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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공양주’로 사는 이유… 인재불사나무심 김순이 보살(나무심장학회 이사장)
아미사 공양간은 지장재일 행사로 인해 분주했지만, 김순이 보살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후덕한 인상처럼 학생들을 위한 그녀의 마음은 넓고 넓었다.

장기기증하며 기부 발심

30년 전 기증약정 후 기도 시작

“참 의사, 미래부처님 나오도록”

전국사찰 다니며 공양주 봉사

수락산 영원암서 1000일 기도

중생 위한 회향의 삶

공양주로 모은 아파트 기부

학교 측 월세수입으로 장학

동국대 선센터 건립에도 참여

의예과에 시신 기증도 결정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명한 스님도 혹은 재산이 많은 부자도 아니다. 사찰에서 공양을 짓고 청소를 하는, 사찰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공양주’ 보살이다.

이 공양주 보살은 평생동안 모은 전 재산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부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몸도 동국대 의예과에 해부실습용으로 사후 기증을 약속했다.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원이였다.

이 공양주 보살은 공양주로 살게 된 이유도 동국대 경주캠퍼스 선센터 건립기금 50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을 멋지게 회향하는 것이 목표라는 김순이(64) 나무심 보살의 얼굴에는 행복만이 가득했다.

 

학생들은 미래 구원할 ‘미륵불’

김순이 보살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자 돌아온 답변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조금의 망설임없이 김순이 보살은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러차례 부탁을 하던 중 마지막으로 김순이 보살을 알게 된 인연이었던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한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보살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소개해 주셨어요.”

수화기 건너편에선 “아~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김순이 보살은 웃음소리 섞인 순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소개했다면 해야죠. 미륵불이 소개했는데 안 하면 되겠어요. 나를 위해선 안 해도 학생이 원하면 해야죠. 미륵불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서원으로 살고 있는데….”

김순이 보살은 학생들을 미륵불이라고 칭했다. 미래를 책임지고 있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김순이 보살은 부처님 마음을 전해 불심의 씨앗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위하고 있었다. 매일 학생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순이 보살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마음을 못 낼 것이 없다고 했다.

이윽고 5월 13일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인터뷰 장소인 대구 아미사는 지장재일 행사로 인해 분주했다. 공양간에서 일하는 김순이 보살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다. 김순이 보살은 공양주 역할이 곧 기도이며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도구라고 했다.

“곡식 낱알 하나가 사람 몸에 들어오려면 천일 동안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부처님께 올린 공양미는 불자님들이 기도하며 정성껏 마련한 시줏돈으로 준비합니다. 그들의 기도이며 마음인데 어찌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많은 참배객들이 떠나고, 남겨진 그릇을 설거지하고 정리정돈을 하니 이미 해가 중천을 훌쩍 지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쉬지 않고 일하던 김 보살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공양간에서 고무장갑을 벗자 지난 세월을 보여주듯 거친 손가락 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공양간에서의 어려움이 그 손 하나에 그대로 느껴졌다.

그녀에게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장학금은 어떻게 줄 수 있었느냐고 묻자 “돈이 하나? 마음이 하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보살은 돈이 많은 부자라야만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올해 4월 13일 나무심장학회 장학증서 수여식

기도가 이끈 회향의 삶

기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놀라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김순이 보살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기부했다는 것이었다. 거제도에 위치한 아파트는 목이 좋아 현재 시세가 3억원이다.

“거제도에 살던 아파트가 있었어요. 공양주를 하며 모은 돈으로 매입했던 건데 동국대에 기부하려니 융자금이 잡혀 있어 마음에 걸리더군요. 그래서 땅이 237평이 있어서 그걸 팔아 먼저 아파트 융자금을 갚았어요. 그리고 아파트를 동국대에 기부했죠. 학교 측이 아파트를 팔지 않고, 월세를 줬고, 그 수익금으로 학생들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전재산인 아파트를 기부한 김순이 보살은 대구 아미사 내 공양주 처소에 기거하고 있었다. 3평 남짓 방에는 밤색 낡은 옷장 하나와 긴 옷걸이가 전부였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는 방 안에 있던 라면 박스 속에서 주섬주섬 보리수 나무를 꺼내 보여줬다. 50cm 높이의 보리수 나무에는 부처님이 수행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장학생이 스리랑카에서 직접 골랐고, 동국대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한 것”이라며 마치 학생들을 본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는 3억원의 아파트보다 학생들의 마음이 더 커 보였다.

동국대가 선물한 보리수나무를 소개하는 김순이 보살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 아이들 같아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주고 싶어요. 학업에 방해가 될까봐 따로 연락 하진 않아요. 조용히 몰래 초콜렛을 두고 오고 빵을 보내기도 합니다.”

김순이 보살이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한 도반의 인연으로 장기기증을 하게 된 것이 그 출발이었다. 30여 년 전 김순이 보살이 서울 수락산 영원암에서 기도할 무렵이었다.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도반이 장기기증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장기만을 기증하려 했지만, 그 취지를 듣자 마음이 움직였고, 시신기증까지 약정했다.

“죽고 난 다음 제 몸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의예과에서 학생들을 위해 쓰인다고 하더군요. 사후 저의 존재에 대한 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많은 학생들이 제 몸으로 공부를 하며 마음이 불편할까봐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정말 참 공부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의사, 미래 부처님이 나오도록 말이죠. 계속 기도를 하다보니 만행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남은 삶을 회향의 삶으로 살자고 결심하게 됐죠.”

