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난 게 없기 때문에 죽을 것도 없느니라!
이 세상에 난 게 없기 때문에 죽을 것도 없느니라!
  • 대행 스님
  • 승인 2017.04.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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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뚱이 가지고 한 철 날 동안에 이 도리를 꼭 알아야

(지난 호에 이어서)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 지수화풍이라는 것이 우리 생명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면서도, 지수화풍을 가지고 살고 지수화풍을 먹고 살면서 지수화풍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이 몸뚱이가 허망하다고 생각하고 이럽니다. 자기 몸뚱이를 이렇게 좀 곱게 생각해서 어떻게 잘 보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씨를 갖는 것도 부모한테 효도요, 자기 자성신한테 효도예요. 이것도 없어지고 망가지면 좋지 않아요. 이것도 효도가 될 수 없어요.

사랑을 하되 함이 없고 돈을 가지되 가짐이 없고

쓰되 씀이 없고 하되 함이 없어서 걸림이 없이 여여함이라.

이 도리를 알라.

그러니 지수화풍이 있는 반면에 여러분, 어때요? 전기가 어디서 들어오고 광력이 어디서 들어오고 전력이 어디서 들어옵니까? 그리고 통신은 어떻게 하고요. 그 원리가, 바로 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광력이라든가 모든 게 대두돼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도 뭐, 레이저 광선을 쐰다 뭐 어쩐다 이러죠? 그것보다 더 빠른 것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요. 속에 의사가 있어서 만약에 레이저 광선을 가지고 광력을 쐐 준다면 아프지도 않고 아주 슬기롭고 머리도 안 빠지고 좋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거를 약을 먹고 그걸 쬐면 머리가 빠지고 온통 딴 데까지, 딴 부위까지 마비가 되는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100% 다 됩니까? 30%밖에는 안 되죠. 그런데 여러분이 지수화풍 그 바탕이 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있어서, 그래서 ‘자력’ 이러죠. 자력이라 하지 ‘자석’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물질은 자석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을 깊이 해서 ‘불교라는 것이 무언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그 여유를 좀 가지셨으면 하고요. 불교라는 게 무언가. 내가 있는 게 불교요 내가 사는 게 불교고, 지금 내가 움죽거리는 게 불교야, 전부가. 그런데 그게 왜 무슨 상표 붙듯이 꼬리표가 붙어야 합니까? 꼬리표가 붙은 게 아니에요. 상품이 아니란 말입니다. 불교라는 상품도 아니요, 기독교라는 상품도 아니요, 가톨릭교라는 상품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컵이라는 상표는 붙어 있지만 누구라도 이 컵으로 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셔야죠.

참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는 거, 근본만 지금 얘기했는데요, 이 근본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것이 잘못됐다면, 내가 여러분한테 잘못 말씀해 드렸다면 반문하세요. 여러분이 반문하실 때에 서슴없이, 함이 없이 하세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세요. 대나무 귀신 방귀씨가 “너 찾았느냐?” 하니까, 대나무 귀신 방귀씨를 모르거든. 그랬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깨쳤나 안 깨쳤나, 익었나 안 익었나 그걸 보느라고요, 박을 심어 놓고 바늘로 콕콕 찔러 보는 격이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방귀를 뀌었다면 소리는 났는데 온데 간데가 없죠. 그러니 그와 같이 질문을 해도 질문한 사이가 없고 질문을 받아도 받은 사이가 없다 이 소립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그 도리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에 따라서 참, 저 우주의 모든 거와 더불어 우리도 나올 때 물주머니에서 나왔듯이, 고향이 물주머니듯이, 또 우리의 고향이 지수화풍이듯이 말입니다. 부처님 법이라고 해서 저 부처님이 부처님이 아닙니다. 어느 부처님이 소 앞을 지나가는데 이랬더래요. 소가 한 열 마리쯤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갔답니다. 그래서 그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가는데 그 의식을, 문 밖에 쩍 들어가는데 그냥 의식을 뺐더래요. 그러니 남의 손에 고삐가 쥐여서 그냥 끌려 들어가기만 했지 아픈 거를 느끼지 못했더랍니다. 그 소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사람한테 참 고마움을 느끼면서 죽어 갔죠.

그런데 죽기 전에 미리 그 의식을 빼서 자기한테다가 넣어도, 열 명뿐만 아니라 만 명을 집어넣는대도 두드러지지 않고 빼내도 줄지 않는다는 그런 엄청난 사실이 있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서 죽는대도 그 소 모습을 벗어나는 거, 그 소 모습으로다가 있다면 그게 물이 들어서, 소로 살던 그 습이 있어 가지고 소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사람도 물질화돼 가지고 물질로서 살던 이 습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니까 거기에 걸리지 마시고, 그렇다고 해서 물질화돼 있는 거를 다 버리고 살아라 이런 게 아닙니다. ‘사랑을 하되 함이 없고 돈을 가지되 가짐이 없고, 쓰되 씀이 없고 하되 함이 없어서 걸림이 없이 여여함이라. 이 도리를 알라.’ 이 소립니다, 지금!

