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불교대학, 교(敎) 선(禪) 겸해야 산다

 

한동안 불교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불교대학의 성장세가 주춤하다. 불교종립대학에서 운영하는 정규학위과정의 불교대학도 있지만, 일반 시민과 불자들이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불교교양대학으로도 불렸던 사찰의 불교대학이다. 이 불교대학의 시초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원불교대학’이 사찰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의 성장에 초석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대원불교대학은 장경호(1899~1975) 거사가 불자와 시민들에게 불교를 교육하고자 한 원력의 산물이다. 자그마한 철물공장으로 시작해서 동국제강이라는 굴지의 기업을 창업한 장경호 거사는 1970년 12월 재단법인 대원정사의 설립을 인가받고, 1972년 2월 남산에 현대식 사찰인 불교회관 대원정사를 개원하였으며, 동년 9월에는 신행단체인 대원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대원불교대학을 1973년 3월에 2년제로 개설하여 일반 불자와 불교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불교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사찰 성장은 신도 조직화와 맞물려
기복불교 기피가 교학 중심 흘러
인본주의 근간해 교육변화 이뤄야

대원불교대학이 개설되기 전까지 종단과 사찰 차원의 신도 교육은 전무한 실정에 가까웠다. 기복을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불교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종교였으며 부처님께 자기의 복을 그냥 빌면 되는 종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종단이나 사찰은 굳이 신도들에게 불교를 교육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상당부분 그러하지만 한자로 된 법요 의식문의 뜻은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고, 스님들의 법문도 일반 신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지루하였다. 초발심자가 이렇게 불교를 접해서는 불법(佛法)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원불교대학은 이에 대한 극복의 시도였으며, 수강료 면제는 물론 장학금까지 주면서 불자들이 불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이후 교육열이 높은 젊은 층이 밀집한 도심의 신흥사찰들을 중심으로 불교대학을 포교의 중요방편으로 인식하고 활용하였다. 1980년대 능인선원과 구룡사가 불교대학을 개원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영남불교대학 大관음사(현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2000년대에는 부천 석왕사 등이 불교대학을 성장 동력으로 삼은 대표적 사찰들이다. 특히 능인선원은 ‘신도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불교대학의 모범으로 제시되고는 하였는데, 한때 한국불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괄목상대할 성장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들 사찰 이외 수많은 도심사찰과 전통사찰들이 불교대학의 운영에 나섰다. 불교대학이 사람들을 모아주면서 사찰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불교대학은 사찰 성장 동력

그렇다면 불교대학은 어떻게 사찰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다시 말해 불교대학의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 성장에 기여하게 해주는 것인가? 사찰의 성장은 신도 만남의 ‘정기화’와 신도의 ‘조직화’가 전제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그들의 조직을 갖추어 사찰의 일에 동참하여야 사찰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단체이든 성장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만나서 일을 논의해야 하고, 그 일의 성사를 위해서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사찰에 있어서도 스님과 신도들이 서로 만나서 일을 논의하고 조직을 갖추어 일을 해야만 사찰의 일들이 성사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대학은 신도 만남의 정기화와 신도의 조직화에 있어서 상당한 순기능을 갖는다. 불교대학은 매주 지정 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신도들이 1년에 한번 ‘부처님 오신 날’이나 되어야 사찰에 한번 나오는 한국불교의 관행으로 볼 때 신도들이 매주 사찰에 나온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신행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불교대학이 신도 만남의 ‘정기화’를 이루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교대학은 입학연도에 따른 기수들이 있는데, 사찰에서는 이 기수에 따른 동창회 형식의 기수별 조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사찰에는 여러 신행모임들이 있으나 그 결속력이 크지는 못하다. 그러나 불교대학은 사회의 동창회와 마찬가지로 기수별 결속력을 형성해준다. 불교대학이 신도들이 사찰 성장을 위하여 유기적으로 통합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불교대학이 신도의 ‘조직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거론할 때는 한국개신교 신도의 결집력이 꼭 회자된다. 이와 같이 불교대학이 신도 결집력의 매개체가 돼 주는 것이다. 불교대학이 모래알처럼 뭉치지 못했던 신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게 해주고 나아가 유기적 조직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다수 불교대학은 신규 수강생의 감소에 직면하게 된다. 불교대학을 성장 동력으로 여겼던 사찰들의 상당수가 답보 혹은 퇴보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불교대학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사찰들 중에서도 더 이상 불교대학을 운영하지 않는 곳들도 존재한다.

