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여름으로 충만한데 나는 그 푸르름 속에 엎드려 지낸다. 독서도 눈이 허락하는 대로 제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서 기쁜 것은 책에서 문학의 힘을 느낄 때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읽는 인간〉을 펼쳐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 작가의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가 아홉 살 때 만난 첫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는데 “정녕 제 인생은 그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라고 밝힌 점에서 나는 처음엔 놀라웠고 그다음은 반가웠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크는 노예를 密告 않으며
“난 지옥에 가겠다” 말한다

“지옥으로 가도 상관없으니
노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오에 겐자부로를 흔든 구절

겐자부로의 성찰, 나도 울려
독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
나에게 허크가 깃들길 바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백인 소년 허크와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이 수색대를 피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항해의 난관을 겪는 이야기다. 고난을 함께 하는 동안 허클베리는 종종 도움을 받은 짐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노예해방을 이룬 마을에 도달하면 짐은 그곳에서 자유로운 신분이었지만 아직 노예해방이 이뤄지지 않은 주에 들어가면 여전히 그는 노예였다. 허크는 짐의 주인인 노부인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이 마을에 당신의 재산인 짐이 있다. 현상금을 주면 당신의 재산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허크는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일에 가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 때문인데 그는 곧바로 편지를 찢어버리며 이렇게 다짐한다.

“난 이 생각을 버렸고 결코 반복하지 않을 거야. 이런 편지는 두 번 다시 쓰지 않겠어.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노 작가는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한 줄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선생님은 “얘들아 여태까지의 국가방침은 사라졌다. 이제 일본은 패했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방침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자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허크의 말을 나의 방침으로 삼자. 지금껏 이걸 원칙으로 살아온 듯합니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나는 갑자기 목안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오래 전 엘미러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마크 트웨인의 동상이 떠올랐다. 거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듯한 주름진 얼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작은 키에 그러나 호방한 기개가 느껴지는 모습으로 주머니에 양손을 찌른 채, 먼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손질했다는 팔각정 서재 안에서 나는 고달프기만 했던 그의 일생을 떠올리며 기념 책자와 엽서를 사들고 가슴에 안았다. 열두 살에 부친을 잃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던 어린 소년. 그는 뱃길 안내인으로 일하는 동안 키잡이들이 쓰는 전문 용어인 수심 두 길(12피트 깊이) ‘마크 트웨인’을 필명으로 삼았다. 12살 이후, 학력이 전무 했던 그의 이름이 대학 캠퍼스에 새겨지고 예일대와 미주리대 그리고 옥스퍼드대에서는 그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런 마크 트웨인이 오에 겐자부로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오늘 아침 또 나에게 웅변보다 더 큰 울림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독서는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변모시킨다. 문학의 힘이다. 장애인 아들을 보듬고 평생을 애쓰는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 그는 반전(反戰) 평화와 휴머니즘적 가치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에서 유달리 슬픔이 많았던 두 작가의 대비심(大悲心)의 연원을 짚어 본다. ‘눈물이 없는 자의 영혼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는 인디언들의 경구가 마침 생각난다. ‘그래 좋아! 난 지옥엘 가겠어.’ 이런 소년이 내 안에서도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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