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교류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하이웨이 여정 중 만난 훈자 왕국 발타트성의 원경.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중간중간에는 오래 전 불교 교류사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참으로 많고도 많은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동양과 서양을 이어 준 실크로드, 이 길 또한 여러 갈래가 있다. 동서문화 교류의 길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거기서 인류 문명의 싹은 꽃을 피웠다. 그래서 호기심이란 말은 소중하다. 그 호기심은 많고도 많은 길을 뚫게 했다.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걷는다. 길이 있어 의욕이 샘솟게도 한다. 그래서 길은 삶의 한 화두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참으로 많고도 많은 길을 걸었다. 고대 동서 문화를 이어주던 실크로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죽의 장막’이라던 ‘중공’을 3개월간 취재여행을 실행한 이래, 오지 여행은 한때 ‘직업’이었다. 지그재그의 중국대륙 답사, 여기서 인생 행로가 바뀌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오지는 훌륭한 교과서였다.

그래서 인간을 두 가지 부류로 양분한다면, 오지체험의 유경험자와 무경험자로 나누곤 했다. 더 정확히 말해 사막체험의 유무로 사람을 나누기도 했다. 사막은 고귀한 자양분이었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듯, 사막에 석굴사원이 꽃을 피웠다. 이 무슨 역설인가.

이름하여 실크로드. 사실 실크로드는 말만 그럴듯하지 ‘고통(Sick)’의 길이요, ‘사색(Think)’의 길이다. 비단(Silk) 길만은 아니다. 고통 없는 열매는 없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다. 흔들려야 꽃을 피운다. 실크로드 오지의 답사 코스에서 단 한군데만 추천하라면, 나는 이곳을 추천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실크로드 오지에 웬 하이웨이? 여기서 하이웨이는 하나의 역설적 표현이다.

얼마나 험한 길이면 이 같은 표현법이 생겼을까. 아무튼 나는 지구상의 최고 여행지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추천했다. 최소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요새는 관광지로 재미를 반감했지만, 그래도 ‘순정’은 지니고 있다. 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지구상의 마지막(?) 코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어디인가.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는 중국의 카쉬카르에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 연결되는 길 이름이다. 중국 발음으로 카라쿤룬궁루(喀喇崑崙公路)이다. 지난 1959년부터 본격 공사를 시작하여 20년의 기간 동안 약 24,000명의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뚫은 800km의 길이다. 그러니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국경선을 가지고 있는 고산지대이다.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인 쿤제랍 패스의 해발 높이는 4,693m! 정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국경선이다.

그래서 어느 어간을 지날 때, 이런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 그 길은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실크로드’였다.

훈자 왕국의 발티트성 전경.

고산지대의 길. 그래서 이 ‘하이웨이’ 일대는 히말라야 산맥 북단을 비롯 힌두쿠시 산맥, 곤륜산맥, 카라코람 산맥 등을 아우르고 있다. 해발 8천m대 고산만 해도 5개를 포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 K2는 해발 8,611m의 높이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더불어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은 해발 8,125m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이다. 카라코람의 절경을 짐작하게 하는 풍광이다. 더불어 이 말은 세계에서 가장 험한 길임을 짐작하게 한다.

최고 수준의 험로(險路), 정말 목숨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건너가게도 한다. 사실 산허리의 좁고도 구불구불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려면, 그것도 수십 길 낭떠러지 계곡을 바라보면서 지나가려면, 머리카락이 치솟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이 험로의 묘미이기도 하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재미는 절경에 있다. 고산은 으레 만년설을 보여준다. 근래는 지구의 온난화 덕분에 만년설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내가 처음 이 길을 갔을 때와 오늘의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다. 현지가 지나치게 관광지화 되어 복잡하게 된 것도 문제지만 자연환경도 많이 변했다. 

아무튼 ‘하이웨이’에 카라쿨 호수 같은 곳이 있고, 또 발토르 빙하 같은 세계적 빙하 지대도 있다. 파수 빙하는 직접 걸을 수 있어 ‘빙하’를 안아 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지구상 최고의 절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무슨 복이 많아 이곳을 대여섯 차례 여행할 수 있었을까. 

다만 고산지대여서 여름에 통과해야 실감할 수 있다. 겨울에는 폭설로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5월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길을 열어준다.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절경만이어서 나의 발걸음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동서문화 교류의 길이었고, 또 붓다 로드였기 때문이다. 인도불교는 이 길을 따라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또 그 길은 한반도로 연장되었다. 그래서 많고도 많은 구법승들이 이 길을 걸어 왕래했다. 정말 목숨을 내걸고 다닌 길 아닌 길이었다.

