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마음이 일체제불의 마음과 일치가 돼 있습니다

아래위로 평등하게 공법을 써서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데에 역점을 둔 부처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 마음의 선장의 그 뜻과 똑같습니다.

여러분! 더운데도 이렇게 왕림해 주셔서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새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상하게도 그 한마디의 에너지를 같이하면서 행하는 도리에 마음을 두시고 더운데도 불구하고 오신 걸 생각할 때, 부처님들께서 고행하시면서 공부하신 그 진리를 여러분이 실천하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하여튼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반드시 진실하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제불의 한마음이 내 마음을 통해서 내 입을 빌려서 여러분한테 말씀을 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육신 자체, 나라는 사람이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는 걸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위로는 모든 물에 비친 달을 그물에 담아서 한 줄에 쥐고, 아래로는 바다의 모든 생물을 그물에 담아서 한 손에 쥐고 여러분에게 같이 응해서 나투는 도리이기 때문에 그냥 쉽사리 생각해서 넘길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신계의 이 모두를 물질계로 연결시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물질계로만 치닫고 마음이 방황하다가는 정신계에 통신이 되질 않기 때문에 끄달리는 게 많고 걸리는 게 많고 애고에서, 병고에서, 영계성에서, 유전성에서, 인과성에서 모두 헤어나질 못하고 쩔쩔매고 돌아가게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모두 듣고 관찰하고 상세히 알아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발전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갈수록 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육바라밀’이라고 한다면 ‘무주상’이 나오죠. 무주상이라는 그 자체가 한마디의 말이지만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등공법에 의한 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주상 공덕행’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천차만별 가지각색으로 수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는 바다로 비유한다면 바닷물 자체, 그 테두리 자체를 바로 평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무주상’이라는 것은 바다의 물이 그냥 그대로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주는 그 자체의 테두리란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에너지, 즉 일체 모든 사무 사유의 에너지를 전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에서 한생각 낸다 하는 것은 보살의 경륜으로서, 즉 한마음의 무심, 무심주 공덕행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이 마음을 안 내면 그냥 그 테두리의 에너지이고 마음을 낸다면 그 에너지를 쓸 수 있게끔 내려서 쓰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생활입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부처요, 생각을 냈을 때는 법신이요, 몸을 움죽거렸을 때는 화신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응용하면서 생활하고 가는 데 그 세 가지 이름이 붙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 이름이 붙어도 그대로 한 사람일 뿐입니다. 한 사람이 가정을 이끌어 가고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주상 공덕행은 그렇게 어마어마하고 광대무변하고 그렇게 큰데도 하나로 돌아가는 그런 이치에서 큰 덩어리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다면 또 무심주 공덕행, 이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가 정신계와 물질계를 둘 아니게 쓰는 것을 무심이라고 그럽니다. 물질계로만 치닫거나 정신계로만 치달으면 한 다리 없는 병신, 한 눈 없는 애꾸, 한 귀 없는 귀머거리라 이 소립니다. 그래서 물질계와 정신계 양면을 다 가지고 우리가 생활을 해야만이 법행을 그대로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심주 공덕행은 그 큰 덩어리의 에너지를 끌어 쓰는, 즉 말하자면 병이 들었으면 약사로 화해서 그 에너지를 끌어 내려서 병자를 낫게 할 수 있는 보살행입니다. 병에도 그렇지만 각각의 종류를 다 용도에 따라서 화해서 나투는 겁니다. 지금 현 세상에서 의학을 배운 의사는 병자만 고치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분야든지 다 행하는 보살의 행입니다. 즉 말하자면 의학이라든가 천체물리학이라든가, 철학이라든가 천문학이라든가, 과학이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전체 분야를 한 손에, 한 줄에 쥐고서 용도에 따라서 다 무심행을 하는, 그 도리를 행하는 공덕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행을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을 내서 종류별로 화하는 보살입니다.

그래서 병자가 오면 약사가 돼 주고…, 약사가 돼 주는 데는 그 위에서 에너지를 끌어 내려서 약사가 돼야 되겠죠. 에너지가 없으면 약사의 심부름을 못하니까 위로는 에너지를 끌어 내리고 아래로는 바로 중생의 손을 잡고 이렇게 하는 공덕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자가 오면 어떠한 병을 막론하고, 즉 말하자면 속에서 일어나는 병 증세는 항상 과거로부터 온 것인데, 그대로 과거로 찰나에 들면서 무명을 벗겨 주는 겁니다. 인과, 유전성, 영계성을, 과거에 있는 걸 모두 지워 주기 때문에 이 현실의 병이 낫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병을 낫게 하면 바로 약사가 된 것입니다. 보살이 바로 약사로 화해서 응해 주고 그렇게 나투었다가 또 가난한 사람이 왔을 때는 관세음이 되는 겁니다. 또 명이 짧은 사람이 왔을 때는 바로 칠성 부처님으로 화하는 겁니다. 그게 모든 분야를 쥐고 있으니까요. 이걸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바로 모든 분야를 쥔 보살은 여러분이 오면 오는 대로 그렇게 대치해 내는 겁니다. 어떤 분야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모든 분야를 다 쥐고 있기 때문에 천차만별로, 여러분이 용도에 따라서 가지각색의 문제를 가지고 오더라도 늠름하고 여여하게 그 보살들은 대치해 내는 겁니다. 모든 분야를 쥐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데로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장으로 화해서 나투어 주고 하는 무진장보살입니다. 무진장보살은 무심 공덕행으로써 여러분을 대하기 때문에 위로는 에너지의 줄을 잡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의 줄을 잡고 이렇게 해 나갑니다. 그리고 공덕법행은 바로 무주상에 한데 붙어서 돌아가는 겁니다.

