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의 힘

아수라의 왕 비마질다라는 그 어머니가 임신한 지 8천년 만에 태어난 괴물이었습니다. 머리는 아홉 개였고 천 개의 눈이 있었습니다. 손이 999개였습니다. 다리는 여덟이었습니다. 입으로 불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이 괴물은 진흙과 연뿌리만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비마질다라의 어머니도 머리 999개, 눈이 천 개인 여자 괴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괴물이 어머니 괴물에게 말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요, 상대가 예뻤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괴로워하며 말했습니다.
“이 어미가 괴물이니 네가 괴물로 태어났구나. 누가 괴물에게 시집오려 하겠니? 음악의 신 건달바 왕의 딸이 있단다. 모습이 예쁘고, 살결이 백옥같다는구나. 몸에서 털구멍마다 음악이 흘러나온단다. 가서 청혼이나 해보자.”

어머니 괴물이 건달바 왕을 만났습니다. “우리 아들 비마질다라를 잘 아시지요? 모습은 나를 닮았지만 아수라의 왕인걸요.”

이렇게 말을 시작한 것이 혼인이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8천년 뒤에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아비는 닮지 않고 어미만 닮아서 예쁘기가 천하제일이었습니다. 얼굴이 8만 4천 가지로 잘 생겼습니다. 앞모습이 8만 4천 가지로 잘 생겼고, 뒷모습도 8만 4천 가지로 잘생겼습니다.

“별 가운데에 환한 달 같구나. 참으로 잘 생겼다. 내 딸”하며 괴물 비마질다라가 좋아했습니다.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왕 제석이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쁜 상대가 있다면 결혼을 해야겠다. 얼굴, 앞모습, 뒷모습이 각각 8만 4천 가지로 예쁘다면 짐작이 돼. 아수라왕과는 자주 전쟁을 해 온 터이지만 그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

마음을 먹은 제석이 아수라왕 비마질다라에게 청혼 편지를 썼습니다.
― 비마질다라 대왕님!
하늘나라 제석궁에 사는 제석입니다. 대왕님께 25만 2천 가지가 예쁜 공주님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공주님께 청혼을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제석 올림 

제석은 청혼 편지를 신하의 손에 들려서 수미산 아래쪽, 아수라의 궁전으로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은 비마질다라가 씩 웃더니, 답장을 썼습니다.
―내 딸을 예쁘게 봐 줘서 고맙네. 그런데 혼인을 허락하기에 앞서 조건이 있네. 제석은 하늘 왕의 복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자네가 가진 그 많은 보배궁전에서 칠보궁전 하나만 나에게 줄 수 있겠나? 그렇게만 해 준다면 혼인을 그리로 정하겠네.

비마질다라는 계급이 낮은 귀신의 왕이지만 예쁜 딸을 미끼로 해서, 감히 하늘 왕 제석에게 말을 낮추었습니다. 제석은 그래도 좋다며 신통력으로 칠보궁전 하나를 아수라의 왕에게 보냈습니다. 좋은 칠보궁전을 갖게 된 아수라 왕은 혼인을 허락했습니다. 잘된 일일까요?

이로부터 아수라 왕의 딸은 하늘나라 왕비가 돼, 하늘 궁전에서 살게 됐습니다. 아수라의 궁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전부터 제석 임금을 모셔 온 많은 천녀들이 아수라의 딸 마음과 눈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저것들이 나를 밀어내고 내 자리를 차지하면 어쩌지?’ 그렇게 생각하니 곧 그렇게 될것만 같았습니다. 급했습니다.

싸움 잘하는 아수라 군사로 남편을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수라의 딸은, 아버지 아수라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 아버지! 우리 제 서방, 길들여주세요. 주위에 미인들이 너무 많아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녀들과만 어울립니다. 그 버릇 고치게 해주세요.
 
딸의 편지를 받은 비마질다라는 화를 불끈 내며 사위에게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 제 서방에게 경고하네. 천녀들을 곁에 두지 말 것. 내 딸 아닌 여자들과는 말을 하지 말 것. 아니면 전쟁일세. 알겠나?
 
경고장에는 제석이 들어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비마질다라는 사위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수십만 명, 아수라의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 제석궁으로 아수라의 군사가 개미 떼처럼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제석은 신하와 군사 우두머리를 제석의 궁전 선법당으로 불렀습니다. 부처님 쪽을 향해 향을 피우며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반야심경〉에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특히 끝 구절에 힘이 있지요. ‘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진언이며, 가장 밝은 진언이며…’ 부터 끝까지에 힘을 주어 외어봅시다. 적군이 물러날 겁니다.”

한 사람 신하의 말에 모두 〈반야심경〉을 소리 맞춰 독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미산을 내려다봤습니다. 〈반야심경〉 독송 소리에 맞추어 사왕천 저 밑으로 칼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활을 들고, 칼을 들고, 창을 들고 개미떼처럼 수미산을 기어오르던 수십만 아수라 군사가 칼 비를 맞고, 수미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반야심경〉의 힘에 못 이긴 것이었습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수십만의 개미떼, 아수라의 군사가 수미산 밑 아수라 나라로 쫓기고 있었습니다. 〈반야심경〉의 힘이 이기고 있었습니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 육비품(六譬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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