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달빛 삼다 自月明

원철 지음|휴 펴냄|1만 4천원

이 책은 산사서 돌아와 다시 도심 생활을 시작한 ‘노마드 스님’ 원철 스님〈사진〉 산문집이다. 스님이 일간지와 여러 종교매체에 응제(應制)받아 쓴 글들을 ‘자월명’이란 주제에 맞게 모으고 다듬었다. 이 책에는 도시와 산속을 오가는 수행자로서의 일상과 경전 및 선어록에 대한 탐구, 그리고 자연의 이치와 공간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깨어 있는 마음’ ‘조화로운 삶’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스님의 시선과 담박한 무심(無心)의 언어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자기 성찰, 그리고 반짝이는 깨우침을 함께 전하며 현대인의 꽉 막힌 가슴의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

“스스로를 달빛삼아 자신을 의지하라”

저자 수행, 경전과 선사들 이야기 모아

밖으로는 남과 다투지 않는 덕 펼쳐라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란 말이 있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을 이르는 말로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라고 하였는데 한역하면서 ‘섬’을 ‘등불’로 바꾼 것이다. 원철 스님은 평소 이 ‘등불’을 ‘달빛(月)’으로 바꾸어 ‘자월명(自月明)’이라 읊조리곤 했다. 즉 ‘스스로를 달빛 삼아 자신을 의지하라’고 한 것이다. 지혜의 광명으로 온 세상을 밝히고, 비 개인 뒤 하늘의 달처럼 맑고 밝은 모습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깨우치며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어둡고 깜깜한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달빛 삼아 지낸다면 그나마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신간 제목을 ‘스스로를 달빛 삼다’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철 스님은 서문을 통해 “응제(應制)라고 했던가. 임금이 신하에게 글을 의뢰하는 것을 말한다. 그처럼 이 책은 대부분 상전(?)들의 부탁으로 쓴 글이다. 청탁받은 그날부터 전전긍긍이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마감이 가까워질 무렵 섬광처럼 ‘글 고리’가 스쳐 지나간다. 책을 읽다가 신문을 보다가 혹은 차를 마시다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멍때리다’가 번쩍하는 그 고리를 낚아채야 한다. 이후 씨줄과 날줄이 얽히며 사이사이에 살이 붙는다. 탈고한 뒤 잠깐이나마 해탈의 경지를 맛보기도 한다. 글로 인하여 윤회(輪廻)를 반복한다고나 할까.”라며 글쓰기의 고뇌를 토로한다. 스님은 응제 때마다 지나가는 혼잣말로 ‘절필’을 운운하다가도 한편으론 혹여 모자랄까 봐 틈틈이 글을 써두어 곁에 감춰두곤 했다. 이런 자기모순으로 인해 한 권의 소박한 책을 만들 수 있었노라고 말한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수행자 원철 스님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자유로운 생각, 수행에 대한 의미와 경험담을 통해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돌아보게끔 안내한다. 강요나 따끔한 충고의 말은 없다. 유쾌하고 때론 거침없는 언어로 세대를 아우르며 마치 한지에 먹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눈을 뜨게 할 뿐이다. 또한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졌던 불교 경전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선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흥미롭게 전하면서 주옥같은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끔 한다. 자기다움, 인연의 소중함, 독서의 즐거움, 공부의 이유, 관계의 조화, 진정한 수행, 중도(中道)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스님은 숨겨진 보석을 찾듯 이 세상을 둘러싼 자연과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배인 집, 가장 이상적인 수행 공간인 절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해와 달, 산과 바람, 하늘과 땅 등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건축을 읽어내면서 자신을 돌보는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에 대해서 되짚어본다. 해박한 지식과 문학성을 기반으로 한 스님의 사색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랑말랑한 언어도 없고 힘든 인생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거나 짚어주지 않는다. 다만 “좁쌀처럼 흩어놓은 많은 글 가운데 한 편 아니 한 줄이라도 남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구절이 있다면 장강(長江)의 청량한 물 한 모금 역할은 할 터이다. 잡서(雜書)의 한 줄이 남들에게 한 줄기 섬광으로 이어진다면 때로는 경서(經書)나 사서(史書) 노릇을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스님의 말처럼, 공감을 일으키는 책의 한 구절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옛 선인들의 지혜를 법신(法身, 불법을 완전히 깨달은 부처의 몸) 삼는다면 하늘의 달처럼 밝고 맑은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철 스님은 책 속에서 조언한다. "알고 보면 삶이란 그렇게 단순치 않다. 살다 보면 우애 때문에 금을 버려야 할 경우도 있고, 삼 때문에 금을 버려야 할 상황도 만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애도 살리고, 삼도 버리지 않으면서, 금까지 손에 쥘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복잡한 셈법이다. 도를 닦는다고 할지라도 의식주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더불어 대중 생활을 하면서 의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애가 필요한 부분에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인정을 베풀었고, 옷이 필요한 자리에는 가차 없이 삼을 선택했으며,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할 때는 과감하게 금을 풀었던 것이다. 고정된 법칙이란 절대로 없다”라고.

▲저자 원철 스님은?

경남 합천 해인사서 1986년 머리를 깎고, 해인사, 실상사, 은해사 등서 수행하고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3년여에 걸쳐 〈선림승보전〉 총 30권을 국내서 처음 번역한 스님은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중과 함께하는 경전법회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월간 해인〉 편집장을 맡으면서 〈불교신문〉 〈달마넷〉 등의 칼럼을 통해 ‘글 잘 쓰는 이’로 통한다. 시원시원한 글과 해박한 경전지식으로 인해 빼놓지 않고 읽어볼 만한 칼럼으로 손꼽힌다. 현재 조계사에 머무는 스님은 산과 도시가 둘이 아니라고 믿고, 도시에 살아도 산에서 머물던 마음을 늘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가끔 마음의 고향이며, 젊은 학인시절을 보낸 해인사로 가서 산승의 향기와 색깔을 듬뿍 묻혀 도심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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