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후쿠지

도후쿠지 방장의 정원 모습. 일본 사찰에서 방장이란 건물은 방장이란 선종 사찰의 조실(祖室)이나 주지실을 의미한다. 1881년 화재로 소실됐던 도후쿠지 방장 정원은 유명한 정원 예술가 시게모리 미레이에 의하여 1939년에 완성됐다.

외국 고유 명사는 발음이 비슷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토에 있는 도후쿠지도 나라 고후쿠지와 비슷한 이름이다. 실제로 도후쿠지의 ‘도’는 도다이지의 도(東), ‘후쿠’는 고후쿠지의 후쿠(福)자를 따서 지어졌다.

도후쿠지는 JR교토역 남동쪽에 위치하며 교토역에서 나라선을 타고 가면 다음 역이 바로 도후쿠지역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외국인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는 후시미이나리 다이샤(伏見稻荷大社)가 있다. 기요미즈데라에서도 멀지 않고 찾아가기가 비교적으로 쉬운 곳에 있지만, 예전에는 방문객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른바 숨은 명소였다. 그러나 요즘은 단풍 명소로 알려지면서 사진 촬영 포인트인 다리 위에는 출퇴근 시간의 전차처럼 많은 사람으로 혼잡하다.

日 임제종 도호쿠지파 대본산
禪堂, 日서 가장 오래된 건물
주지실 사방 정원 조성 ‘유일’
영고성쇠 거듭… 근현대 복원

도후쿠지는 이 연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선종 사찰이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 일본과 송나라의 교역이 많아지면서 승려도 배를 타고 입송했고, 송나라에서 융성했던 선종을 배워 왔다. 일본에 처음으로 선종을 전한 요사이(또는 에사이, 榮西)스님이 12세기 후반에 두 번 입송했으며 일본에 선종을 포교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서 탄압도 받았지만 가마쿠라 막부(幕府)의 지지를 받으면서 선종을 흥륭시키기 위해 진력했다.

가마쿠라시대에 요사이 스님이 선종 갈래인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했고 도겐(道元)스님이 선종 갈래인 조동종(曹洞宗)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좌선을 일본에 전했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 중국의 5산 제도에 의하여 교토 5산으로 교토에 있는 임제종 5대 사찰이 선정되었는데 도후쿠지가 그 중 하나로 뽑혔다.

현재 도후쿠지가 있는 곳에는 원래 홋쇼지(法性寺)라는 귀족 후지와라(藤原)씨의 가문 사찰이 있었다. 10세기에 지어진 홋쇼지는 약 300년간 후지와라씨의 가문 사찰로 번성했는데 1236년에 후지와라씨 일문인 섭정관백 구조 미치이에(九?道家)가 대불을 봉안하는 불전 건립을 시작했다. 사찰 이름이 도다이지의 거대함과 고후쿠지의 성대함을 모범으로 도후쿠지라고 이름지었다. 기존 불교계와의 마찰을 피하려고 처음은 천태종·진언종·선종이란 3종 겸학 도량으로 시작했다.

불전을 건립 중이었던 1243년, 엔니벤엔(円爾弁円, 1202~1280)스님을 개산조사로 초빙했다. 그는 송나라에서 선종을 배우고 귀국한 후에 선종 사찰을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선종을 보급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또 조정이나 막부에서도 큰 신뢰를 얻어 입적한 후에는 천왕에게서 쇼이치(聖一) 국사(國師)라는 칭호를 받아 일본에서 처음으로 ‘국사’라는 칭호를 받은 분이 되었다. 쇼이치 국사는 뛰어난 제자를 많이 키우고 그 중 입송한 제자가 12명이 있었다고 한다.

불전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의 높이는 15m, 대불 좌우에 봉안된 협시인 관음과 미륵보살상의 높이가 7.5m로, 신대불사(新大佛寺)라고 불려졌다. 이렇게 대불을 봉안할 정도의 큰 규모인 도후쿠지도 역사가 있는 다른 사찰과 다름없이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거듭했다. 14세기에 잇단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때는 복원 공사가 시작되고 불전도 재건되어 위용을 되찾았다. 15세기와 16세기에 큰 전란으로 또 피해를 많이 입었다.

그래도 막부나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가람이 수리, 복원되어 오랫동안 교토 최대의 선종 사찰로서의 면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으로 사찰 땅이 12만여 평에서 6만5천 평으로 줄어들고 70여개 있었던 도후쿠지 탑두(塔頭) 사원은 정부의 합폐사(合廢寺) 제령으로 절반 이상이 없어졌다.

게다가 1881년엔 화재가 일어나 불전, 법당 등 건물이 소실되어 버리고 대불도 한 손만 남은 상태였다. 다행히 삼문(三門), 선당(禪堂) 등 무로마치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화재를 면했고, 법당이면서 강당인 건물도 재건되어 1934년에 완성되었다. 옛날 지어진 고풍스럽고 장엄한 건물과 근대에 들어 지어진 건물이나 정원이 잘 조화되어 있는 도후쿠지는 임제종 도후쿠지파의 대본산으로 그 위용을 여전히 자랑하고 있다.

 

도후쿠지의 삼문. 삼문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준말이다. 현재 도후쿠지 삼문은 현존하는 선종 사찰 삼문 가운데 일본 최고(最古)이면서 최대의 문으로 국보로도 지정돼 있다.

