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재현의 위기론으로 본 4차 산업혁명- 이도흠 한양대 교수
[진단]재현의 위기론으로 본 4차 산업혁명- 이도흠 한양대 교수
  •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5.0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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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해체 시대, 新 윤리·가치관 필요
이도흠 한양대 교수

알파고 충격 이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수십 종의 단행본이 쏟아져 나오고 대다수의 학계와 단체들이 토론회를 하고 언론도 연일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담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경제적, 산업적, 실용적인 측면에 치우치고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등이 지금까지의 인류문명과 판이하게 다른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 서야 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에 인문학, 그 중에서도 재현의 위기(the crisis of representation)론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의 밝음과 어둠에 대해 살피고 대안을 제시한다.

예전에는 두 남녀가 사랑하는 현실이 있고 이를 재현한 소설과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청년들이 드라마와 영화 속의 사랑을 따라서 행한다. 현실이 영화나 드라마 텍스트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텍스트가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9시 뉴스에서 빙송사 리포터의 발언과 현장의 동영상을 듣고 보며 그를 믿지만, 그것은 조작인 경우가 많으며 조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기자나 방송사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 시선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똑같은 시위 장면이라도 경찰의 뒤에서 영상을 촬영하면 시청자 또한 경찰의 시선에서 ‘과격한 군중들의 행위’들을 바라보며, 군중의 뒤에서 촬영하면 군중의 시선에서 ‘공권력을 남용하여 무고한 시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로 바라보기 쉽다.

흑인을 폭력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흑인에 대한 백인의 편견을 낳고 이것이 결국 흑인을 폭력적이게 한다. 이처럼 재현의 위기론이란 현실이 미디어나 텍스트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디어나 텍스트가 현실을 구성하고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거나 전도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이론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가상과 실제 현실이 뒤섞이고 전도된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게임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http://secondlife.com)’에 접속해 제2의 인생을 산다. 자신이 중증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어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축구경기를 하고 애인과 여행을 가고 이웃과 가든파티를 한다. 이곳에 상당수 나라들이 대사관을 설치하였고 삼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업들이 지점이나 은행, 마트 등을 냈다. 이처럼 매트릭스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면 가상이 현실을 조정하게 된다. 몇 년 전에 한 아이가 자기 동생을 여러 차례 칼로 찔러 죽였다. 게임 중독에 걸린 그는 며칠이 지난 뒤에도 자기 동생을 죽인 것이 아니라 게임 속의 악마를 죽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가상은 가상일뿐이다. 가상세계에서 남북통일을 천 번 만 번 한다 하더라도 실제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실지견(如實知見)’하지 않으면 게임과 실제를 착각하여 동생을 죽이는 것과 유사한 전도현상이 난무할 것이며 인간은 이제까지 맞은 어떤 것보다 더 심한 혼란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기계처럼 차가운 냉혈한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반면에 따스한 인간은 모두가 좋아한다. 우리는 기계와 생명을 구분하고 생명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면 기계와 생명의 구분이 없어진다. 흔히 생명에 대해 다섯 가지 요건을 근거로 정의한다.

생명이란 물질대사를 하고, 자기 복제 내지 번식을 하며, 다른 생명 및 자연과 상호작용을 하며 발달하고 진화를 하며, 그 자체로 정교한 조직체계를 갖추었으며 자율적인 자기결정을 한다. 강한 인공지능을 기계에 결합하면 이 기계는 생명의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구사하게 된다.

지금 21세기도 인류가 맞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생명의 위기다. 매년 전 세계에서 6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도살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만 매년 식용으로 1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한국에서 매년 10억 마리의 닭을 도살하고 있다. 국제자연보존연맹(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조사대상 동물 중 38%의 생명이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발표하였다.

무엇보다도 생명이 권력에 의하여 관리되고 통제되고 있다. 여기에 생명의 구실을 모두 할 수 있는 인공지능기계나 로봇이 출현한다면, 우리는 기계와 생명을 무엇으로 구분하고 어떤 생명성, 생명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불교는 물 속의 미생물마저 죽이지 않기 위하여 여수낭(濾水囊)을 가지고 다니며 물을 걸러 마실 정도로 생명을 존중한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4차 산업이 몰고 올 생명과 기계의 경계 해체시대에 맞는 윤리와 철학을 세우고 이에 따라 인공지능 등의 발전을 제한하지 않으면 인류는 파국을 맞을 지도 모른다.

인지자본주의에서는 생명 자체가 기술적 개입의 대상이 됨으로써 생명은 자본이 된다. 인류의 공동 유산인 유전자와 생명이 특허를 매개로 독점적인 상품이 되고 있다. 2015년 세계 제약 시장의 규모는 자동차나 반도체 시장의 2~3배를 능가하는 1조720억 달러(약 1,286조 원)에 달한다.

태양을 특허내는 것이 가당치 않은 것처럼 38억년 동안 생명들이 진화하여 이룬 것들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부당하다. 그럼에도 셀레라 게노믹스 등 굴지의 생명기업들은 한 기업에서만 5,00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하였다. 이처럼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문제, 인간의 수명과 건강, 질병의 문제에 대한 자본의 장악력은 점점 심화될 것이다.

4차 산업이 디스토피아를 가져올 것인가,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이를 결정하는 핵심은 세 가지다. 하나는 시민들이 재현의 위기에 현혹되지 않고 여실지견하며 권력과 자본에 올바르게 맞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의 논리가 4차 산업혁명의 생산과 분배를 관장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법, 제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명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정치에 맞서서 생명을 보듬고 살리는 생명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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