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강연 갈 때면 난 항상 신도님들께 농담 삼아 여쭤본다. “윤회를 믿습니까?”라고. 그러면 자신 있게 ‘그렇다’ ‘아니다’라고 답하는 경우는 잘 못 보았다.

주지하듯이, 윤회는 불교의 전유물은 아니다. 불교 태동 이전의 고대 인도인들의 공통된 사후(死後) 관념이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대지의 곡물을 열매 맺게 하고, 그것을 사람이 먹어 생명을 영위한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면 화장(火葬)하여 산산이 흩어진 그 몸은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빗물이 되어 곡물을 키우고, 그 곡물은 또 다른 사람이 먹게 되고, 그 사람 역시 죽음과 함께 빗물이 되어 곡물을 키우게 되고…. 이러한 순환의 법칙에서 고대 인도인들은 끝과 시작이 물고 물리는 윤회의 관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즉, 윤회는 자연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한 고대 인도인들의 지혜의 산물이었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역시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이 같은 윤회의 관념을 받아들였다.

윤회론의 발생에 관한 이러한 통시적 고찰은 인도학-불교학을 근대적 학문 체계로 만든 유럽학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이들 위대한 인도학자들 중에는 가톨릭 사제도 있듯이, 그들은 철저한 고고학·문헌학자들이었다. 따라서 불교를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접한 그들에게 윤회는 하나의 상징체계 즉, 인과응보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론적 장치로 해석되었다.

내가 아는 불교학자들 중에서도 불교인이지만 윤회를 상징적 의미를 띤 신화적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는 분이 많다. 그런 이유에서, 자칭 ‘윤회파’인 나는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과학적’ 견해를 빌려 윤회를 논증하려 하는데 그때 늘 소개하는 것이 바로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 1918~2007) 박사 이야기이다.

버지니아 의대 정신과 주임 교수를 지낸 그는 1961년에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전 세계에 있음을 알고 그 사례를 인도 등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실지(實地) 대면 조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윤회 관념은 고대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원주민들에게서 보고되고 있고, 아이들은 말을 시작하는 2~5세 사이에 전생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윤회 관념이 남아있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말을 믿어주기도 하지만, 현재는 윤회를 거부하는 종교나 문화를 가진 곳이 대부분이므로 ‘아이들의 상상력’ 정도로 치부된다. 그래서 5~8세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전생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성장함에 따라 그 기억도 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를 약 3000여건 이상 조사, 수집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1987년에 방대한 사례와 함께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을 출간하였다. 물론 그의 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지만, 과학자로서 그가 책 서두에서 남긴 말이 늘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윤회라는 것을 생각조차 않았던 사람들이 이러한 관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만이라도 한다면, 바로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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