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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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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박원자 작가의 ‘인생을 바꾼 108배’
지금의 확실한 변화, 절수행서 시작불안·좌절의 극복수단

젊은 날, 수덕사 방장스님의 108배

요즘 108배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누구를 만나든 ‘혹시 108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님들을 만날 땐 더 그렇다. 지난 주 남편과 수덕사에 갔다가 방장 설정 스님을 뵈었다. 지난해 스님과 대담을 나눈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저로 낸 터라 본의 아니게 스님의 삶을 꿰뚫고(?) 있었다. 스님이 살아오면서 절을 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여쭈어 보았다. 당장 ‘무슨 소리를?’ 하는 표정으로 108배로 젊음의 혈기를 다스렸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설정 스님, 서울대서 108배

박찬호도 화계사서 수행정진

108배로 승리 압박감 떨쳐

스님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열네 살에 동진 출가했다. 그리고 20대 중반, 군대에 다녀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시험을 치렀다. 원하는 대학에 시험을 쳤다가 첫해에 고배를 마셨다.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자 참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무능함을 비관해 위험한 생각까지도 했던 스님은 무전여행을 하면서 각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심기일전, 다시 도전해 다음해 서울대에 들어갔다. 청춘들이 모인 대학은 스스로 마음을 고르고 경계하지 않으면 출가자로서의 선을 벗어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 진실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스님이 그때 택한 것은 108배였다.

해인사 강원생이던 시절, 아침마다 매일 108배를 하던 지관 스님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지관스님은 불교학자이자 금석문의 대가로 동국대 총장,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분이다. 당시 해인사 강사로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자신이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철저히 실천하면서 한치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던 지관 스님을 존경했던 스님은 삶에 경건함이 필요한 시점에서 108배를 시작했다. 스님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했다. 젊은 날의 그 경건한 의식은 두말할 것도 없이 쉽고 편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스님의 철학을 지키게 한 굳건한 힘이 되었다.

 

박찬호 선수와 108배

인기 남성 그룹 빅뱅의 탑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가수로서의 추락은 물론 군대에 재입대할 위기에 처해 있다.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인기를 구가하며 젊은 나이에 명예와 부를 가지고 있던 그를 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했던 터라 더 충격이 컸다. 더욱이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들에겐 로망이었을 그가 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마초에 손을 댔을까. 언젠가는 인기의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남의 시선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에 따른 공허함과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그의 기사를 다루어 온 국민은 물론 해외까지도 그의 소식이 전해진 며칠 후 그가 군대 내무반에서 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만한 나이의 자식을 가진 나로서는 그렇게 마음이 짠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안정감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기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은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국 야구선수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2010년에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을 거두어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투수에 등극했던 박찬호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고의 야구선수라는 칭호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승수를 올려야 하는 그에게 압박감과 불안감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어떻게 그 불안감을 극복했을까? 108배의 힘이 컸다. 지난 회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무도 모르게 숭산 스님이 주석하던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매일 108배를 하고, 잠자기 전에 3,40분 정도 참선을 하면서 불안감을 달래며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 작은 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안타, 홈런을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집중력이 생겼다. 자신이 걱정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이 공 하나다, 안타든 승패든 현실을 축소시켜 지금 이 시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즈음 그가 일간지 기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나의 영원한 목표는 최고의 1구를 던지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삼진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며 20승도 아니고 비록 공 하나지만 1구 1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절을 통해 집중력이 증진되고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마주한 일에 집중,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108배를 움직이면서 하는 명상이라고 한다. 명상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도구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자신감도 증가된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108배다. 불안감은 현재에 마음을 집중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108배를 해보면 절을 하는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엔 온갖 생각들이 올라와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절하는 행위만 남게 된다. 몸이 힘들어지면 저절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3천배를 하게 되면 몸이 너무 힘들어져서 복잡한 생각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정화의 힘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불안해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나 확실한 변화를 이루고 싶을 때 3천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을 극복하는 그 힘겨운 행위를 통해서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3천배 통해 자신을 바꾼 청년

고등학교 때부터 108배를 해오면서 자신의 삶을 확 바꾼 젊은이가 있다. 내가 아는 젊은이 중 절 수행을 해서 가장 강력하게 변화의 최고점을 찍은 사람이다. 물리학도였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김천 수도암 새벽예불에서였다.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원고를 정리하고 있으면서 매일 새벽예불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때마다 예불에 상관없이 맨 앞자리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휴학을 하고 100일을 작정한 채 하루 3천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학생이 그것도 며칠 동안도 아니고 100일 동안 3천배를 하겠다니. 그가 왜 휴학을 하고 어떤 변화를 바라며 3천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무조건 그에게 감동했고 그 뚝심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하든 성공할 거라 믿었다. 보름 정도 머무는 동안 나는 그가 조용히 절하는 모습만 보았고, 마음 속에 훌륭한 젊은이의 이미지로 새겨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를 다시 만난 건 108배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3년 전이다.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한 그가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했다. 복학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다가 군대에 가서도 매일 절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정말 깜짝 놀랐다. 예전에 보았던 그가 아니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영화촬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그가 얼마나 핸섬해졌는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190센티의 큰 키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겁게 느껴졌던 인상이 사랑스러운 느낌마저 들 정도로 경쾌해 보였다. 작고 날카롭게 보였던 눈은 관세음보살 눈을 보는 것처럼 갸름하고 깊고 안정적이었다. 어머, 저렇게 잘생겼었나 하는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너무 멋있어 졌다’고 했더니, 씩 웃으면서 사람들이 다 그렇게 얘기한다고 했다. 만나는 동안 내내 잘 웃고 편하게 절을 하게 된 동기와 효과 등을 얘기했다.

그는 고3 때 가출을 했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한창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부모님 두 분의 불화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많았던 그가 ‘도저히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어머니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어머니는 받아주지 않았다.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그게 싫으면 집을 나가라고 했다. ‘아, 집을 나가는 방법도 있었구나.’ 숨통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날 밤 경상도에 있는 집을 나왔다. 친구에게 차비를 빌려 서울로 왔다. 서울 역 근처, 목사님이 집을 나온 청소년들을 돌보아주는 곳을 찾아갔더니, 목사님이 충고했다. 그래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부모님께 말씀드려놓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고. 어머니께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전화했다. 바로 몇 시간 만에 어머니가 달려왔다. 집으로 가자는 어머니께 안가겠다고 버텼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 다 좋다. 엄마 소원 하나만 들어다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지난 번 글로 소개했던 선림사 보우법사다. 보자마자 자비한 관세음보살 같은 큰어머니를 만난 듯했고, 법사님의 지도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어떤 딱딱한 것이 차츰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닿기만 해도 쓰라렸던 상처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닌 아픔이 꼭 부모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기억할 수조차 없이 먼 시간으로부터 있어왔다는 것도 깨닫기 시작했다. 절을 할수록 자신의 업장이 가벼워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108배부터 시작해서 시간만 나면 3천배를 했고, 3천배 백일기도, 군대에 가기 전에도 3천배를 백일 동안 했다. 그 뿐 아니다. 군대에 가서도 상관에게 얘기해서 매일 3백배를 할 수 있도록 부탁해서 꾸준히 절을 했다. 그리고 군대에 있는 동안 전공을 바꾸었다. 평소에 공부하고 싶었던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들어가기 어렵다는 한국예술종합대학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7년 정도 절을 하니까 고통의 긴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 백 마디의 그 어떤 말보다 108배가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박원자 작가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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