오늘의 파키스탄 북부인 간다라에서 출발하면,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와 라왈핀디를 거쳐 인더스 강 상류로 북상하게 된다. 그러면 베샴 그리고 칠라스에 도달한다. 칠라스는 불교 암각화로 유명한 지역이다. 여기를 지나 낭가파르밧 고산의 북면을 조망할 수 있다. 훼리메도우(3,306m)에 가면 낭가파르밧 전망대 같아 만년설을 음미할 수 있다.

이어 훈자 마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이 아닌가. 이 협곡과 같은 고산 마을에서 스케줄 없이 며칠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절경!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훈자. 이 일대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다. 고선지는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중국의 국토를 확장시킨 명장이었다. 사마르칸트에 가면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훈자에서 위로, 위로 올라가면, 마침 국경선의 쿤제랍 고개에 이르러 중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파밀 고원이 있고, 타슈쿠르칸 그리고 내리막길, 바로 카쉬카르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서쪽 도시이다.

세상에 이렇듯 험한 길이 있을까. 만년설을 넘어, 고원과 협곡을 넘어, 몇 달씩 걸어갔던 길. 먼저 걸어갔던 선구자들의 해골을 보고 이정표를 삼아야 했던 길. 험로, 이 험로는 문화를 주고받으면서, 실크로드가 되었다. 불법을 전달해 준 다르마 로드이기도 했다. 바로 깨달음의 길이었다. 사이사이의 요지에 마애불 등 불교유적이 남아 있다. 다만 현재 파키스탄이나 중국의 타클라마칸 일대는 이슬람 문화권으로 바뀌었다. 불교의 나라에서 이슬람의 나라로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슬람 지역에 간다라 문화의 자취가 있고, 갖가지 불교 유적이 남아 있다. 탁실라의 조울리안(Jaulian) 유적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는 폐허이다. 무너진 탑상의 자취만 남아 있다. 크게는 탑원과 승원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건축은 기원후 1세기 혹은 3세기 언저리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에 여러 층을 두어 각층마다 감실처럼 구획을 두어 불상을 새겨 넣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모습이다. 무너지다 남아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폐허의 조울리안에서 불상을 만난다. 당당하고 섬세한 솜씨, 하지만 불두가 없다. 하필이면 이렇게 파괴되었을까. 머리 없는 불상들, 선정인에 든 좌불, 하지만 머리가 없다. 역설적으로 상징성이 강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도열해 있는 여래상 부조, 몸에 상처가 많다. 상처 입은 불상, 이 또한 상징성을 안겨준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이다. 그렇다고 방문객이 많은 곳도 아니다. 이름 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길목에서 조울리안 불적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느낄 수 있어 풍요로운 조형감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폐허, 폐허는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 온다.

조울리안 사원의 불교 유적. 이제는 폐허가 됐다.

절경을 음미하면서 북상하면 칠라스에 도달한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 칠라스 강가에 가면 아슬아슬한 현수교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 산자락 곁으로 가면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검은 바위에 꽉 차게 새긴 불상들. 섬세한 선각(線刻)으로 입상과 좌상의 여래를 새겼다. 단아하면서도 기품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비례감각은 물론 쪼으기 기법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형상성, 노천 미술관임을 확인하게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보관관리의 측면에서 무방비 상태라는 것.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다. 이방인들은 바위를 마음대로 밟고 다니면서 암각화를 훼손시킬 수도 있겠다. 무방비의 방치상태는 안타깝게 한다. 칠라스 암각화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확인하게 하는 과외의 안복과 같다. 섬려한 조형성 때문에 특히 그렇다. 아니, 험한 길, 그것도 물살이 센 강가의 바위산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칠라스 암각화!

카라코람 하이웨이. 지구상에 둘도 없을 험한 길. 그런 험한 길을 왜 가느냐고? 어차피 인생은 고해라 했다. 가시밭길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 그런 일시적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고통을 무릅쓴다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고대의 선구자들이 목숨을 내놓고 걸었던 험로, 그곳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절경이 있고, 또 역사의 흔적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읽을 성찰의 길도 열려 있다. 그래서 고통을 자청하게 된다. 그래도 그렇지,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나에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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