몸을 가지고 공부하는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둘로 보지 않고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다를지언정 어찌 마음이야, 생명이야 둘이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셔야겠죠? 모습은 다를지언정 어찌 생명이야 둘이겠느냐.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곤충이라도 밟으면 꿈틀하고 아파서 애쓰고,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람보다 아주 낮은 동물이더라도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음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물에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고, 불에도 마음이 있고 생명이 있고, 바람에도 있고 공기에도 있고 어느 곳이든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대무변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유생 무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나 보이는 생명들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거를 넓게만 보지 말고 좁혀서 내 한 몸을 봐 보세요. 내 몸 하나를 본다면 내 몸 하나에 그 만 중생들이, 여러분이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이 세상에 출현했던 그 가지각색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이 모습으로 태어나고 저 모습으로 태어나고 이렇게 화해서 나투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말입니다. 지금 이 육신 속을 보면 둥글고 한일자처럼 길고 삼각형이고, 이렇게 모두 모형이 다르고 생김도 다르지만 생명은 하나입니다. 생명은 하나! 생명은 하나로 전체가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있는 그 생명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우주 전체를 한번 보시고 생명체들이 잔뜩 들어 있는 이 몸뚱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까 얘기했듯이 이 몸뚱이 속에서도 위로는 우주와 직결이 돼 있는데, 그 뜻은 전체 우주의 에너지와 전체 공덕법행과 모든 무심 도리에 행하게 되는 그 어마어마하고 광대무변한 법의 에너지를 바로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마음의 선장이 쥐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나쁘고 좋고 이런 걸 잘 압니다. 왜? 수억겁 광년을 거쳐 나오면서 화해서 진화되고 돌아왔으니까요. 자꾸자꾸 다른 모습으로 진화를 시키면서 이날까지, 사람까지 올려 세운 거거든요. 그러니까 바로 마음의 선장은 이름이고, 그 선장이 돌아가면서 움죽거리고 행하는 것은 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이런 겁니다.

주인공은 수억겁 광년을 거쳐 왔기 때문에 그 모두를 알고 있고 한 찰나라는 거를 알고 있지만 여러분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 의식들은 나쁘고 좋고 이런 거를 도저히 모릅니다. 애꾸눈, 한 다리 병신, 귀머거리입니다. 그러나 의식으로, 감각으로 인해서 그냥 자기가,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이 된 것처럼 입력이 돼서 현실에 그대로 그 의식들이 지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들께서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현실은 모두 공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한 자체 이 몸뚱이 속에서…. 여러분, 그냥 지나치듯 들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실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있는 말을 하는 거지 없는 말을 끄집어내서 여러분한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이 몸뚱이 속에서 의식들이 감각을 통해서 좋고 나쁜 거를 모르고 그냥 나오는데, 여러분은 거기에 속지 말고 마음의 선장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는 겁니다. 그렇게 나오는 그 의식들은 악업 선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좋게도 나올 수 있지만 언짢게도 나옵니다. 애고의 문제, 병고의 문제, 유전성의 문제, 영계성의 문제, 인과성의 문제, 업보성의 문제, 이 모든 문제를 다 안고 있는 의식들입니다. 그런 의식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나오는 거를 우리가 대비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오는 모든 것에 속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는 거를 마음의 선장 주인공에다가 모두 맡기라는 겁니다. 그 마음의 선장은 안의 모든 중생, 자생중생들을 제도하고 다스리니까 모든 걸 거기다가 맡겨라 이 소립니다. 이렇게 해도 못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대중 예!

