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산 세이간토지

세이간토지 삼중탑과 나치 폭포의 전경. 나치 폭포와 함께 세이간토지의 상징처럼 사진이 나오는 삼중탑은 헤이안 시대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에도 시대 때 폭풍으로 무너졌고, 현재 삼중탑은 1972년에 재건됐다.

1년 동안 나라·교토를 중심으로 간사이 사찰을 소개해온 이 연재도 드디어 이번 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재 중간 중간에 조금씩 약간 변경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처음의 계획대로 진행해 왔다. 원래 지난 회에 시가현 호북 지역의 사찰 소개를 끝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했으나 더 한 번 기사를 올릴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 동안 어디를 소개할지 고민했다. 이제껏 소개하지 못한 나라나 교토의 사찰을 몇 개 골라서 한꺼번에 소개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지역에 있는 사찰을 소개하는 것이 더 신선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와카야마현(和歌山縣)에 있는 사찰 소개로 마무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찰이 오사카에서 특급을 타고 3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이어서 당일 여행으로 가는 것은 어렵다. 원래 나는 이 연재 기사를 쓰는 데 오사카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만 소개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이 원칙을 깨고 독자 분들을 색다른 세계에 안내한다.

기이 반도에 펼쳐진 山地
日 자연 신앙 성지 존재해
불교·신도 합친 ‘신불습합’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와

신앙의 산지 ‘기이 산지’
간사이 지방의 남쪽에 태평양쪽으로 돌출된 기이 반도는 일본 최대의 반도이다. 와카야마현은 기이 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그 가장 남쪽에 있는 시오노미사키(潮岬)는 일본 열도 본주(本州) 최남단이다. 기이 반도 대부분이 기이 산지(紀伊山地)라는 산악지대이며 최고봉인 해발 1915m 핫켄잔(八劍山)을 비롯하여 높고 험한 산들이 기이 반도를 덮고 있다.

온난하고 강우량이 많은 기후로 풍요한 자연이 형성된 기이 산지는 예로부터 산림, 바위, 폭포 등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자연 신앙의 곳이었다. 이런 자연 환경과 신앙을 배경으로 영장(靈場)이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영장이 ‘요시노(吉野)·오미네(大峰)’, ‘고야산(高野山)’, ‘구마노 삼산(熊野三山)’이다. 요시노·오미네는 나라현 남부에 위치하여 일본 특유의 신앙인 슈겐도(修驗道)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슈겐도란 나라 조고손시지(朝護孫子寺), 호잔지(寶山寺)를 소개했을 때 말했듯이 산에 신이 계시는 곳 혹은 산 자체가 신이라고 여겨 산을 존숭해 온 일본 고래의 산악신앙이 불교나 도교 등과 결합된 혼종 종교이다. 특히 입산하여 엄격한 수행을 하는 모습이 유명하다.

고야산은 도지(東寺) 기사에 등장한 명승 구카이(空海)가 개창한 진언 밀교의 성지이다. 그리고 구마노 삼산은 일본 특유의 신앙인 신불습합(神佛習合)으로 옛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신앙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번에 소개할 사찰인 세이간토지도 구마노 삼산에 속한다. 2004년에 기이 산지의 3곳의 영장(靈場)과 세 곳의 참배길이 ‘기이 산지의 영장과 참예도(紀伊山地の靈場と參詣道)’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구마노 삼산
구마노 삼산이란 구마노혼구타이샤(熊野本宮大社), 구마노하야타마타이샤(熊野速玉大社), 구마노나치타이샤(熊野那智大社)의 총칭이다. 세이간토지는 원래 구마노나치타이샤의 일부분이었다. 자연 신앙을 기원으로 하여 원래 각각 고유의 신이 있었다.

헤이안 시대 후반에 신불습합이나 아미타신앙 등 여러 신앙이 결합되면서 세 곳이 일체화되어 구마노 삼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토신앙의 유행으로 구마노 삼산 전체가 정토라고 여겨져 상황, 귀족, 무사(武士), 민중 등 신분의 귀천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참배했다. 그것을 구마노 모우데(熊野詣)라고 부른다.

상황, 황태후 등 황실 사람들이 구마노 모우데를 열심히 했던 것이 구마노 모우데의 특징이다. 10세기 초에서 14세기 초까지 약 400년간에 황실 사람들의 참배는 100번 이상이 되었다. 평생에 30번 이상 참배한 상황도 있었다.

