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보살

 

“육지의 길에서 걸어가는 것은 힘들고, 바다의 길에서 배를 타는 것은 즐거우니 보살의 길도 이와 같다. 혹은 ‘부지런히 행하여 정진하는 길’(難行道)이 있고, 혹은 ‘믿음의 방편으로 행하기 쉬운 길’(易行道)로 속히 불퇴전의 땅에 이르는 자가 있다.” - 〈십주비바사론〉

성불하기 쉬운 길 안내한 ‘제2의 석가’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은 대승불교권에서 ‘제2의 석가’로 추앙받는 용수(龍樹, Nag arjuna)보살의 저술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자력(自力) 위주의 어려운 난행도(難行道)와 불력(佛力) 위주의 쉬운 이행도(易行道)로 나누고 염불문을 열어보인 근거로 삼게 된 논서이다. 이 논서는 대승의 수행자가 걸어가는 보살도에서 ‘믿음의 방편으로 행하기 쉬운 길’을 말할 뿐 아니라, 그 길을 염불이란 수행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정토문을 열게 된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용수보살은 이 논서에서 “만약 보살이 이 몸으로 불퇴전의 땅(不退轉地)에 이르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응당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名號; 이름)를 불러야 한다”면서, 성불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쉬운 방편인 염불수행을 적극 권장했던 것이다.

화엄십지 염불삼매 설해

극락정토 왕생발원 특징

구경성불 속성불도 이뤄

초지보살로 왕생극락한 ‘대승의 아버지’

용수보살은 부처님으로부터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선종의 제14대 조사(祖師)인 동시에 8종(宗)의 종주(宗主)이기도 하다. 특히, 정토종에서는 처음으로 염불문을 개창한 창조(創祖)로 존중하고 있다. 그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약 600~700년 후(서기 2~3세기)에 남천축국(南天竺國)에 태어나 부처님의 대승법(大乘法)을 세상에 널리 편 논사로서, ‘대승불교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특히, 용수보살은 부처님께서 미리 예언까지 해놓으신 분이기도 하다.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열반한 후 미래세에 남천축국에 용수라는 자가 태어나서 나의 대승법을 세상에 널리 펴서 환희지(歡喜地; 보살 초지)를 증득하여 왕생극락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이다. 이 예언에서 보듯이, 용수보살은 윤회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인 극락정토와 무척 인연이 깊은 분임을 알 수 있다.

은신술로 궁녀 임신시킨 후 참회하고 출가

그러나, 엄청난 저술에도 불구하고 용수보살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구마라습이 지은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따르면, 그는 인도 남부의 브라만 출신으로 브라만 논사였다고 한다. 그는 총명했지만, 청년시절에는 충격적인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친구 세 명과 몸을 숨기는 은신술을 익혀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범해 임신까지 시켰던 것이다. 왕은 범인을 잡기 위해 땅 위에 고운 모래를 뿌리게 하고, 그들의 발자국이 모래에 새겨지자, 병사들에게 창과 칼로 공중을 찌르도록 시켰다. 친구 세 명은 그 자리에서 모두 죽고, 용수보살만 간신히 궁중을 탈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모든 욕망이 번뇌와 고통의 근원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중관학파 논사로 공과 중도사상 체계화

그가 살던 시대에는 상좌부가 스리랑카로 건너간 상태였고 인도에는 상좌부가 소멸된 상태였기에, 부파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에 귀의했다. 공(空)사상을 핵심으로 여기던 초기 중관학파에 출가한 용수보살은 불과 석달만에 기존의 불경을 다 외웠다고 한다. 중관학파의 논사가 된 용수는 어떤 불변의식(分別意識)이 있어 윤회한다는 부파의 아비달마를 비판함과 동시에, 중관학파의 공(空)을 더욱 철학화 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중송(中頌)〉이고, 그 핵심 내용이 팔불중도(八不中道)이다. 용수보살은 〈중론(中論)〉에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出)”는 팔불중도를 설해 모든 사견을 타파했다. 동시에, “연기법(緣起法)이 곧 공이며, 또한 가명(假名)이며, 또한 중도의 뜻이다”라는 삼제게(三諦偈)로서 중도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용수보살은 출가자 위주의 ‘수행중심 불교’에서 재가자 중심의 대승불교 교단의 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교단에 맞게 교리와 계율을 수정하고 의복과 의식도 새로 만들어 기존 승단과 차이를 두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 그의 일생은 믿기 어려운 일화들로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무작정 전설로 치부하기 보다는 하늘과 지옥 등 육도(六道)에 속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는 측면에서 담담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용궁(龍宮)에 들어가서 〈화엄경〉을 가져왔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일화가 그렇다.