큰스님 한마디 더 하겠는데, 몸속에 들어 있는 악업 선업의 의식들이 어디로부터 오느냐? 과거에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그 한도 내에서 인연이 돼서 바로 내 몸이 생성됩니다. 즉 말하자면 자기 마음의 주인이, 그걸 영혼의 뿌리라고 합니다. 나를 형성시키는 데는 바로 여자 남자의 정자 난자가 있어야만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의 뿌리가 정자 난자를 빌려서 영혼과 더불어 삼합이 한데 합쳐서 이 세상에 출현을 하게 되는데,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업식이 인연에 따라서 모두 몸뚱이 속에 주둔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하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 속에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없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몸뚱이 속의 자생중생들이 눈 애꾸고 다리병신이고 귀머거리고 그렇지만 네 마음의 근본은 바로 부처니라.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근본과 자생중생들이 도반이 돼서 같이 있는데, 그 마음의 선장이 다스리지 않는다면 자생중생의 항복을 받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자기한테, 과거에 살던 자기한테 현실에 사는 내가 자꾸 코치를 하는 겁니다. ‘이 중생들을, 과거에 인연 됐던 중생들을 당신만이 다 이끌어 줄 수 있고 바로 깨닫게 할 수 있고 하나로 돌아가게 할 수 있고, 모든 게 한마음이 돼서 조금도 어김없이 발전하고 대치하게끔 당신만이 할 수 있다. 당신 몸을 당신만이 건강하게 이끌어 갈 수 있고, 또 당신이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도 있다. 모든 걸 당신이 알아서 할 수 있는 거니까.’ 하고 대치를 해서 놓는 겁니다. 즉 선장을 세워 놓는 겁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중심을 세워 놓듯이 그 마음의 선장을 세워 놓고, 현실의 자기가 과거의 자기를 세워 놓고선 자생중생들, 그 업식, 악업 선업들을 다 거기에다 챙겨서 다스려서 둘 아니게 함으로써 밝은 참자기가 튀어나옵니다. 현실의 자기와 과거의 자기가 둘 아니게 바로 상봉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속세에 살면서 이렇게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변천하고 변천하면서 좀 더 발전해야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모든 사람을 둘 아니게 이끌어 가고 둘 아니게 행할 수 있고,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고 또는 모든 부족함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살림살이 해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주 섭류에 있어서도 모자라는 걸 채울 수 있고, 잘하는 건 덜어서 모자라는 데다가 채울 수 있고,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다 이 세상의 주인이 돼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요 내 몸 하나 끌고 가기도 힘들어서야 어찌 전체를 이끌고 갈 수 있는 그 줄을 잡겠습니까?

그러니 팔만대장경이 다른 게 팔만대장경이 아닙니다. 천지를 삼키고 이 세상을 삼켜서 그 줄을 잡고서 각양각색, 유의 세계 무의 세계 모든 생명들을 다 이끌어 가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이 일체제불의 마음과 일치가 돼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선장이 즉 부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생명들의 의식은 바로 중생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생들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의 선장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실에 사는 여러분의 마음은 바로 참자기의 마음의 선장에게 모든 걸 일임시키고 마음을 굴려 가면서, 예를 들어서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구정물은 바로 맑은 물로 대치해서 생수로 쓰세요. 이거 보십시오. 바다와 같이 큰 마음은 빗물, 똥물, 핏물, 고름물 어떠한 물이든 모든 각종의 그 더러운 물을 다, 바다로 들어오는 것마다 맑은 물로 만듭니다. 그거를 배척하는 게 아니고 버리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서, 오는 것 막지 않고 가는 것 잡지 않고 오는 대로 그냥 받아들이면서 가라앉혀서 씁니다. 그런데 가라앉는 거는 버리는 거냐. 그것도 버리는 게 아닙니다. 모든 생명의 에너지가 되는 겁니다.

아래위로 평등하게 공법을 써서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데에 역점을 둔 부처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 마음의 선장의 그 뜻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뜻은 높고 내 뜻은 낮다는 생각도 말고, 낮다 높다 이런 걸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한마음의 주인공을 잡고, 마음의 선장 주인공을 잡고 ‘모든 것은 너만이 이끌어 갈 수 있고 너만이 위에서 에너지를 끌어당겨서 베풀어 줄 수 있고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모든 것을 맡겨서 굴려서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법행입니다, 공덕법행!