중세의 자료에 의하면 어떤 상황의 구마노 모우데 때 동행한 사람이 814명이 되고 말이 185마리가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실, 귀족에 이어 민중의 구마노 모우데도 늘어나 많은 사람이 참배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의 행렬과 같다고 하여 ‘아리(=개미)의 구마노 모우데’라고 표현되었다.
근세에 들어 구마노 모우데는 쇠퇴했지만 구마노를 찾아가는 사람이 여전히 있었다. 이 연재에서 소개한 사이고쿠33쇼순례(西國三十三所巡禮) 영장의 하나로, 사람들이 세이간토지를 찾아갔다.

나치산 세이간토지
기이(紀伊) 반도 동북쪽에 있는 미에현(三重縣)에 일본을 대표하는 신사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 전국에 있는 신사의 총본산이고 천황가의 씨족신, 식량의 신을 섬기고 있다. 원래 천황 이외의 사람이 참배할 수 없었으나 무가의 세력 확대에 따라 서서히 문호가 개방되어 무로마치 시대에는 역대 장군들이 참배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 민중이 이세신궁을 참배하는 ‘오이세마이리’가 유행했다. 에도(도쿄)나 동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먼저 오이세마이리를 한 다음에 사이고쿠33쇼순례도 했는데 세이간토지에서 시작했다.

세이간토지의 창건 시기 등이 확실하지 않지만 사전에 의하면 4~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다. 인도의 승려인 나교상인(裸形上人) 일행이 기이 반도에 표착(漂着)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나치 폭포에서 수행했을 때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을 감득하여 이곳에 암자를 짓고 관음상을 본존으로 안치했다. 6세기 말~7세기 초에 나라에서 온 쇼부쓰히지리(生佛聖)라는 승려가 여의륜관음상을 새로 만들고 나교상인이 만든 관음상을 자기가 만든 관음상 안에 넣었다.

또 가람도 건립했다. 사전에 의한 창건 상황이 전설적인 인상이 있다. 아무튼 여기가 고대부터 나치 폭포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신앙의 성지였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이초(엔랴쿠지), 구카이, 엔친(미이데라) 등 연재 기사에서 등장한 명승들도 나치에서 수행했다.

중세에는 구마노 모우데, 근세에는 사이고쿠33쇼순례로, 많은 사람이 참배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메이지 정부의 신불분리(神佛分離) 정책으로 많은 건물이 없어지고 황폐되었다. 신사의 일부분이었던 여의륜당이 신사에서 분리 독립해 사찰 세이간토지가 되었다. 구마노혼구타이샤, 구마노하야타마타이샤의 불당이 없어지고 지금은 신사만 남아 있다.

현재 본당(여의륜당)이 1581년에 병화로 소실된 것을 1590년에 재건했는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나치 폭포와 함께 세이간토지의 상징처럼 사진이 나오는 삼중탑은 헤이안 시대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추측된다. 에도 시대 때 폭풍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현재 삼중탑은 1972년에 지어진 것이고 안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삼중탑에서 바라보는 태평양, 나치 폭포는 정말 아름답다. 〈끝〉
 

나치산 세이간토지 답사 안내

대중교통으로는 JR신오사카(新大阪), 덴노지(天王寺) 등 역에서 특급을 타고 기이카쓰우라(紀伊勝浦)역까지 간다. 기이카쓰우라역에서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있는 노선버스를 타고 나치산이라는 정류장에서 내린다(소요 시간 약 25분). 거기서 비탈길을 올라가면 세이간토지, 구마노나치타이샤가 나온다. 거기서 나치 폭포 가까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폭포인 나치 폭포는 낙차 133m 있는 큰 폭포이고 ‘일본 3개 명폭(名瀑)’의 하나로 꼽힌다(나치 폭포 앞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다).
구마노 삼산을 돌아다니는 길을 구마노코도(熊野古道)라고 부른다. 구마노코도를 걷는 코스는 종류가 많아서 내가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체험하고 싶다면 나치산에 갈 때 도중에 있는 다이몬자카(大門坂)라는 정류장에서 내리고 사찰까지 걸어가면 구마노코도 일부분이지만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노선 버스 티켓을 구입할 때 왕복표를 구입하면 할인이 된다.


#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 사찰 소개도 마치고 이제 독자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가 되었다. 1년 동안 연재 기사를 읽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외국인 필자에게 이런 귀중한 기회를 주신 현대불교신문사와 간사이 사찰 소개 연재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신 최선일 박사, 감수해 주신 홍은미 실장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46세 때 비로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내가 번역 없이 직접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 분들이 열심히 도와주신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1년 동안 답사를 많이 했다. 동행자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혼자 답사했다. 일본 시골에서 야생 동물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골 답사로 가면 사람이 거의 없는 산속에서 ‘반달곰이나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뛴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답사하는 일은 기분이 참 좋다.
나는 한국에 거주했을 때 산책길이나 사찰 답사를 즐겼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분이 일본을 방문해 사찰 답사를 즐기시기를 바란다. 그 때 나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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