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입과 눈, 그리고 귀

작년 11월 그리스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아테네 시의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아고라 광장과 파르테논 신전을 본 뒤였다. 관광객들이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돌기둥과 조각된 문양들을 보고 탄복하는데 나는 좀 무덤덤하게 감상했다. 석질이 무른 대리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석조물처럼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었다. 화순 쌍봉사의 철감선사 부도나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처럼 화강암을 도자기 진흙 주무르듯 했다면 나 역시 감탄했을 것이다. 때마침 그 시간에 광화문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동참을 못해 시큰둥한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돌산 산정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노상카페와 상점들이 들어선 플라카 지역의 뒷골목에서야 답답한 마음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어느 기념품 가게를 들렀는데 온통 대리석으로 만든 부엉이 조각품뿐이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아테네 시를 상징하는 새가 부엉이라고 말했다. 아테네가 지혜의 여신이므로 부엉이가 상징하는 바도 지혜라고 덧붙였다. 비교적 큰 부엉이 한 마리를 산 뒤 가게를 나서려고 했을 때였다. 가게의 진열대 구석에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세 마리 부엉이상(像)이 있었다. 한 마리는 날개로 입을 가리고 있고, 또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있었다.

일러스트 정윤경.

나는 부엉이상의 의미를 알 것 같았으므로 선뜻 지갑을 열었다. 주인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흥정 없이 샀다. 법정 스님께서 인도를 여행을 하시고 돌아와 내게 선물한 기념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 역시 같은 의미를 띤 세 마리 원숭이상(像)이었던 것이다. 스님께서 뉴델리에 있는 간디기념관에 들렀을 때 생전의 간디가 애지중지했다는 세 마리 원숭이상이었다. 물론 모조품이었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에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품이라고 말씀하셨다.

원숭이가 손으로 입을 가린 것은 나쁜 말 하지 말고, 눈을 가린 것은 나쁜 것을 보지 말고, 귀를 가린 것은 나쁜 소리를 듣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셨다. 거꾸로 뒤집어 말하자면 입은 좋은 말을 하라고 있고, 눈은 좋은 대상을 보라고 있으며, 귀는 좋은 소리를 들으라고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둘 중 하나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오직 복을 발(發)하는 행위이거나 복을 감(減)하는 행위만 있을 뿐이지 그 중간은 없다고 본다. 인과에 어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이 있을 것인가. 이를 발복(發福)과 복감(福減)이라고 하는데 그것의 징검다리는 앞에서 말한 입과 눈, 그리고 귀가 아닐까.

법정 스님께서 세 마리 원숭이상을 내게 선물한 뜻도 깊이 헤아려보면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거실 불단 위에 세 마리 원숭이상을 올려놓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성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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