용궁에서 화엄경 등 대승경전 통달

대룡(大龍)보살은 용수보살이 자신의 실력을 믿고 아만심(我慢心)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측은지심을 내어 그를 바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용궁의 칠보로 장식한 창고에 가득한 대승 경전들을 보여줬다. 용수보살은 이것을 받아 석 달간 독송하고 그 종지를 두루 통달했으며, 특히 〈화엄경〉에 심취했다. 방대한 3본(本)의 〈화엄경〉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하본(下本) 화엄경과 그 밖에 다른 대승경전을 골라 모시고 나와서 대승법을 세상에 널리 폈다. 훗날 화엄경을 축약한 〈화엄경 약찬게(略纂偈)〉를 비롯해 〈대지도론〉ㆍ〈회정론〉ㆍ〈육십여리론〉ㆍ〈중송〉ㆍ〈십이문론〉ㆍ〈칠십공론〉ㆍ〈십주비바사론〉ㆍ〈대승이십론〉ㆍ〈자량론〉 등을 지었으니, 그의 불법에 대한 깊이와 넓이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심지법문 설하며 염불로 극락왕생 권해

심지(心地)를 깨달아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계승한 용수보살은 놀라운 지혜로 수많은 논쟁과 토론을 통해 많은 왕공과 장자, 브라만들을 불교에 귀의시켰다. 대승의 진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보살의 길, 태어남도 없고 죽어감도 없는(不生不滅), 본래 생멸이 없다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가르쳤다.

선종의 심요(心要)를 깨달은 용수보살은 공(空)도리와 심지법문을 설하는 한편, 항상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송(念誦)하며 많은 수행자들에게 왕생극락을 권했다. 극락정토와 염불수행에 대한 글도 많이 지어 훗날 정토종 교리의 근원을 제시했다.

번뇌와 죄업 소멸하는 염불삼매 강조

그 대표적인 논서가 바로 〈화엄경〉 중에서 ‘십주품(十住品)’을 해설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이다. 여기서 ‘십주’는 십지(十地)로,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십지를 모두 설명하지 않아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믿음을 방편으로 하는 이행도(易行道)인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고 마음에 새기는 길이 설명돼 있어 중요한 논서가 됐다.

아울러 용수보살은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염불삼매(念佛三昧)는 능히 종종의 번뇌나 숙세 죄업까지 다 제거한다”며, 염불삼매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성문이나 보살이 염불삼매를 닦을 때, 비단 부처님 몸만을 염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갖가지 공덕과 법신(法身)도 염해야 한다”며, 부처님 명호를 외울 때 항상 염두에 둬야 할 바에 대해 당부하기도 했다.

매미 허물 벗듯 생사해탈

염불문의 초조로서, 대승의 대표 논사로서, 가장 방대한 논서를 남긴 저술가로서 대승불교의 초석을 다진 용수보살은 명성과는 달리 조용하게 일생을 회향하였다.

소승불교의 한 법사가 용수보살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가?”

“진실로 원치 않습니다.”

소승의 법사가 이렇게 말하자, 용수보살은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이 왕생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백여 년이 지나, 남인도의 여러 나라에서는 용수보살을 위해 사당을 짓고 ‘제2의 석가’라 부르며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며 섬겼다.

정토에 왕생하면 누구나 ‘불퇴전지’ 증득

일심을 깨달아 선종의 조사가 되었으며, 모든 경전의 종지를 밝게 통달해 8종의 종주가 되어 ‘보살’의 칭호까지 받게 된 용수보살이 무슨 이유로 염불수행을 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한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구경성불(究竟成佛)과 속성불도(速成佛道)를 위한 것이었다. 수행자들이 보살 7지이상인 불퇴전지에 이르지 못하면 윤회하면서 전생에 닦은 대분분의 기억을 상실(격음의 미혹; 隔陰之迷)하기 때문에 용수보살은 일단 윤회를 벗어난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을 발원한 것이다. 극락세계에서는 범부에서부터 성문, 연각, 보살에 이르기까지 연꽃에 화생(化生)하는 즉시 누구나 불퇴전지 보살이 되어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갖추고 성불공부를 하게 된다. 곧 이어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여 법문을 듣게 되면 신속히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성불 수기(授記)를 받을 수 있기에, 일단 극락에 왕생할 것을 간절히 당부한 것이다.

불경의 왕인 〈화엄경〉의 주연배우인 문수ㆍ보현보살과 선재동자가 염불수행으로 극락왕생을 발원한 사실을 깊이 참구해 보자. 참선 수행자의 교과서인 〈능엄경〉에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이근원통(耳根圓通)과 염불원통으로 깨달은 법문을 다시 한번 사유해 보자. ‘제2의 석가’께서 염불삼매를 주창한 까닭을 거듭 살펴보시고, ‘발보리심 일향전념 아미타불’ 하시길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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