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시청하다보면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눈에 띌 만큼 크고 예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나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순한 패션 아이템의 하나인지 출연자 개인의 신앙심 표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별다른 저항감은 없다. 즉, 십자가는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아이콘임에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써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십자가 비해 종교색 강한 卍 문양
본래 불교는 유연성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아주 젊은 연예인이나 인지도 높은 유명인사가 공영 방송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 문양의 장신구를 패션 아이템으로, 혹은 개인적 신앙심의 표출로 착용하는 예는 거의 본적이 없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아이돌 그룹’ ‘일요일, 혹은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 교회 다니는 아이돌 그룹’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절 문양 목걸이를 한 아이돌 그룹’ 혹은 ‘부처님오신날 법회나 백중 천도재에 참석한 아이돌 그룹’은 어딘가 모르게 그림이 어색하다. ‘교회 오빠’는 당연한 단어이고 ‘절 오빠’는 상식을 뒤엎는 말로 개그의 소재가 되어버렸다.

1,500년 역사의 한국불교는 긴 역사만큼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지만 바꾸어 말하면 옛날 느낌이 가득한 종교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사상사의 변곡점을 살펴보면 불교는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함께 호흡하였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해 극복할 수 있는 7가지 환란을 나열하고 있다.

그 중 ‘금은보화를 구하기 위해 먼 바다에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는 풍난(風難)’과 ‘귀중한 보물을 가지고 위험한 길을 가던 수많은 상인들이 도적을 만나는 적난(賊難)’은 당시 불교가 어떤 그룹들에게 지지되어 왔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풍난의 경우는 인도와 아라비아 반도를 오가는 해상 무역 종사자들을, 적난의 경우 로마나 중국 등과 육상 무역을 하는 대상단(大商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해상 및 육상을 통해 외국과 무역을 행하는 집단은 소규모 상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거대 해운 기업과 유통 운송 기업에 해당한다.

이러한 양상은 <법화경> 신해품(信解品)의 유명한 장자궁자(長者窮子) 비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장자(長者)’라는 말은 상인(商人)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슈레스틴’의 번역어다. 경전은 구체적으로, 그 장자의 이자가 다른 나라까지 미치고, 그의 집에는 상인과 고객이 매우 많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당시 <법화경>이 유포된 지역과 시기가 금융업 및 화폐 경제가 매우 발달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화경> 및 대승불교를 지지한 집단들은 거대 금융 기업에 해당하는 대자본가 집단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고대 남인도의 여러 도시에는 왕보다 더 부유한 해상 무역상들이 존재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불교도였다고 한다. 즉 불교는 이러한 신흥 세력들을 경전의 주인공으로까지 등장시키는 유연성을 발휘하며 불법(佛法)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불교는 언젠가 훗날 ‘아이돌 절 오빠’가 불교 설화(說話)에 한 축을 담당하는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유연성이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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