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나이에 출가(出家)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중학교 진학은 꿈의 눈물방울 같은 바람이었다. 1960년대 초 당시엔 백양사는 대처승들의 요람이었다. 49재를 밤새워 지내는데 염불하는 스님들이 휴식시간에는 뒷방에서 신도들 몰래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실망과 분노는 마침내 백양사를 떠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여, 통도사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백양사에서 받은 사미계는 힘을 잃고 다시 고된 행자 수업을 하게 된다. 밥 짓는 공양주, 국 끓이는 갱두, 반찬 장만하는 채공에 이르기까지 몇 년을 두고 후원의 길고긴 행자생활이 이어진다.

인도·중국 등서 정진하며 깨달음
이제 행복 누리며 자유로이 산다


대학 나오고 허우대 멀쩡한 행자들은 행자 수업 기간과는 상관없이 어른 스님들로부터 선택되어 스님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얼굴은 검다. 블랙보이가 행자시절 별명이다. 늦게 철이 들어 해외에 머문 15년 동안에도 미얀마나 태국사람으로 받아들일 만큼 피부가 검고 수상쩍은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다.

통도사 뒷방에는 노승 한 분이 뒤뜰 잡초마냥 별 볼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몇 번이나 그 광경을 지켜보며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실망감으로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된다. 통도사의 승가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뜻한바 있어 해인사 선원으로 오게 된다.

해인사에는 고암스님, 성철스님, 지월스님, 자운스님, 영암스님, 일타스님, 혜암스님, 법전스님이 선원의 지도자이자 정진 대중이었다. 고암, 성철, 혜암, 법전스님은 종정을 역임하시게 된다. 일타스님과 지월스님은 한국불교계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수행의 교과서이자 교훈적 전설을 남기신 스승님이다. 동사섭(同事攝)을 몸으로 실천하신 올곧은 참스승이 일타스님이요, 청빈(淸貧)의 실천가이자 하심을 생활화 하신분이 보살의 상징 지월선사이기 때문이다.

해인사 선원에 머물 때 3개월간 후원의 공양주를 자청해 하루 세끼 밥 짓는 일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이른 새벽인데 지월스님은 수채 구멍에서 밥알을 찾아내 깨끗한 물로 헹구고 있었다. 그 헹궈낸 밥알을 냄비에 넣어 끓여 드시는 스님이 당시 해인사 주지 지월선사였다.

당시의 해인사 선원에서는 법거량(法擧量)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고암스님, 성철스님, 향곡스님, 서옹스님, 월산스님 등이 함께 하셨고 혜암, 법전, 지월, 일타스님이 소임자로 정진대중과 함께 묻고 답하는 진리의 광장이 열기로 가득하였다. 가끔씩 청담스님도 참석하시는 자리였다.

요즘은 법거량이 사라진 빈터의 적막감이 예전의 큰 스님들을 더욱 그립게 하고 있다. 그 뒤 대한민국의 남자로 군복무를 마치고 불교신문사의 심부름꾼이 된다.

하루는 조계사 뜰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을 보게 된다. 그때가 윤달이라서 생전예수재의 회향일 이었다. 전생(前生)의 빚을 갚고 내생(來生)의 길을 밝히는 행사로 일인당 3천 원을 받고 꽃가마에 신도를 태우고 스님 둘이서 앞뒤로 가마를 매고 줄달음질쳐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오는 민망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건 대낮에 조계종 총무원의 법당 뜰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동대문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버스요금이 8백 원인데 법당 한 바퀴 꽃가마 타는 요금이 3천 원이라니. 더욱 못마땅한 것은 부모 형제를 마다하고 출가(出家)한 젊은 스님들이 자존심도 팽개치고 3천원 받고 가마 매고 뜀박질 하는 꼴 이라니.

나는 늦게야 철이 든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인도로 날아간다. 미치고 환장할 만큼 한국이 그리워도 피눈물 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인도에서 3년을 간절함 하나로 머물게 된다. 어느 날 천지개벽 하듯 일체의 의혹이 일시에 풀리는 누구에게나 좋은 스승, 착한 벗이 되는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그 뒤, 네팔과 티베트를 거쳐 중국에서 7년 동안 머물며 중국어도 익히고 중국 고어를 배우며 불교의 경전과 선어록을 살피게 된다. 해외생활 15년도 마무리한다. 누가 무엇을 물어도 속이지 않고 속지 않으며 머뭇거리나 망설이지 않는다. 요즘은 할 일없는 늙은이로 행복과 자유 누리며 법거량을 즐기며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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