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미운털이 박혔으면 망초(亡草)란 이름을 얻었을까. 내려쬐는 햇빛 아래서 어제는 콩밭, 오늘은 고추밭, 내일은 고개 너머 고구마 밭의 잡초를 매야하는 아낙네. 그만 몸살이 나서 며칠 누웠다가 일어나니 온 밭이 망초로 가득하다. 아이고, 망할 놈의 망초야.

조선 말, 갑자기 온 들판과 논밭과 마당에 망초가 가득 퍼지더니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이것은 모두 너 때문이야. 망할 망초야, 망초로도 성이 풀리지 않는구나, 이 개망초야.

석룡산을 오르는 계곡 좌우로 하얀 개망초 꽃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장관이다. 드디어 개망초가 높은 고지를 향하여 일제히 진격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순하고 여리게 느껴지는 잡초. 억세지 않고 가시가 없어서 낫을 휘두르면 가느다란 모가지가 댕강 잘려 나가고 손으로 잡아당기면 저항 한 번 못하고 뿌리 채 뽑힐 것 같다. 이런 개망초가 깊은 산속을 기어오르는 강인함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개망초 꽃 한 송이는 왜소하고 볼품없어서 주위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가득 덮은 하얀 군단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소금을 뿌린 것 같다는 메밀밭만큼이나 애잔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사람들은 이런 개망초를 천박하다고 지레 단정 짓는다.

개망초 꽃은 개체로서의 개념이 아예 없는 지도 모른다. 언제나 줄기에 옹기종기 붙어서 함께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망초 한 포기가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은 삽시간에 군락을 이룬다. 이들의 민첩한 결속력이란.

바다를 건너 멀리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이, 저항할 수 없는 연약함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빈 터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서서 한 핏줄을 불러들이는 것일까.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고 다함께 꽃을 피워 그들만의 세상을 펼쳐내는 순박한 꽃동네. 이 꽃밭에는 자랑, 허영, 큰 목소리 그리고 하얀 거짓말이 끼어 들 수 없다. 오직 순결, 정직, 정돈, 화합의 꽃송이가 하얗게 빛난다.

꾸밈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망초 꽃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의 그림자를 아예 모르고 해맑게 웃는 아이처럼 천진하다. 절망과 고난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이 평화롭다.


그들이라고 어찌 고달프지 않으며 천대받는 서러움에 눈물짓지 않겠는가. 망초도 엄연히 국화(菊花)의 핏줄을 이어 받았거늘. 그렇지만 세상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업신여기고 구박하여도 빈 마음으로 그저 웃을 뿐이다.

다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아가야 할 터. 비록 망초의 모습이 여리고 애달플지라도 생명력만은 질기고 강인하다. 그 생명력이 세상의 틈새를 비집고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뿌리를 내린다.석룡산 능선을 하얗게 덮은 개망초 꽃, 일제 강점기 때 고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아남았던 조선 민초들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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