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 스님

공경심으로 〈무량수경〉을 한번 읽으면 아미타부처님이 우리에게 한번 관정(灌頂: 지혜를 전수함)할 뿐만 아니라, 일체 제불 역시 우리에게 관정한다. 만약 항상 독송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받게 되며, 이것이 바로 감응이다. 〈무량수경 심요〉

천만 명이 인터넷·위성TV강의 들은 선지식

‘염불각자열전’ 제22호에 〈무량수경〉 선본(善本, 회집본)을 발행하고 정종학회(淨宗學會)를 창립해 〈무량수경〉 수지독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하련거(夏蓮居, 1886-1965) 거사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그의 직제자인 황념조(黃念祖, 1913-1992) 거사가 〈무량수경〉을 정토와 선, 화엄과 밀교 법문으로 종횡무진 해설한 〈정토대경과주(淨土大經科註)〉를 통해 그 심오한 뜻을 드러냈다면, 정공(淨空, 92) 스님은 두 거사의 유훈을 이어 전세계 200여 정종학회 지회와 인터넷 및 위성TV 강의를 통해 정토법문을 글로벌화시킨 선지식이다.

전란 겪으며 불법침구 발심

이병남 거사에게 가르침 사사

인터넷 포교 적극 활용

직·간접적으로 그의 법문을 들은 불자만도 천만 명이 넘을 정도다. 최근, 세계 최대의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와 여러 정종학회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각종 법문을 통해 〈무량수경〉을 독송하고 염불하는 정토행자는 전세계에 약 3억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타교육’으로 중화권 불교중흥 이끌다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 불교 중흥의 중심으로 떠오른 정종학회의 정신적 지도자인 정공 스님의 일생은 ‘불교’를 풀이한 ‘불타교육(佛陀敎育)’이란 말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일체중생에게 가르치신 다원적이고 지극히 선하며 원만한 사회교육”임을 처음으로 주창하며, 불타교육기금회(基金會)를 창설, 지구촌 불자들에게 팔만대장경의 핵심인 정토법문을 전하고 있다.

2차대전 겪고 방동미 교수 만나 불교입문

정공 스님은 1927년 3월 18일, 중국 안휘성(安徽省) 려강현(廬江縣) 탕지진(湯池?)에서 태어났다. 그는 민국 초 전란시기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이 무지하여 상호대립하고 가정 및 사회불안을 초래하며 정쟁(政爭)과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도처에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묻고 그 해결방안을 찾았다.

이런 구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난 선지식이 바로 대 철학자 방동미(方東美) 교수였다. 1953년, 방 교수 문하에서 그는 “학불(學佛)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우주와 인생의 진상(眞相)을 탐구하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같은 구도심으로 정공 스님은 곧이어 밀교와 정토종의 선지식을 잇달아 친견하게 된다. 장가(章嘉) 대사를 3년, 이병남(李炳南) 거사를 1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밀교와 정토법문을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된 것이다.

장가 대사의 알아차림·내려놓음·보시 공부

티베트 고승인 장가 대사로부터는 “간파(看破: 알아차림)·방하(放下: 내려놓음)·보시(布施)”의 방법을 통해 수행의 기초를 다졌다. 정공 스님은 훗날 〈관세음보살보문품 강기(講記)〉에서 “이 여섯 글자를 대사님은 6년만 실천하면 저절로 감응이 있을 것이라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을 잘 듣고 6년을 실천했더니, 참으로 감응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스님은 이병남 거사로부터는 “일문에 깊이 들어가 오랫동안 몸에 배이도록 닦는(一門深入 長時薰修)” 법을 통해 일체 경전에 깊이 들어가는 열쇠를 얻을 수 있었다.

이병남 거사에게 경전과 ‘지족’의 삶 배워

정토종 제13대 조사인 인광 대사의 제자인 이병남 스승은 오로지 정토만을 닦은 분이었다. 하지만, 정공 스님의 당시 목적은 경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었기에, 정토법문을 아직 받아들이지는 못 했다. 이병남 거사는 정오에 한 끼 식사만 했는데, 스님도 스승의 생활방식을 배웠다. “평생 일종식을 해나가고, 남의 도움을 빌지 말라”는 당부를 실천해 지족(知足)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병남 스승 문하에서 보리심을 발한 정공 스님은 1959년, 32세의 늦은 나이로 타이베이(台北) 임제사(臨濟寺)에서 출가해 각정(覺淨)이란 법명을 받았다. 스님은 출가 후 성인의 도덕교육을 회복하고 대승 불법의 자비정신을 홍양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 중단 없이 경전을 강설하고 불학(佛學)을 가르치겠다고 서원했다.

