐 그냥 두렵고 모두가 그렇지, 내가 한다는 게 붙지 않으면 두려울 게 없어요.

예전에 깜깜한 그믐밤에 글쎄, 그 도깨비가 왔다 갔다 하는 그 춘천 골짜기 물 내려가는 쪽으로 거길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에이그, 내가 어차피 죽으려고 그랬는데 그깟놈의 거 뭐 그게 두려워? 다 와라. 뭐가 있다면 다 와라.’ 그랬더니 가다가 보니깐 글쎄,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거기에도 목신이 있는 겁니다. 아, 인사를 깍듯하게 하지 않습니까? 아이고 참, 벗이 돼서 좋아서 말입니다, 나도 그 밑에 앉아서 혼자 싱그레 웃고 혼자 중얼거렸으니, 누가 봤더라면 ‘저 사람 미쳤군.’ 그랬을 거란 말입니다. ‘아주 미친 사람 같은데 어떻게 산중에 올라왔을까?’ 그랬을 겁니다.

지금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요, 참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 밤에 산비둘기 울음소리, 부엉이 울음소리, 능생이 울음소리, 새소리…. 얼마나 좋았는지 친구가 됐죠. 그러니까 지금도 어디 가다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야!’ 그러고 그냥 싱긋이 웃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죠. 그게 다 친구들이고 벗이었어요. 도반이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꽃 한 송이를 보고도 같이 말할 수 있는, 그 뜻을 전달하고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도리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또 미래의 세계에 그 지배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한마음 부처가 되기 위해 지금도 공부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배인이죠. 그리고 지배인이 한자리 한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부처는 하나다’라고 하는 건 부처가 없기 때문에 부처라는 그 용어를 붙여 놓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처가 이거 할 때에 부처라고 할 수도 없고, 저거 할 때 부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부처가 없는 게 부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저 나는 이따가 죽든 내일 죽든 그런 건 상관없으니 나 하는 대로 내버려 두시길 바랍니다. 그냥 나 하는 대로요, 죽든 살든. 그거를 배우세요. 내가 죽든 살든 이따가 죽든 이따가 엎드러지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나는 내가 있다면 가루가 되더라도 한다고 그랬는데 내가 없으니까 가루도 될 게 없습디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여러분이 집에서나 나가서나 일하시면서나 항상 평상시가 그냥 참선이며 마음 편안하고 넉넉하면은 그게 좌선입니다. 꼭 그렇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대중 속에서 스님! 건강하십시오.

큰스님 자기도요. 허허허. 어떨 땐 날더러 건강하라고 하고 가거든요. 보편적으로 그런 분들이 여러 분이 있죠. 그럴 땐 “에이, 너나 건강하게 좀 가져가거라.” 그러면서요, “에이, 네가 건강하게 살면 내가 편안할 텐데 오히려 날더러 그러고 가니 저거를 어떡하면은 좋지?” 그러고, 어떤 사람은요, 날더러 또 “성불하십시오.” 그러고 간다고요. 하하하. 이게 뭐, 이름인 줄 알아요, 이름.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 소리 들을 때마다요, 기가 막혀요. 또 한 가지 있어요. 절을 하죠. 그러면 나한테 절하는 건 줄 알아요. 벼이삭도 익어야 자기가 자기한테 고개를 숙이는 것인데 글쎄, 나더러 하는 건 줄 알죠. 내가 오히려 대신해서 그저 보이는 걸로 이렇게 앉아 준 것만 해도 감사히 생각해야죠. 나는 그냥 죽어 나는 거죠. 그 절 받는 게 뭐 그렇게 좋아서, 절 받는 게 내가 받는 게 아니면서 받기 때문에 그래도 그만이나 하죠.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거기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왜냐? 그거 다리가 아파서 앉아 있겠습니까?

전에는 하루 종일 밤이나 낮이나 이랬었는데, 너무 무리하게 굴었죠. 지금은 오히려 지원이 많이 생겨서 자꾸 나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데, 가면 뭘 합니까? 거기 가서도 앉아 있어야 되는데. 허허. 한 분이 오시나 두 분이 오시나 내가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은 여러분과 나와 그 아픔을 같이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든 안 아프든 둘이 아닌 까닭에 그 자리를 비워 놔두면은, 급해서 애처로운 그 마음을 가지고 올 때에 없으면 어쩌나 해서 내가 그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겁니다. 요새는 하루하루 그렇게 하다가 한 달에 두어 번이라도 좀 쉬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건강하시고 나와 더불어 한마음으로서 건강하십시오.

※위 법문은 1991년 4월 21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에서도 현대불교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금주의 베스트 불서 10/04 ~ 10/10

순위 도서명 저자 출판사
1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김원수 청우당
2 천태소지관 천태지자/윤현로 운주사
3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노승대 불광출판사
4 요가 디피카 B.K.S.
아헹가/
현천스님
선요가
5 삶이 내게 묻는 것들 보현스님 쌤앤파커스
6 죽을만큼 힘들 때 읽는 책 장웅연 담앤북스
7 용수 스님의 코끼리
(본래 나로 사는 지혜)
용수스님 스토리닷
8 천강에서 달을 보다
(25인의 선지식 이야기)
채문기 모과나무
9 불교관리학 성운대사/조은자 운주사
10 유마경 역해 이상규 해조음
※ 제공 : 불서총판 운주사 02) 3672-7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