칠당가람(七堂伽藍)
사찰 가람의 주요한 7가지 건축물을 칠당가람이라고 하는데 종파마다 건축물이 다르다. 선종 칠당가람은 삼문(三門)·법당(法堂)·방장(方丈)·고리(庫裏, 종무소)·선당(禪堂)·동사(東司, 해우소)·욕실(浴室) 등을 말한다. 여기서 도후쿠지 칠당가람 가운데 삼문부터 보고자 한다.

선종 사찰에서 불전 앞에 있는 문을 삼문이라고 한다. 삼문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준말이다. 현재 도후쿠지 삼문은 14세기에 누문이 소실된 후, 15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고 현존하는 선종 사찰 삼문 가운데 일본 최고(最古)이면서 최대의 문으로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다. 삼문 2층에 불단이 있고 석가여래와 16나한상(羅漢像) 등을 봉안하고 있다.

삼문 뒤에 위치하는 법당(불전)이 높이 26m, 정면이 41m, 측면이 30m로 장대한 목조 건축물이다. 20세기에 들어 재건된 건물이지만 고풍스럽고 기품도 있어 주변에 있는 무로마치시대에 지어진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법당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열반회라는 석가모니의 유덕을 칭찬하고 추모하는 법회이다. 매년 3월 14일에서 16일까지 사흘 동안 열리는 열반회 때는 화승 기쓰산(또는 기치잔) 민초(吉山明兆)가 그린 높이 15미터, 폭이 8미터의 대열반도가 공개된다. 석가모니의 입멸을 그린 열반도에는 많은 동물들이 모여 슬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도후쿠지의 대열반도에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열반도를 제작한 기쓰산 민초(吉山明兆, 1352-1431)는 도후쿠지를 소개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고 또 일본 회화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주변 사람이 그가 선승으로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원했지만 이것을 거절해 그는 승려로서는 평생 덴스(殿司)라는 불전을 관리하는 지위가 높지 않은 일을 했으며 조덴스(兆殿司)라는 별명이 있었다. 민초의 작풍이 북송이나 원나라의 불화를 토대로 기존의 회불사(繪佛師)나 화승의 회화에서 볼 수 없는 호방한 개성과 품격을 갖고 있는 것이며 일본 회화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원래 영향력이 있었던 도후쿠지 불화 공방이 민초 이후는 도후쿠지계 외의 사찰에서도 주문을 받게 되며 선종계 불화의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법당 뒤쪽은 방장이다. 방장이란 선종 사찰의 조실(祖室) 또는 주지가 거주하는 곳이고 나중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역할이 더 커졌다. 도후쿠지 방장은 1881년에 화재로 소실된 후, 1890년에 재건되었고 방장 정원은 유명한 정원 예술가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에 의하여 1939년에 완성된 것이다. 방장의 동서남북에 정원이 꾸며져 있고, 정원 이름은 석가모니의 팔상성도(八相成道)에 연유되는 팔상의 정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선종 사찰 방장 정원 중에서 방장 사방에 정원을 꾸민 것이 도후쿠지 방장 뿐이다. 방장에 들어갈 때는 방장 옆에 있는 종무소인 고리(庫裏)에서 입장료를 지불한다.

법당 서남쪽에 위치하는 선당은 무로마치 시대 초기 건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큰 선당이어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중요한 건물이다. 선당이 선승이 참선하는 중요한 곳이고 부처가 되는 승려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별명이 있다.

선당 남쪽에는 동사가 있다. 동사란 선종 사찰에서 변소를 가리키는 말이고 선당 옆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한다. 무로마치시대 전기에 지어진 동사도 현존하는 동사 가운데 최고이고 가장 크기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안내판에 의하면 당시 배설물이 귀중한 퇴비 비료로, 사찰의 수입원이 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못 들어가지만 밖에서 안을 보면 동그란 구덩이가 나란히 있는 것이 보인다.

삼문 동쪽에 동사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욕실이다. 욕실은 1459년에 지어진 것으로 1408년에 지어진 도다이지 욕실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다. 욕실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안내판에 의하면 이 욕실이 물이나 땔나무를 적게 사용하기 위해 따뜻한 물이 아니라 증기로 때를 없애려고 하는 친환경 사우나탕이었다고 한다. 동사나 욕실 훌륭한 건물을 보면 많은 선승들이 여기서 수행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도후쿠지 답사 안내
도후쿠지에 갈 때는 JR도후쿠지역 또는 게이한 도후쿠지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간다. 탑두 사원이 줄지어 있는 길을 걸어가면 와운교(臥雲橋)에 나오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통천교(通天橋)가 아름답다. 와운교를 통과한 후 왼쪽에 있는 일하문(日下門)에서 경내에 들어간다. 거기서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건물이 오른쪽에 있는 선당인데 먼저 삼문 쪽으로 가서 답사를 시작하는 것이 더 편하다.

경내에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지만 입장료가 필요한 곳도 있다. 그중 일년내내 관람할 수 있는 곳이 통천교와 개산당(開山堂), 그리고 방장이다. 열반회(3월 14일-16일) 때는 평소에 못 들어가는 법당과 삼문 2층에 들어갈 수 있다(법당은 무료, 삼문은 유료). 법당에서 대열반도는 물론이지만 천장에 그린 운룡도(雲龍圖)도 정말 볼 만하다.

도후쿠지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탑두 사원이 줄지어 있는 규모가 큰 선종 사찰이고, 단풍 명소라는 이미지가 있다. 한국 분들에게는 신안 해저 유물로 나온 ‘도후쿠지 공물(公物)’이라는 물표가 떠오를 것이다. 어떤 사찰인지 한 번 답사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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