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기의 생명의 근본, 주인공을 진짜로 믿어야!

어린애가 젖병 하나 들고 그냥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고,

똥 누고 싶으면 똥 누고 그냥 그러듯이,

그걸 붙들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듯이 그렇게 사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즉 말하자면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 하나로 인해서 그 회사가 살 수 있는 겁니다. 요량 있게 잘하면 그 사람 하나로 인해서 다 살 수 있는 겁니다. 적자만 나던 회사가 그 사람 하나가 거기 들어가고 나서 흑자가 돼 버리니까 또 적자 나는 회사로 보내고, 또 거기서 흑자가 나니까 또 적자 나는 다른 회사로 보냈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물단지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하는 소립니다. 그러니까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게. 그래서 공법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지혜롭게 생각이 안 나더라도 이 공부를 그냥 열심히, 젖줄을 믿고 그것만 쥐고 ‘너만이 먹여 살릴 수가 있고 너만이 해결할 수가 있다.’ 하고 거기다 모든 걸, 일거수일투족을 다 놓을 때 비로소…. 우리가 악수하는 것만 봐도 알잖아요. 손 하나가 마음에 따라서 움죽거린다는 거를 알게 되면 보는 거, 듣는 거, 몸 움죽거리는 거 다 마음에 따라서 움죽거리는 것이라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심부름을 하되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에서 이렇게 공정하게 해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말로는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 겁니다. 실천을 보여 줄 수가 없어서 속은 다 빼놓고 이렇게 겉더껑이만 얘기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실천하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알게 돼 있는 거니까 난 지금 겉더껑이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손짓 발짓 해 가면서. 허허허…. 그러니까 그런 것도 산산조각 내서 따지지 말고, 1, 2등을 따지지 말고 그냥, ‘1, 2등을 하는 것도, 모두 포함해서 살리는 것도, 나의 밥줄을 떨어뜨리는 것도, 떨어뜨리지 않는 것도 너한테 달려 있어. 이게 흑자가 나야 살 테니까….’ 하고선 그냥 몰입을 해 들어가면 그건 누구든지, 생활 속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뭐 틀고 앉아서 누가 하래나요? 일할 때나, 변소에 갈 때나, 또는 길을 걸을 때나,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그대로 하기 때문에 와선이다, 입선이다, 행선이다, 또는 좌선이다 하는 게 따로 없다는 얘기죠. 그게 전부 참선이 되는 거니까요.

질문자2(남) 예, 잘 알았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저도 스님 친견을 많이 한 편에 속하는데요.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찾아오는 분들에 대해서 그릇만큼 대해 주신다고 그러시는데요. 제가 옆에서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그릇의 크기보다도, 어떤 그릇은 작은 데도 좀 이뻐하는 그릇이 있고, 어떤 그릇은 똑같은 그릇인데도 찬물을 담아 주시고 그러는 그릇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큰스님 그것은요, 댁의 마음이 이만 하다면 내 마음도 이만 하고, 똑같이 그렇습니다. ‘댁의 마음이 바다와 같다면 나도 바다와 같은 거다. 그러니까 이게 고정되게 있지 않다. 여러분의 마음에 따라서 크고 작은 거지, 누가 크게 해 주고 작게 해 주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떤 마음을 내느냐, 마음은 체가 없으니까…, 즉 말하자면, 사람 사는 상식으로 ‘이건 넘어 뛸 수가 없어.’ 하는 관습 있지 않습니까? 그 관습을 뛰어넘으라는 얘기죠. ‘관습은 없다’ 즉 말하자면 습도 없고 번뇌도 없다, 붙을 자리가 없다, 체가 없다, 그냥 점프해서 뛰어넘어도 그것은 뛰어넘는 사이가 없다고 하는 거죠. 현실로는 이렇게 계단이 딱딱 져서 있지만요. 계단을 올라오셨죠? 계단이 딱딱 있어서 딛고 올라와야 올라오죠? 그런데 체가 없는 마음은 계단을 점프해서 올라와도 올라오죠? 바다를 건너갈래도 바다를 건너가죠. 바다 속을 들여다보려 해도 들여다보죠, 은산철벽을 뚫고 나갈래도 뚫고 나가죠? 이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묘하고 광대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모든 것을 몰입을 해서 거기다 항상 같이 놔야 된다는 얘기죠. 놔서 그것이 완전히 보림이 됐을 때에 이 모든 중생들도 다 화해서 공생이 되는 거죠. 공생, 공체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공생(共生)·공심(共心)·공체(共體)·공용(共用)·공식(共食)이 되는 거예요, 전부.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마음으로 어디는 못 가겠어요? 가고 싶은 데 다 가지. 그런데 여러분이 그 이론은 알았는데 진짜 보면 보이질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여길 통해야 보이는데 여길 통하지 못하니까 못 보는 거 아닙니까? 이승 저승 볼 수 있고 멀고 가까움이 없이 볼 수 있는 것은 한군데밖엔 없어요. 그것도 도는 아니지만 도와 겸해서 이게 돌아가는 거니까요. 이것이 아니다 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할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오신통도 누진통으로 합해야 이게 도다, 이런 말이죠.

