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해제·로담 정안, 해설 이용윤|조계종출판사 펴냄|3만원

이 책은 월지국서 가야에 와 불교를 전파했다고 전해지는 장유 스님을 비롯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 속 대표 고승인 나옹 혜근, 벽송 지엄, 사명 유정 등 모두 100여 선사들의 진영과 찬문을 소개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진영과 찬문을 소개하고 해설해 놓은 작업은 근래 찾아보기 힘든 시도이다. 또한 전국 사찰에 모셔진 진영과 찬문을 그러모아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제와 해설을 집필한 저자들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진영으로 만나는 100명의 선사들

선사들의 투철한 수행정신 담겨

찬문, 선사의 행적 또는 업적 기록

이 책의 찬문 해제를 맡은 정안 스님은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진영 해설을 맡은 이용윤은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실 실장을 역임한 불교 관련 문화재(불교미술) 전문가이다. 이 두 저자의 콜라보레이션은 우리가 단순히 초상화로서만 이해한 진영에 대한 시각을 불교적·역사적 맥락으로 한 차원 높인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 승려 문도들의 돈독한 정과 지금까지 계승돼 온 선사들의 사상을 느낄 수 있고, 진영과 찬문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선사들의 투철한 수행 정신과 자비 넘치는 삶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아직도 여여히 펼쳐지는 선사들의 정신을 한 폭의 그림과 짧은 글 한 편으로 그려보는 일은 많은 독자들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설고 새로운 방식의 이해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르고 지나친 여러 스님들의 진영에 한 번 더 눈길을 돌릴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고찰(古刹)을 방문할 때면 우리는 곧잘 옛 스님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발견하곤 한다. 그것을 우리는 ‘진영(眞影)’이라 부른다. 이는 선사(先師)의 공덕을 기리며 후대의 스님들이 조성한 초상화로서, 문도 제자들이나 불교 신도들은 진영에 향을 공양하기도 하고, 기일(忌日)이면 진영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 진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의 초상화, 특히 서양의 초상화와 다른 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아주 단순하게는 불가(佛家)의 고승대덕(高僧大德)을 그렸다는 대상의 차이를 들 수 있지만, 특기할만한 점은 주인공을 얼마나 흡사하게 그렸냐보다는 대상의 정신, 혹은 사상을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찬문(讚文)이다. 찬문은 진영의 주인공인 선사의 생전 인상이나 행적, 또는 사상이나 업적 등을 기록한 짧은 글이다. 이 글을 쓴 찬자는 매우 다양한데, 선사의 제자이거나 잘 알고 지낸 문인·사대부들·추사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더러는 주인공 본인이 스스로 찬문(自讚)을 쓰기도 했다.

송파당 대선 진영. 조선후기, 직지성보박물관 소장.

우리는 이러한 진영에 나타난 선사들의 모습이나 인상을, 그리고 찬문에 기록된 행적 등을 곱씹어 보며 진영의 주인공이 살아생전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정신으로 수행해 왔는지 형상을 넘어선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이 중 자찬, 즉 진영의 주인공 스스로가 쓴 찬문에는 눈에 보이는 형상에 얽매이지 말 것을 당부하는 특징이 있다.

“형상은 본래 거짓, 그림자가 어찌 참모습이겠는가/용모가 존재하나 용모가 아니고 몸을 떠나니 곧 몸이네/멀리 와서 모습 알기 어렵고 갈 곳을 찾지만 인연이 없다/낱낱이 부인하고 누구를 볼거나”

위의 찬문은 오암 의민 스님의 자찬으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에 얽매이지 말고, 참모습을 찾으라는 선사의 당부는 곧 불교가 지향하는 정신과도 연결된다. 현재 확인 가능한 찬문은 진영의 한켠에 쓰여 있거나 별도의 현판에 새겨지지만, 문집과 같은 책에 엮여 있기도 하며, 더러는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찬문을 통해 선사의 생전 모습과 정신을 좀 더 생생히 떠올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짧은 글일지라도 매우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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