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시대 고민 담긴 역사서”

일연 스님(一然, 1206~1289)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삼국유사〉를 찬술한 저자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껏 〈삼국유사〉에 대한 높은 사학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연의 행적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는 형편이다. 고려시대 가장 격동기였던 13세기를 살았던 일연의 생애가 중요한 것은 그가 역사가이기 이전에 승려라는 사실과, 그가 생존한 시기가 민족사상의 일대 격변기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수행승으로 살아왔던 일연
만년에 삼국유사 찬술 매진
‘고려 再造’ 역사 인식 바탕


그런 의미에서 채상식 부산대 사학과 교수의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은 고려 말 격변기를 살아간 일연이라는 승려가 얼마나 많은 스펙트럼을 가졌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오랫도안 고려불교사와 일연을 연구해 온 저자는 〈삼국유사〉라는 필터를 거쳐 그에게 접근하기보다 일연을 중심축에 두는 연구 방향을 택했다.

실제, 일연 스님은 비슬산에서 20여 년 수행하다가,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주석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대장경 조판에 참여했다. 간접적이지만 수선사 혜심의 영향도 받았다. 

이후 일연의 행적은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전개됐다. 일연 스님이 대선사가 되고 원종의 명에 의해 선월사에 주석하게 된 것은 “왕정복고 세력들과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와 함께 채 교수는 일연 스님은 1차적으로 공안을 타파한 선승이었지만, 교학과 신앙적 측면에서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연 스님의 신앙적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인흥사를 통한 관음신앙이었다. 이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중들에게 신앙적 대안을 목표로 하여 찬술된 〈삼국유사〉로 연결된다. “신앙과 역사가 합일점을 모색한 것”이다.

실제, 일연 스님은 고려사회 내부의 변화와 대외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삼국유사〉는 국가, 국왕 중심의 역사관으로 권신을 비판하는 내용과 단군으로부터 민족사의 체계를 정립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채 교수는 “일연은 궁극적으로는 고려를 재조(再造)하려는 역사의식을 가졌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삼국유사〉의 찬술로 나타났다”면서 “따라서 〈삼국유사〉의 성격을 야사, 설화민담집, 하나의 만록(漫錄), 불교(문화)사 등으로만 볼 수 없다. 시대의 고민과 일연 및 불교계 사관을 반영한 역사서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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