질문자2(남) 잘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건방진 얘기지만요, 스님의 일등 제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래요. 하려고 하기만 한다면 왜 못하겠소, 응? 어차피 탤런트들인데, 어차피 끝나서 막 내리면 그뿐인데, 그까짓 것 던져 버리지 그 뭐 때문에 그렇게 달랑달랑하우? 하하하….

 

질문자3(남) 안산에 사는 심륜회 회원입니다. 스님, 항상 우리와 같이 하나 되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스님, 지금 우리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경전을 읽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법문을 듣고 경전을 읽을 때 어떤 거사는 머리로 기억을 하려고 하고요, 어떤 거사는 귀로만 듣고 어떤 거사는 가슴으로, 그러니까 즉, 마음으로 공부를 합니다. 머리, 귀, 가슴, 어느 이름으로 공부해야 바른 공부가 될까, 질문 올립니다.

큰스님 그럼 육신의 하나라도 떨어져 나간 데가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기능이 하나만 없어져도 작용을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육식(六識)이라는 말을 하죠. 그것도 이름이지만 말입니다. 그거를 나는 공식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무지막지하게, 어린애가 젖병 하나 들고 그냥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고, 똥 누고 싶으면 똥 누고 그냥 그러듯이, 그걸 붙들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듯이 그렇게 사시란 말입니다. 아는 척하고 따지고 들면 오히려 이 무의 세계에는 근접도 해 보지 못합니다, 정신계에는. 우리가 아는 거는 나중이고 무의 세계부터 이렇게 둘이 아니게끔 통해야 거기에서 자기 자신의 주장자의, 즉 말하자면 스승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自) 스승.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아리송할 때 진짜 거기다 되묻고 되묻고 하다가도 자기가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때 나한테 물어라 이겁니다.

질문자3(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렇게 일일이 따지게 되면 언제 갑니까? 지금 갈 길이 바빠서 점프하랬잖아요. 갈 길이 바쁘니까, 그냥 한 계단 한 계단 밟을 수가 없으니까 그냥 점프해라 이거야, 그냥. ‘그냥 모든 걸 거기 놓고 들어가라, 그냥 밀고 들어가라, 물러서지 말라, 그냥 믿고 밀고 들어서라.’ 이런 소리죠. 그렇게 하는 사람 많아요.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하는 줄은 모르고 아주 여여하게 그냥 그렇게 하시고 있어요. 그런데 이름을 짓지 않았을 뿐이지 그대로 행을 하시고 계신 분이 많이 있습니다. 행 아닌 행을요.

 

사회자 법형제는 아니지만 스님들이 추천을 해서 금왕지원 학생회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나왔습니다. 아마 여름 수련회에서 느낀 게 많이 있어서 스님께 한번 여쭤 보려고 오늘 질문석에 나온 것 같습니다.