화엄경 강의 17년만에 정토 진수 깨달아

이렇게 ‘불타교육’의 대중화를 발원한 정공 스님은 1971년(민국 60년) 타이베이 화장(華藏)불교도서관에서 한영(韓鍈) 보살의 호지(護持)를 받아 〈화엄경〉 강의를 시작했다. 경전 강의를 자신에게 맞는 가장 중요한 수행으로 여긴 스님은 각고의 노력으로 〈화엄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강의한 끝에 스님은 마침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엄세계의 후보불(後補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했으며, 그들이 가르친 선재동자가 닦은 수행법 역시 염불법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확신에 찬 스님은 비로소 고개를 돌려 다시 정토삼경(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을 더욱 깊이 공부하게 되었다. 나중에 수나라와 당나라 때의 대덕들이 설한 “〈화엄경〉과 〈법화경〉은 〈무량수경〉의 안내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법문이 진실임을 확인한 것이다.

한영 보살 외호로 정종학회 세계화

10년 간의 경전 강의는 화장불교도서관 한영 관장의 외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30여년간 정종학회의 세계화를 이끌고 1997년 3월, 아미타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자재하게 왕생하였다.

1982년부터 미주 포교 성공

정공 스님은 1982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정토법문을 전하려 했지만, 그때 많은 수행자들이 스님에게 “미국에서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게 되니 절대로 염불법문을 강의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미국에서는 모두들 선(禪)과 밀(密: 티벳 밀교)을 말하기 때문에, 스님은 처음애는 구두선(口頭禪)을 설해 이미 선을 배운 사람들을 항복시켰고, 그 후에 다시 밀교를 가르쳐 조복시킨 다음 정토법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86년, 드디어 스님은 미국 워싱턴 콜롬비아 특구에서 화부(華府)불교회를 설립, 〈무량수경〉 선본을 강설했다. 본격적인 미주지역 포교가 시작된 것이다.

英 황실 환대 받으며 서구에 염불법 전해

1995년, 정공 스님은 이목원(李木源) 거사의 호지를 받아 싱가포르거사림과 정종학회와 함께 인재를 육성하는 한편, 2001년 호주에서 정종학원(淨宗學院)을 설립, 〈무량수경〉 선본을 강설하였다. 2015년에는 영국에 정종학회를 설립하였다. 스님은 여러 정종학회 불자들과 영국에서 법회를 열어, 영국 황실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도 스님은 호주 정종학원에서 머물면서 수차례에 걸쳐 서구인들에게 〈무량수경〉 선본을 강설하며 정토법문 홍포에 진력하고 있다.

아울러 정공 스님은 불타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엄청난 부수의 정토 경전을 인쇄해 대중에게 무상으로 나눠주어 법연을 맺게 했다. 특히 〈건륭대장경(乾隆大藏經)〉·〈사고전서(四庫全書)〉등을 인쇄하여 전 세계 고등학부, 국가도서관 및 각종 종교단체에 기증해서 이를 소중히 보관하게 하고 학술연구용으로 쓰게 하였다.

실시간 사이버 강의로 정토종 세계화

정공 스님은 인터넷 시대에 맞는 포교방법도 적극 활용하였다. 스님은 21세기의 도량은 사원이 아니라며, 영상설비·인터넷·위성TV 등을 활용해 부처님 법문을 개인의 TV나 컴퓨터로 보내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어질고 자비롭고 넓게 세상을 사랑하는(仁慈博愛) 불타교육을 실현했다. 스님은 인터넷과 위성TV를 통해 정토 5경은 물론 〈화엄경〉 〈능엄경〉 〈지장경〉 등 수십 경론을 강설하는 한편 〈제자규(弟子規)〉 〈요범사훈(了凡四訓)〉 보급을 통해 인과응보 및 인성교육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고향에서 인성·도덕교육 시범사업 성공

정공 스님은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평소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종교간의 화합을 위한 국제평화회의에 참가하는 한편, 중국에 ‘화해 시범구(區)’를 건립하기도 했다. 스님은 고향인 안휘성 려강현 탕지진(湯池?)에 ‘문화교육센터’를 건립하고 윤리도덕교육 교사를 길러내어 작은 읍 전체 주민에게 오륜(五倫)교육을 실시, 사람들로 하여금 ‘화해사회(和諧社會)’가 구호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92세 노구로 강의하며 말법중생 구제

“마음 거울 밝아서 비침에 걸림 없고/ 심량(心量)은 평등한 사랑 하나로 항하사 세계에 두루 하시네/ 인간의 스승 되시어 세상의 모범 행하시고/ 자신은 온갖 고통에 빠질지라도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으시네.”

정종학회의 스승에 대한 헌사(獻詞)처럼, 60여년 간 하루도 불교 강의를 쉬지 않은 정공 스님의 현재 진행형인 일생은 “불학으로 인간의 스승 되시고, 행으로 세상의 모범이 되시다”라는 찬탄으로 요약된다. “진성(眞誠)·청정·평등·정각(正覺)·자비·간파(看破)·방하(放下)·자재(自在)·수연(隨緣)·염불”은 스님이 세상을 살아온 원칙이었다. “인자박애(仁慈博愛)”와 “수신을 근본으로 삼고 교학을 우선함(修身爲本 敎學爲先)”은 경전을 강설하고 가르치는 순일한 요지였다. 오늘도 92세의 노스님은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위한 장비와 간이 병풍을 휴대한 체 지구촌 어느 곳에서 법을 설하고 있을 것이다. 염불수행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도 스님의 정토법문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연이 조성되길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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