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보살이 생각하기를

菩薩思惟。若有可願處使一切生身心之苦一時俱集我身。常受之使生得樂不以苦。菩薩思惟。我菩提道中住一切所有諸苦。我皆能堪忍。所以者何。生沒溺生死苦海我不能度脫。菩薩思惟。雖有重結使然菩提道難得。如是但有悲智二事伴心終不疲厭。菩薩思惟。善逝所行道我今從中去。我今於世間悲心施生。當思惟。我如彼無異。菩薩思惟。我今世間依救當發弘誓。願修大莊嚴智慧善伴。我今佛慧牙將生。菩薩思惟。我欲滅生苦。使一切生得樂。欲作一切事。我常悲心之所敎詔。菩薩思惟。生死之苦聞尙疲厭。悲者能得堪忍世間苦故。悲心尙向生死門。菩薩思惟。生死苦極可厭惡。欲入涅槃。大悲語言。苦惱生未度。云何捨棄而去。菩薩思惟。有苦具足涅槃出世樂。我今知生死有苦涅槃無樂。悲心常樂三種施。


번역|보살은 생각하되, “만약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일시에 내 자신에게 모으는 것이라. 항상 중생으로 하여금 기쁨을 얻게 하되 괴롭게 여기지 않으리라”합니다. 보살은 생각하되, “내가 보리도(菩提道) 가운데 머물되 일체의 고통이 있어도 나는 모든 것을 능히 참으리니, 어째서 그런가하면 중생이 생사고해에 빠져도 내가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비록 거듭 묶여 보리도를 얻게 함이 어렵더라도 이와 같이 다만 자비와 지혜 두 가지 일로 짝을 삼으면 마음은 끝내 피곤치 않으리라.”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선서께서 행하신바 도를 내가 지금 좇아 바로 가리니, 내가 지금 세상에 자비심으로 중생에게 보시하리라”하며, 응당 생각하기를, “내가 저와 다름이 없다”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세상의 의지처가 되고 구제하려 응당 큰 서원을 발하나니, 원컨대 큰 장엄 지혜를 닦아 좋은 도반이 되며 내가 지금 부처님 지혜 싹을 내리라”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중생의 고통을 멸하고 일체 중생이 즐거움을 얻도록 일체를 섬기려 하노니, 내가 항상 자비심으로 할 바를 가르치리라”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생사의 괴로움을 들으면 늘 피곤하지만 자비로운 이는 능히 참나니, 세상은 괴로운 까닭에 자비심으로 늘 생사의 문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생사의 괴로움이 극히 싫어 열반에 들고 싶지만, 대자비의 말로 괴로운 중생을 구제하지 못하고서 어찌 버리고 떠나랴” 합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유위(有爲)의 괴로움에 열반과 출세간의 즐거움이 갖추어져 있으니, 내가 지금의 생사는 유위의 괴로움이요, 열반은 무위(無爲)의 즐거움임을 아노니 자비심으로 늘 즐겁게 세 가지 보시를 하리라” 합니다.
 

해설|보살이란 말이 보리(깨달음)와 중생의 합성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깨달은 중생’이라 해석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중생’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두 가지 다 틀린 해석이 아니지만 ‘깨달은 중생’이라는 의미가 더 와 닿는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와 있듯이 ‘내가 저와 다름이 없다.’는 제바보살의 고백이 그지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가 부처님인지 중생인지는 의미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자신도 중생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선서(善逝)는 부처님의 별칭이다. ‘잘 간다’는 뜻인데, ‘깨달음의 길로 잘 가시는 이’라는 의미이다. 제바보살은 보살이란 선서께서 가신 그 길을 자신도 따라가리라는 원력을 세우는 이며, 자비심으로 보시하리라 다짐하는 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얽매인 중생과의 동질성을 고백하면서 한편, 부처님의 가신 길을 잘 따라가는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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