말을 하다 보니까 동으로 가는지 서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허허허…,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팥죽은 팥죽 그릇 한 그릇에 담겨 있는 거니까요. 팥죽 방울이 수효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팥죽 솥에 있는 팥죽 방울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각종 문제에 대해서 ‘이게 옳고 저게 옳다’ 아무리 탓을 해도 바로 우리는 이 지구의, 지구가 만약에 팥죽 솥이라면 팥죽 솥에 있는 팥죽 방울입니다. 그런데 그 팥죽 방울이 말입니다, 이렇게 지구의 팥죽 방울이 돼서 지구라는 팥죽 솥이 어디로 지금 돌아다니는지 그것조차도 모릅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옳으니 내가 잘났느니 아만 아상을 가지고, 그저 굴러가는 돌인데도…, 돌도 내 스승인 줄을 모릅니다. 일체 만물만생을 다 내 스승으로 봐야 되겠죠.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거를, 기쁜 것도 보고 좀 궂은 것도 보고 나쁜 것도 보고 좋은 것도 보니까 좋은 거를 가려낼 수 있는 거지, 나쁜 게 안 보이고 좋은 것만 보였다면 진짜 좋은 거를 가려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서부터 열까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내 스승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나고 내가 혼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안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는 바로 집합소라고 내가 항상 말을 하죠. 이 몸뚱이는 집합소입니다. 생명들이 살고 있는 집합소! 그 집합소 안에서 ‘나 뭐 좀 다오.’ 그러면 심부름해야 돼요. 목마르다고 하면 여러분이 그냥 물 갖다가 대령해야 돼요. 안 그렇습니까? 또 배고프다고 하면 밥 먹여야지, ‘맛있는 것 좀 다오.’ 그러면 맛있는 것 줘야지, 덥다고 그러면 부채질해 줘야지, 안에서 화기가 치밀면 부채질해 줘야 하고 시원하게 해 줘야지, 자고 싶다고 하면 재워 줘야지. 이게 심부름꾼 아니고 뭡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만약에 나가서 떼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관리인 혼자 번 게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 있는 생명들이 몸뚱이 속에서 움죽거려 주지 않는다면 몸뚱이 관리인은 죽습니다. 돈을 벌긴 뭘 법니까? 한쪽만 움죽거려 주지 않아도, 작용을 안 해 줘도 그냥 기울어져서 쓰러지는데 무슨 돈을 법니까? 그런데도 자기 혼자 벌었다는 겁니다, 네? 자기 혼자 벌었대요. 그리고 자기 혼자 먹었대요. 그리고 자기 혼자 똥 누었다고 그러고 자기 혼자…, 이거는 뭐든지 자기가 혼자 했대요. 그러니 아만이 높고 내가 있다는 아상이 그냥 제멋대로 생기고 이러는 거죠.

그러니 내 몸뚱이도 내 몸뚱이가 아니라 ‘너희들의 몸뚱이’입니다. 너희들의 몸뚱이요 바로…, 내가 이런 말 하는 걸 잘 들으세요. 공생이면서 공심이면서 공체면서 공용이면서 공식화하고 있다. 여러분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은가? 공식하고 있죠? 그런데 내가 혼자 먹었어요? 혼자 벌 수도 없는데. 그러니까 위로는 먹고 아래로는 싸고 하는 것이 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공용입니다. 공심으로 공용을 하고 지금 공식하고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우주 덩어리라고 볼 수도 있죠. 조그마한 별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도리를 안다면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찰나찰나 나투면서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며, 전부 직결된 도리를 알고 전부 같이 돌아가는 도리를 알고 모든 걸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부처님의 뜻을 여러분한테 지금 현실의 용어로 현실에 알아들을 수 있게끔 얘기해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목탁이나 치고 염불이나 하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지 마세요. 불교라는 건 이 세상 어느 분야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우리가 한 평등공법에 의해서 무의 세계 유의 세계가 같이 돌아가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 진리의 이름이 불교예요.

여러분! 우리 몸뚱이 속에도 여러분이 한생각 내면 바로 소뇌와 대뇌가 한데 합쳐서 중뇌로 들어서 중뇌에서 책정을 해 가지고 통신이 되면 바로 사대로 통신이 되는 겁니다. 사대로 통신이 돼서, 우리가 같이 한마음으로 통신이 돼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바깥에서도 또 마음과 마음이 같이 이어서 돌아가고, 전달이 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무와 저 나무도 둘이 사랑을 하면서 전달을 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겁니다. 사람도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되기 때문에 통해서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생산을 해내는 겁니다. 우주의 섭류가 다 그러하거늘…. 모든 게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되고 통신이 돼서 돌아가는 그 자체, 무의 세계 유의 세계가 같이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입니다, 교! 교화하는 교! 그렇기 때문에 불(佛)이라는 것은, 일체 우주의 근본 자체와 더불어 이 세상 돌아가는 이 돌 하나의 생명도 바로 불입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돌아가는 건 바로 불바퀴에 속합니다. 그래서 각색 각종의 불바퀴는 그대로 여여하게 우리에게 연결되면서 바로 직결돼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먼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외성도 먼 데 있는 게 아닙니다. 또 여러분이 멀게 생각하면 먼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마음의 선장하고 현실의 당신네들하고 통할 수 있는가, 진짜로 믿고 진짜로 거기에 일임해서 통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연결되는 걸 알고, 직결되는 걸 알고, 직결돼서 돌아가는 걸 알고, 위에서 에너지를 끌어 내려서 쓸 수 있는 도리를 알고 바로 밑으로는 모두 제도할 수 있는 자유자재권을 얻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4년 7월 17일 광명선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