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무량심이란?

菩薩於一切生等生悲心。然於惡行生倍生怜愍。譬如大富長者唯有一子愛念之心徹於骨髓。菩薩愛念一切중生亦復如是。如有惡子不欲父得勝己事者是名背恩。一切怨憎生於菩薩所同一味惡。菩薩於怨憎人生同一味悲心。世間生得報恩者生其歡喜。若菩薩於怨憎人所與其利樂。心生歡喜倍過於是。世間生若罵時他不還報便大歡喜。菩薩得他罵時心大歡喜。有愛心者於三界中悉皆普遍。菩薩悲心亦普遍三界。菩薩悲地獄生不如悲愛著三界愚癡生。生樂於己樂無量大苦之所繫縛。菩薩利他樂故無量大苦之所繫縛。一切生皆同一事。皆欲離苦得樂。與他利樂勝有。利向己者亦是悲因亦是喜因。利向他者見之生於悲喜。自己利所以生悲。見其得樂所以歡喜。四無量心者內心欲修緣。四攝法者生利樂名最勝。修四無量者能與世法及出世法。因世法出世法及四無量心都是同一境界。何以故。同一利益生。同得一無上菩提果故。悲者能利他。智者能捨。不生希有心。不生高下心。

번역|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평등한 자비심을 내며 악행 중생은 배나 불쌍히 여기는데, 비유하자면 큰 부자가 외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듯 보살이 일체 중생 사랑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데 나쁜 자식이 있어 아버지의 사업을 잇지 않을 것 같으면 은혜를 저버렸다 합니다. 일체의 원망과 미움은 중생이나 보살에게나 동일한 맛의 악이지만 보살은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동일한 맛의 자비심을 냅니다. 세상의 중생은 보은을 받으면 기뻐하지만 만약 보살이라면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며 마음에 즐거움을 내되 배나 더하며 세상의 중생이 만약 욕을 해도 되갚지 않고 크게 기뻐합니다. 보살은 남이 욕해도 마음에 크게 기뻐하나니 애착심이 삼계에 어디든지 보편적인데 보살의 자비심도 역시 삼계에 두루합니다. 보살의 자비는 지옥 중생의 슬픈 애착과 삼계의 어리석은 중생과 같지 않나니, 중생의 즐거움은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무량한 큰 고통에 얽매이고 보살은 이타심의 즐거움으로 무량한 고통에 얽매입니다. 일체 중생들이 한결같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바라지만 이타심의 즐거움이라야 수승하다 할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이익이 또한 슬픔의 원인도 기쁨의 원인도 되는데, 타인을 향한 이익은 자비의 기쁨이 생기며 자기만의 이익은 슬픔이 생기는데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내심 수행하려는 인연이며, 사섭법(四攝法)이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이니 가장 수승합니다. 사무량심을 닦는 이는 세간법으로 출세간법에 이르나니 세간법으로 출세간법과 사무량심에 이르는 원인이 모두 동일한 경계입니다. 왜냐하면, 동일하게 중생을 이익케 하며, 같이 위없는 보리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자비란 이타심이요, 지혜란 능히 버리는 것이니 특별하다는 마음도 내지 말고 높고 낮은 마음도 내지 마소서.

해설|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사범주(四梵主)라고도 하는데, 네 가지의 헤아릴 수 없는 이타심을 이르는 말이다. 네 가지 이타심이란 자비희사(慈悲喜捨)에서 자(慈)는 사랑하는 마음이자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며, 비(悲)란 슬퍼하는 이와 함게 슬퍼하는 마음이며, 희(喜)는 남에게 기쁨을 주려는 마음이며, 사(捨)란 자신의 애착을 버리면서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는 마음이다. 출가자나 속세의 이들이나 세속법의 이해관계 속에서 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출가자는 세속법에서 출세간법에 이르고, 거기서 사무량심을 내는 이들이다. 출가의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무량심이라는 수행의 인연을 짓고 사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거기서 보살과 중생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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