그녀는 그때부터 공양주로서의 삶을 살았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2011년부터 나무심 김순이 보살의 법명을 딴 나무심 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불교학과, 한의학과, 의예과 학생 각 2명에게 100만원씩 총 6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고무장갑을 벗자 지난 세월을 보여주듯 거친 손가락 마디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미래세대에 희망을 심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순이 보살은?
1953년 서울에서 6남매 가운데 2녀로 태어났다. 수락산 영원암에서 기도 수행 정진하고 공양주 생활을 하며 모은 재산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희사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2011년 김순이 보살의 법명인 ‘나무심’을 본 따 나무심장학회를 설립했다. 매 학기 불교학과, 한의학과, 의예과 학생 1명씩 연간 총 6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김순이 보살은 장학금 뿐 아니라 동국대 경주캠퍼스 선센터 건립기금으로 5000만원을 약정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의예과에 해부실습용 시신 기증 약정도 했다.

“부처님이 계산하며 살진 않았잖아요?”

기도와 함께하는 이타행

타인 위한 마음에 길 위 나뭇가지

암자까지 가지고 와 ‘나무심’ 법명

“먼저 치웠으면 넘어지는 이 없어”

노후 걱정 시선에 “희망심기 중요”

남을 위해 치운 나뭇가지, 법명이 되다

그렇다면 ‘나무심’이란 법명은 어떻게 생겼을까. ‘귀의하다’의 의미를 지닌 나무심이냐고 묻자 김 보살은 웃으며 말 그대로 산에 혹은 들에 있는 나무(木)라고 했다.

“절에서 처음 공양주를 할 때 받은 법명입니다. 30년 전 공양주는 무보시로 활동하는 것이었어요. 집에 있으면 새벽에 전화가 옵니다. 봉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1000일 기도를 겸해 공양주 활동도 했습니다.”

서울에 있었던 김순이 보살은 수락산 영원암에 매일 같이 갔다. 걸어서 한시간 거리지만, 산세가 험해 매일 암자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손에는 공양을 짓기 위한 재료가 들려있었다. 또 영원암에서는 불을 지피는 것조차 어려웠다.

“1000기도의 원을 세우고 산을 오르는데 하루는 내려 오던 아이가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먼저 저 나뭇가지를 치웠으면 저 사람이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을텐데…’라고요. 길에 넘어진 나뭇가지를 가지고 암자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공양을 지었습니다. 이를 암자에 있던 사람들이 보고 저를 나무보살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별명이 그대로 법명이 됐습니다.”

김순이 보살은 낮에는 영원암에서 공양주로 지내고, 밤이면 불자택시기사들의 법당에서 기도를 했다.

“부처님 앞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불퇴전을 맹세하고 또 다른 나무 한 가지를 붙잡고 남을 미워하지 않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마지막 나무 한 가지를 붙잡고 모두가 하나 되어 행복하도록 해달라고 기원했습니다.”

평생을 법당에서 보낸 그녀에게 가족은 없었을까. 김순이 보살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000일 기도를 하게 된 것도 바로 그 과정에서의 괴로운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가정 문제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아이를 두고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너무 억울해 견디기 힘들었죠. 아이들이 자라 저에게 함께 지내자고 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1000일 기도를 마친 김순이 보살은 전국사찰을 다니며 공양주 일을 했다. 어느 사찰은 공양주 보시금이 3개월간 나오지 않았다. 100만원도 안 되는 보시금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보시금을 다시 공양물을 사는데 쓰기도 했다.

2004년 김순이 보살은 원주 상지대 앞에서 분식집을 차렸다. 하지만 다시 마음껏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가게를 정리하고 2010년까지 전국을 다니며 기도를 시작했다. 양산 통도사, 경산 팔공산 갓바위, 철원 도피안사, 하동 쌍계사 등에서 기도정진을 이어갔다. 인도에 가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기도 했다.

“기도하고 공부하는 동안에는 필요한 것이 없어요. 기도하며 지낼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더라구요. 기도를 하다보니 다시 회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불자들은 ‘이 공덕이 널리 일체에 미쳐 나와 중생들 모두가 다음 생에 극락국에 태어나 다함께 무량수불을 친견하고 불도를 이루어지게 하여지이다’고 법회에서 회향게를 외우잖아요. 이 서원이 제 서원이 됐습니다.”

아미사서 기도하는 김순이 보살

 

마음 밭에 심은 희망 씨앗

4월 13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는 나무심장학회의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다. 이날 전달식에 참여한 김순이 보살은 장학증서를 전달한 뒤 학생들과 점심공양을 함께 했다. 식사 후 그녀는 학생들에게 목욕도구 세트를 선물했다.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산만해지면 씻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차분하면 모든 것에 길이 보입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성불임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학생들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는 일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30년 전 수락산 영원암을 오르며 갖고 갔던 나뭇가지 수는 3개였다. 우연일지는 모르지만 한 학기마다 그녀가 장학금을 전달하는 학생도 3명이다. 나무를 잡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사람들은 어리석다고도 했다. 지금도 학생들을 위한 장학활동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 준비는 하지 않는다며 걱정한다. 하지만 김순이 보살은 말했다.

“회향이 계산하는 건가요? 부처님은 계산하시며 세상을 살지 않으셨어요. 멋지게 인생 회향하고 가세요. 미래세대의 마음에 희망을 심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성미 기자  jayanti@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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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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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살아보세 2017-05-23 20:48:00

    훌륭한 삶을 사시네요.
    스님들이 이 분의 행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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