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혼밥과 혼차(茶)

법정 스님은 나보다 먼저 운전을 배우셨다. 산중에서 장 보러 가시거나 먼 바람을 쐬려면 운전하는 것이 편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느 가을날인가는 나를 송광사에서 광주버스터미널까지 스님의 소형 승용차로 태워주셨다. 클래식 음악카페인 ‘베토벤’에 학생들 학비를 전해주러 가시는 길인 듯도 싶었다. 학비를 ‘베토벤’ 주인에게 맡겨 놓으면 학생들이 찾아갔다. 학생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스님의 배려였다. 요즘은 장학금이나 희사금을 내놓고 촌극을 벌이는 일이 많다. 돈의 액수를 아라비아숫자로 크게 쓴 피켓을 들고 촬영한 사진들이 신문에 버젓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들인 경우 더 민망하다. 신도들에게는 상(相)을 내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정작 가사를 입은 분들이 상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스님께서는 광주버스터미널을 가는 동안에 CD를 한 장 뽑으시더니 조지 원스턴의 ‘디셈버’를 들려주셨다. 혼자 듣기에 좋은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승용차는 광주 부근의 어느 주유소에서 멈추었다. 스님께서는 아예 ‘디셈버’ CD를 나에게 선물하시면서 암자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주유소에서 승용차에 기름을 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일러스트 정윤경

스님 특유의 탁월한 비유였다. 수행자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이나 승용차에 기름을 넣는 것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움직이고자 기름을 넣듯 수행자도 수행하고자 밥을 먹지 않은가. 혀를 위한 식탐은 수행자의 식사법이 아닐 터. 혼자 밥 먹는 것을 은어로 ‘혼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혼밥’의 원조는 암자에 독거하는 스님의 무덤덤한 식사가 아닐까. 차도 마찬가지다. 수행자들은 차도 혼자 마시곤 한다. 그럴 때의 차는 ‘혼차(茶)’이리라. 법정 스님은 혼자 마시는 차의 ‘적적한 맛’이 최고의 맛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스님은 가끔 다산 정약용의 독소(獨笑) 즉 ‘홀로 웃다’라는 시를 애송하셨다.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자식 많은 집은 배고픔이 있으며/ 높은 벼슬아치는 반드시 어리석고/ 재주 있는 사람은 재주 펼 길 없다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지극한 도는 쇠퇴하기 마련이며/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푼수이다

보름달 뜨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젊은이들의 은어지만 이왕에 혼밥과 혼차란 말이 있으니 이 시의 제목을 ‘혼소(笑)’라고 번역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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