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리심을 가져야 할 이유

欲與一切生無量大樂當發菩提之心。何以故。菩提心者。是一切生樂因。一切諸色不離四大。一切樂事不離菩提心。怪哉。云何?不畏生死之苦乃畏無畏菩提之心。若欲止息一切生苦者。無過發菩提之心。發菩提心者是初止息因。初止息得無上止息。得財寶利不如得功德利。得功德利不如得智慧利。得智慧利不如得菩提心利。若放逸廢忘不念菩提心者。如禽獸無異。汝今云何不發悲心。當知悲心者?是大菩提。欲趣向佛智應發菩提之心。結使所障者不能發解脫之心。業報障者不能發菩提之心。云何邪趣。云何正趣。有愛所牽以四空解脫者名邪趣。發菩提心修八正道名正趣。得富報者修行於施。得樂報者修行悲心。欲救濟安樂生者當堅發菩提之心。不修福者有三事難得。一者不得親近善友。二者不能悲心厭離。三者不能敬尙佛慧。未發菩提心者應當發心。若發菩提心者得一切種智。

번역|일체의 중생에게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려 한다면 응당 보리심을 발할지니, 왜냐하면, 보리심이란 일체중생을 즐겁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모든 색(色)이 사대(四大)를 떠날 수 없고, 일체의 즐거운 일도 보리심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상한 것은 어찌하여 그대는 생사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없음(無)과 보리심은 두려워합니까. 만약 일체 중생의 고통을 멈추려 하거든 발보리심보다 뛰어난 건 없습니다. 발보리심은 처음 원인을 그치게 하며, 처음 그쳐서 위없는 그침을 얻습니다. 재물을 얻는 이익이 공덕을 얻는 이익만 못하고, 공덕을 얻는 이익이 지혜를 얻는 이익만 못하며, 지혜 얻는 이익이 보리심 얻는 이익만 못하나니, 만약 제멋대로하고 포기하면 보리심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찌 자비심을 발하지 않는가요. 응당 알 것은 자비심이 곧 대보리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에 나아가고자 하면 응당 보리심을 발할지니, 묶여서 장애로우면 해탈의 마음을 발할 수 없고, 업보의 장애로도 보리심을 발할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삿된 데 나아간다고 하며, 무엇으로 바른 데 나아간다고 합니까. 애착에 이끌리며 사공(四空)으로써 해탈이라 하는 이를 삿된 데 나아간다고 하며, 발보리심으로 팔정도를 닦는 이를 바른 데 나아간다고 합니다. 부유한 과보를 얻고자 하면 보시를 수행하고, 즐거운 과보를 얻고자 하면 자비심을 수행해야 하며, 중생을 구재하여 안락하게 하고자 하는 이는 응단 발보리심을 굳건히 합니다. 복을 닦지 않고는 삼사(三事)를 얻기 어렵나니, 첫째 착한 친구를 가까이 얻지 못하며, 둘째, 자비심으로 버리지 못하며, 셋째 부처님의 지혜를 우러러 공경하지 못합니다. 보리심을 발하지 못한 이는 응당 발심할지니, 만약 보리심을 말한 이는 일체의 종지를 얻게 됩니다.

해설|무색계(無色界)의 네 곳을 사공처(四空處)라 하고, 무색계의 네 곳 하늘세계를 사공천(四空天)이라 하며, 이 무색계인 현상을 여읜 세계관을 선정으로 삼는 수행을 사공정(四空定)이라 한다. 그런데,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기를 바라며 이것을 해탈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애착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겠는가. 남들에게는 보시를 설파하면서 뒷구멍으로 재물욕심 채우기에 급급하다면 어떻겠는가. 불교지식은 있을지라도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와 해탈을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염불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경전은 속임수의 삿된 지식일 것이다. 입으로는 〈금강경〉의 무상(無相)을 말할지라도 속으로는 무상함을 두려워하고, 보시를 말할지라도 발보리심을 두려워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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