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복승분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아 어의운하. 시제항아사 영위다부.)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須菩提 我今實言告汝.若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아 상다무수 하항기사.수보리 아금실연고여.약)

有善男子 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 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得福多不.須

(유선남자 선여인 이칠보 만이소항하사수 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득복다부.수)

菩提言. 甚多 世尊.佛告.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於此經中 乃至 受持四句

(보리언. 심다 세존.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어차경중 내지 수지사구)

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수보리야,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 수와 같이 그렇게 많은 항하가 있다면 네 생각에 어떻하냐.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모든 항하만 하여도 수 없이 많사온데 하물며 그 모래이겠나이까.”

“수보리야, 내 이제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노니,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저 모든 항하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널리 보시 했다면 그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말해 준다면 이 복덕이 앞에서 말한 복덕보다 더없이 뛰어나리라.”

보시(布施)는 베풀다, 흩어 버리다 라는 뜻으로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머물고 있거나 소유하고 있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분별망념이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시해야 하는가?

보시하면 복덕을 받으므로 복덕을 받기위해 보시하는 것입니다. 보시는 싫어하는 일이고, 복덕은 좋아하는 일입니다. 지금 싫어하기 때문에 좋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혹하기 때문에 깨달으려고 하는 것으로 미혹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없으며, 고통스러우니 편안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편안하다는 것은 고통으로 인한 것이고, 지금 깨달았다는 것은 미혹으로 인한 것이며, 지금 좋아하는 것은 싫어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로 아는 것이 참된 보시입니다.

그러므로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운 칠보를 보시한 복덕이 참으로 많지만 이 복덕은 무너지는 허망한 과보의 복덕일 뿐입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말해 준다면 이 복덕이 앞에서 말한 복덕보다 더없이 뛰어나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금강경 가운데 사구게를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말해 준다면, 그는 반야바라밀의 뜻을 알고 참된 보시를 하는 사람이므로 이 사람의 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 허망한 과보의 복덕보다 더없이 뛰어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시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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