왜 오늘날 불교대학은 이렇게 성장 동력을 상실했는가? 우선적으로는 입학생을 모집하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제시할 수 있다. 사찰 소속의 신도들을 불교대학의 입학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서 신도의 대부분이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더 이상 입학생을 모집하기 힘든 상황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학 편향적 커리큘럼 문제

그러나 필자는 입학생 모집 방식의 한계성이 불교대학을 정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공감하면서도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불교대학의 교육내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그 내용이 핵심이므로 불교대학의 문제와 방안을 교육내용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제시하고자 하는 교육내용의 문제는 불교교육이 교학 편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불교대학들은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도 없는 불자들을 대상으로 교학에 경도(傾倒)된 교육을 하고 있다. 불교대학 학생의 상당수는 자신과 가정의 복을 부처님께 빌러왔다가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초발심자들이다. 불교를 기복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엄학, 유식학, 중관학 등 불교학 전공자들도 난해할 수 있는 불교교학을 중심으로 불교가 교육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교교학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불교란 어떤 종교인지를 알게 해주어야 하며, 불교의 교조인 부처님의 생애와 그 생애가 갖는 인류애적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불교대학의 교육은 부처님이 왜 출가를 하였는지, 수행의 과정은 어떠했는지, 수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왜 45년간이나 전법교화를 하였는지를 불자들이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교가 신본주의(神本主義)가 아닌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종교임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불교란 어떤 종교인지를 부처님의 생애를 기반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의 교학은 이와 같은 기본 교육 이후 진행하되 수행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즉 교(敎)와 선(禪)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문제는 불교공부를 마음공부가 아닌 상식공부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교학 편향의 불교교육과 연계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자들이 불교공부를 하면서 교학을 주로 접하다보니 불교의 종교성을 간과하고 상식처럼 공부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 사찰의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불자들이 불교를 상식으로 공부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음을 상당히 느껴왔다. 부처님이 몇 세에 출가했는지, 부모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음에, 그리고 사성제가 무엇 무엇인지, 팔정도의 여덟 가지 무엇인지를 외우고 있음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자들을 적지 않게 보아온 것이다. 물론 불자로서 불교에 대한 상식이 많은 것이 어찌 칭찬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불교의 본질로 이해하고, 그것을 불교공부의 전부라고 오인해서는 안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헌디?’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불교 상식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불교의 본질, 즉 깨달음에 접근할 수는 없다.

이제 교학 편향적, 불교 상식적 불교교육을 탈피하고 불교대학이 나아갈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선 불교대학의 교육에서 수행이 교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 교학의 교육에 수행을 보다 강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과정이 장기적으로 편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체험이 중요하다

불교는 종교다. 불교는 상식이 아니다. 그리고 종교는 체험이 중요하다. 불교의 체험은 수행이다. 부처님의 가피로 인한 체험이 비록 기복적이기는 하여도 훨씬 종교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체험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불자라면 수행을 통하여 불교를 체험한다. 그런데 불자의 수행은 1~2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불교공부이다. 향후 불교대학의 교육과정이 1~2년의 단기과정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장기과정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교의 정수(精髓)인 수행이 빠진 교육과정으로는 불교대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정수가 없기에 교육기간이 짧은 것이며, 성장의 동력으로도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대학이 다시금 사찰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되기 위해선 불교를 여법하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대학에서는 불자들이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생애는 어떠했는가라는 기초부터 경전 공부와 수행 실참(實參)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간과되지 않고 체계적으로 불교를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기간은 1~2년이 아닌 일생에 걸친 것이어야 한다. 이제는 불교대학이 불자의 평생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하여야 하는 것이다. 불자의 일생 동안 마음공부와 인생공부를 전담하는 불교교육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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