질문자4(여) 저는 금왕지원 학생회에 다니는 고3 학생입니다. 큰스님 뵙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구요. 여기 질문하러 오기 전까지는 되게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큰스님 뵙고 나서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 스님들께서 계속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묘법을 만났으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워 왔어요. 그런데 잠깐 제가 헷갈렸나 봅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 스님 뵙는 순간 그냥 ‘정말 나는 모든 걸 다 걸고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걸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막 들었어요.

요즘에는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깊게 잘 안되고, 제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가 막 이렇게 떠다니는 것 같고 생겨났다 없어졌다 그런 것도 많은데 그냥 그거를 보게 되고…,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고 뭐랄까, 너무 까마득하다 하는 그런 느낌도 많이 들고, 한순간 막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 오고 그런 거를 느끼거든요. 물론 계속 주인공에 관하면서 이렇게 공부해 가지만 큰스님께 가르침 받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큰스님 그런데 지금 걸음마도 걷지 못하고 자라는 애기가 젖병 하나만 들면 됐지…, 똥 누면 똥 치워 주겠다, 아니, 잠자리가 탁 있으니 그냥 잠자고 그러면 되지,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뭘 그렇게 말이 많아? 허허허…. 그러니까 무조건 믿어. 저 나무들이 무조건 자기 뿌리를 믿고 살고 있어. “너, 네 뿌리를 진짜로 믿고 사니?” 하고 저 나무들한테 가서 물어봐. 그렇게 “진짜로 믿고 사니?” 하고 묻는다면 묻는 자가 어리석어. 그렇지? 그냥 뿌리는 이미 달려서 벌써 싹이 나서 살고 있는데 “너 뿌리를 진짜 믿니?” 이러면 얼마나 우스운 얘기야, 그렇지? 그런 것과 같이 너도 이 세상에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너를 형성시켜서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세상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를 형성시킨 너부터 믿어야 될 거 아니야? 즉 말하자면 영원한 자기의 생명의 근본, 주인공을 진짜로 믿어 봐! 그걸 여러 가지로 이름을 부르는데 이름은 다 소용없어. 이름이 좋든 그르든 말이야. 그러니까 ‘주인공’ 하면 둘이 아닌 이 한 개체가, 몸뚱이가 살고 있는 걸 말해. 그런데 고정된 게 없이 살고 있거든, 모두.

질문자4(여) 그리고요, 여름 수련회를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공부를 참 많이 했어요. 스님들께도 말씀드렸는데 이 자리에서 또 말씀드리면, 산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담력 테스트 비슷한 그런 게 있었는데 저희 조가 길을 잘못 들어서 되게 오랫동안 산을 헤맸어요, 밤에. 9시 정도에 산에 올라갔는데 새벽 2시 정도에 산에서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때 비도 많이 오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잠깐 꿈꾼 것 같고, 그때도 무섭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정말 믿을 거라고는 주인공밖에 없었어요.

큰스님 잘했어. 정말 그렇게만 자꾸 해 나가면 일등 될 거야. 하하하….

질문자4(여) 그때, 정말 큰스님도 계속 찾고 주인공도 막 찾고 하면서 내려 왔는데 너무너무 고마웠고, 그리고 그게 정말 완벽하게, 이렇게 공부를 시키려고 모든 게 돌아간 것 같애요. 그래서….

큰스님 우린 처음부터 공부하고 가는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자기가 공부한다는 생각을 못 하고, 그냥 ‘우리는 진리를 참구하고 공부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못 하고 자꾸 배우러 어디로 쫓아다니고, 붙들려고 하고, 잡으려고 하고, 배우려고 하고 그러거든. 그런데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된다는 얘기야. 믿어야 되고 알아야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애를 쓸 때면 빈손, 즉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들이 다 가서 이렇게 붙들어 줘. 그 나무들이 전부 관세음보살이 되고, 그 나무들이 전부 보살들이 돼, 길잡이가 되고.

질문자4(여) 큰스님께 너무너무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래. 이 묘한 도리를 말로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나. 자기가 스스로 하면서 터득해 나가야지.

 

질문자5(남) 큰스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법형제 심우회 회원입니다. 제가 며칠 동안에 겪었던 기쁘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기뻤던 마음을 저 혼자 알기에는 정말 아쉬워서 저 밑에 신축 건물에 있다가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열흘 전에 큰스님을 친견하고 나서 위암과 폐암을 앓던 제 아버님께서 편안히 잘 가셨습니다.

