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녕 깨달은 장부란

覺悟丈夫品第二十一
悲心極?富 利他已生樂/ 貧窮悲心人 不能貪此樂/ ?愚愛自在 悲心則背去/ 悲心已背去 苦皆來集
愛自在者。處生死中欲分苦與他共?流生死。悲心者。於世間生分寂滅樂共之而去。有愛心者樂於三有。知愛過者則樂涅槃。作利益他者則樂悲心。愛自在者常樂世間。受身己樂故。悲自在者常樂受身。樂他故。愛自在者常樂己樂以自縛。悲心者恒欲與他樂而自縛。愛自在者常己樂無有疲厭。悲心者與他樂而無疲厭。愚愛小者不愛自己亦不愛他。菩薩亦愛自己。愚癡生常我者。實是他。

 

번역|각오녕장부품 제21
자비심이 지극히 풍부하여 남을 이롭게 하면 이미 즐거움이 생기고

자비심에 가난한 이는 탐하여도 여기에 즐거울 수 없다네.

어리고, 어리석고, 애착함으로 멋대로 하면 자비심은 떠나가나니

자비심이 이미 떠나갔으니 뭇 괴로움이 다 모여든다네.

애착이 자재한 이는 생사(生死)에 머물며 타인과 더불어 괴로움을 나누고자 하나 모두 생사에 윤회합니다. 자비심 있는 이는 세상의 중생에게 적멸락(寂滅樂)을 나누며 함께 떠나갑니다. 애착심 있는 이는 삼계(心界)를 즐거워하지만 애착을 벗어난 이는 열반의 즐거움을 압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이는 자비심으로 즐겁고 애착이 자재한 이는 늘 세간을 좋아하는데, 몸 받는 것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이 자재한 이도 몸 받는 것이 늘 즐겁지만 타인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애착이 자재한 이는 늘 자신의 즐거움을 좋아하기에 스스로 얽히고, 자비심 있는 이는 늘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얽맵니다. 애착이 자재한 이는 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피로하며, 자비심 있는 이는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려고하기에 피로가 없습니다. 어리석고 애착하는 소인배는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고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지만 보살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 늘 자신만을 위하지만 실제로 남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일입니다.
 

해설|제21품의 제목인 ‘각오녕장부(覺悟丈夫)’란 ‘깨달아야 정녕 장부’라는 뜻이다. 본 논서가 제바 보살의 〈대장부론〉인데, 대장부란 바로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깨달음’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은 조사어록에 넘쳐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룬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사상이다. 그러데 제바 보살이 말하는 ‘각오(覺悟)’, 즉 깨달음은 좀 다르다. 깨달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접근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누군가가 인가해 주는 그런 깨달음이 아니라 스스로 알고 남들도 보아서 알 수 있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바로,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그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중생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괴로움에 얽히는 이들이라고 말하며, 보살은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스스로 번뇌에 얽히는 이라고 말한다. 소인배인 중생은 그 번뇌에 얽힘을 통해 자신도 사랑할 줄 모르고 남도 사랑할 줄 모르지만, 보살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 바로 자신을 위하는 삶임을 실제로 믿는 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구나 싶다. 진정한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의 즐거움 속에 있었음을 알 리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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