큰스님 편히 앉아서 얘기해요.

질문자5(남) 네. 그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저희가 보다 못해 와서 스님을 뵀는데 그 다음 날부터는 저희 아버님께서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말씀하신 후에 6일 있다가 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래서 어제 삼우제를 지내고 왔는데 그 돌아가는 일들이 너무나 참, 고마운 일만 생겨 가지고 이렇게 감사의 말씀 전하러 올라왔어요.

그런데 겪었던 일들이 뭐냐 하면, 아버님의 암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 하루아침에 없어졌고, 장례식을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많이 오던 비가, 어저께 같은 경우도 11시에 삼우제를 지내기로 했는데 10시 한 40분까지 비가 왔었는데 장지에서 제사를 모시려고 시작하니까 비가 안 왔어요. 그리고 제사를 지내고 나서 식당에 가 있으니까 그때부터 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었고,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하고 제 동생이, 그 장지에 미리 가서 봤었는데 약간 산 밑쪽에 흙을 메꿨던 자리에 있는 묘소인 줄 알았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묘를 받으러 갔더니 임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제일 위에 있는 본토에 잡게 돼서 너무나 고마워서 이렇게 스님께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큰스님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몸이 크냐?” 그러니까 “큽니다.” “그래, 무슨 까닭에 크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가고 옴이 없이 모든 게 다 부처님 몸이기 때문에 큽니다. 그러니까 티끌 하나 가지고도 이 세상을 다 거기에 한데 집어 넣어서 한몸이니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티끌 하나에 다 집어 넣어도 손색이 없으니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나는 경전은 못 봤지만, 지금 내가 그냥 하는 소립니다. 우리 부처님이 얼마나 크냐고 한다면, 이렇게 크다 저렇게 크다, 말 못 할 지경이죠. 그렇듯이 댁의 그 모든 것을 보는 건, 하여튼 그건 비밀이니까 살아가면서 터득하세요. 왜 그렇게 됐는지, 왜 그러한지, 누가 악수를 해 줬는지, 누가 스쳐 갔는지 그런 거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누구나가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질문자5(남) 앞으로 더욱더 정진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회자 질문 다 끝났습니다.

큰스님 질문을 한 게 있소? (대중 웃음) 허허허…. 대답한 사람은 누구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가면서 마음공부 하는 것이 공부 같지도 않고 뭐, 헬렐레하게 생각되기도 할 거예요. 요건 요렇고 요건 요렇고, 요렇게 배우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이름을 가지고서 이렇게 해나아가야 공부하는 것 같죠? 그런데 우리는요, ‘사방이 다 터져서 밟을 계단이 없다. 마음은 체가 없는 거니까 강을 건너가려면 강을 건너가고, 또는 산을 넘으려면 산을 넘고, 또 손을 잡아 주려면 잡아 주고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하되,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나쁘고 좋은 거는 알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나쁘고 좋은 거를 알면 그 나쁜 것은 좀 제껴 놓고 좋은 생각으로 더불어 같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그 마음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버리지 말고 그것도 한데 넣어서 그냥 좀 탁탁 뛰어 봐라.’ 이거죠.

그러니까 한 발로 뛰어 봐라 이거예요. 아, ‘한 발로, 한 손가락으로 버텨서 하늘을 받칠 수도 있다.’고 그랬는데, 항상 여러분한테 ‘체는 공했다, 체는 고정됨이 없어서 항상 보고 듣는 것도 다 고정된 게 없고, 그러니까 바람처럼 날아간다. 우리 인생은 구름처럼 둥둥 떠서 가는 도중이다. 우리 구름이 스러져 버리면…,’ 하는 얘기나, 또, 막이 내리면 그뿐이라고 하는 탤런트 얘기, 뭐 별소리 다 해 가면서, 손짓 발짓 다 해 가면서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한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둘 아닌 일대사의 인연을 맺으셨다고 했습니다. 둘 아닌 일대사라면 전체를 말합니다. 요 벌레 한 마리라도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모습 아님이 없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리 아님이 없고, 내 삶 아님이 없고’ 이랬으니까 ‘과거 미래 현재도 없고, 그냥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우리가 둘이 아니다.’ 하는 이런 인연을 맺으셨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냥 무조건, 예를 들어서 나쁘게 사는 게 아니니까, 만약에 수백 명을 건질 수 있다면 그냥 점프해라 이거야. 그런데 용기가 없죠, 패기가 없죠, 관습이 많죠, 욕심이 있죠, 습관이 있죠. 그러니까 그냥 거기 말려서 뛰어나가려 해도 뛰어나갈 수가 없어요. 마음이 말입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쓰라고 마음이라고 그랬는데 마음대로 쓰지를 못해요, 마음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 집에 아침에 도둑이 들었는데 전부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친정에 와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런 공부하는 사람 같으면 항시 울타리를 쳐 놓고 산단 말입니다. 지금 시대가 좀 문제가 많으니까, 우선 만나면 죽지는 않겠지만 내가 놀라니까, 모두 그저 놀라지 않게, 무섭지 않게, 둘이 아니게 이렇게 울타리를 쳐 놓으면 들어올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미리미리 그렇게 마음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를 왜 그렇게 못하느냐 말이야.

지금 지구 대기권에서 이렇게 망이 쳐져 있는 거는 법망이란 말입니다, 법망! 우리 몸에도 법망이 있어요. 즉 말하자면 이 세포가 법망이죠. 이 법망이 없으면 온갖 곳에서 들어와서 이거 못 삽니다. 세균성도 들어오고 영계성도 들어오고 유전성도 들어오고 전부 끼어들어 가지고…. 그래서 법망이 있어서 잘 들어가지도 못 하게 하고 나가지도 못 하게 하지요. 이 속에서 만약에 양 개체가 대립해서 싸우면 이 집만 무너지게 돼 있어요. 집만 무너지고 그놈들도 다 죽게 돼 있죠. 그러면 똑같이 또 인연이 돼서 또, 또, 또 간단 말입니다. 뭘로 태어나든지 또 똑같이 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천 년이 갈는지 수천 년이 갈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이거를 다 벗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실천을 해서, 그저 알든지 모르든지, 내가 힘이 없다, 있다 이거를 논의하지 말고, 그저 모르는 머슴아이가 왜, 물 땅땅 치고 그냥 막 개구장이처럼 놀듯이 그냥 점프해서 올라가서 해결을 하고 이래라 이겁니다. 그게 뭘 내가 할 줄 모르고 알고가 없어요. 자불은 본래 있는 겁니다. 자신의 불성이 본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항상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여여한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만법을 들이고 내고 자유자재할 수 있다. 본래 불성이 있으니까 찾을 필요도 없다, 있는 것만 믿으면 된다. 저 나무가 자기 뿌리 있는 걸 믿고 그냥 살듯이,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움죽거릴 수가 없어요.

여러분도 답답한 심정이지만 나도 겉더껑이로만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심정을 알아주세요. 아까도 얘기하셨지만 여기 와서 만나고 간 뒤에 아버지가 그렇게 편안하게 행복하다고 하셨다는 그 뜻이, 그게 눈에 보이는 겁니까, 어디? 그러니 그걸 말로 할 수가 없죠. 내가 했다 네가 했다, 누가 했다 어떻게 했다, 이 이유를 댈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게. 그러니 이유를 댈 수 없는 나는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을 보면 답답하죠.

그러니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진실하게 가지세요. 살기 위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죽은 세상 산 세상을 왕래할 수도 있고 점프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계단을 밟아서 꼭 그냥 낑낑거리고 올라 오려고만 하지, 왜 그냥 뛸 줄은 모르느냐 이거죠. 어차피 체가 없는 나가 체가 있는 나를 형성시켜서 자기 집을 삼아서 이렇게 다니는데 왜 그걸 믿지 못하고, 주인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그럽니까?

그럼, 그만 내려가도 될까요?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8년 8월 2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 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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