그래서 예전에도 큰마누라, 둘째 마누라, 셋째 마누라, 넷째 마누라로 비유해 놓고 “얘, 큰마누라야! 나 죽게 됐는데 너하고 같이 가자.” 그러니까 “나는 당신하고 못 가요. 난 안 가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둘째 마누라더러 또 그러니까 “나도 못 갑니다.” 그러더라는 거죠.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니까 큰마누라는 “추우면 당신이 추우니까 입었고, 더우면 당신이 시원하게 입었고 그랬지, 내가 입혀 달랬느냐?” 그거죠. 허허. 또 둘째 마누라는 돈이란 말입니다. 그래 같이 가자니까 “당신이 좋아서 나를 쫓아다녔지 내가 좋아서 당신을 쫓아다닌 건 아니지 않느냐?” 이러더랍니다. 셋째 마누라더러 물어보니까 “난 당신 죽어 가는 데 배웅은 갈 수 있지만 아주 같이 갈 수는 없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공동묘지나 또 그렇지 않으면, 저기 저 태우는 데 뭐요? 화장터! 화장터까지만 가겠다고 하더랍니다. 자식들과 부인이 되든 남편이 되든 그것뿐이거든요. 그러니 권속들이죠. 그게 셋째 마누라거든요. 그래 권속들은 다 거기밖에는 못 간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넷째 마누라더러 물어보니까, 그거는 주인공이거든요. 자기가 죽으나 사나 같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인 문제와 자기의 그 근본적인 문제, 이게 합류화돼서 항상 같이 다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신이 같이 가자고 해도 그렇고 가지 말자고 해도 그렇고 항상 그냥 같이 있노라고, 걱정 말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는 변소에 가도 자기가 거기 있기 때문에 자기를 도와주는 자기가 있는 거죠. 누가 도와주지 않아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야, 먹는 거 대신 먹어 줄 수 있습디까, 사랑한다고? 예? 또 사랑한다고 대신 죽어 줄 수 있습디까? 대신 자 줄 수 있습디까? “아이고, 당신 피곤하니 내가 대신 자 줄게!” 하하하. 이렇게 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보, 당신 피곤하니 드러누워 있어. 내가 대신 똥 눠 줄게!” 이럴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도 여러 가지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혼자 왔다가 이 세상을 좀 더 알고 혼자 간다면 ‘우리가 가고 오는 것이 둘이 아닌 까닭에 이 세상에 난 게 없기 때문에 죽을 것도 없느니라.’ 이런 도리가 나옵니다. 영원한 것이죠.

그래서 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나무는 자기 뿌리를 못 보지만 우리 인간은 보듯이, 깨달은 사람은 사람의 뿌리를 모두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 모든 걸. 즉 말하자면 컴퓨터에 입력해 놨으니까 한 번만 탁 누르면 거기서 다 나와요, 그 사람 살아온 게. 그렇듯이 그걸 숙명통이라고 한답니다. 천체통신기는 천이통, 또 타심통은 탐지기로 비유했고 신족통, 이건 팩스로 비유했습니다. 천안통, 이거는 천체망원경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체망원경이라고 한다면 물질적인 망원경은 한계가 있지만 이 심안의 천체망원경은 한계가 없는데 모든 걸 탐험을 해도 도가 아니라고 한 것은, 우리가 이런 모두를 알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내가 자유스럽게 할 수가 없다면, 먹을 수가 없다면 이건 도가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신통에서도 벗어나야, 들이고 내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거 또 안에서 나가는 거, 또는 거기서 통신을 하고, 거기에서 딱딱 정리해서 통신을 하는 겁니다. 이게 누진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레이더망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좀 더 마음을 넓게 쓴다면, 기독교니 가톨릭교니 뭐, 알라신교니 하고 야단법석 하는 거는 우리가 어느 지역이라고 문패를 해서 붙여 놓은 거와 같다 이겁니다. 그 지역이라고 안 갈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우리가 지역 싸움을 하지 말고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서 서로 지견을 써서 좀 더 한마음으로 조화를 누려야지, 우리가 공용으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거다 저거다 싸울 필요가 뭐 있나 이겁니다. 좀 더 유순하고 좀 더 그렇게 합일점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참으로 꽃다운 인생을 자유스럽게 느낄 수가 있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요 몸뚱이 가져 나왔을 때 잠시 잠깐 한 철 사는 겁니다. 우리 중들이 한 철 나듯이, 요거 한 철입니다. 이 몸뚱이 가지고 한 철 날 동안에 그 도리를 좀 알아야죠.

그러니 오늘 이렇게 같이 앉아서 여러분과 같이 이렇게 말씀드리고 그런 것을 요다음에 자세히 한번 또 들으시도록 하고, 또 들으실 때에 그때도 질문을 하시면요, 여기서 자세한 게 아주 꿰어져 나옵니다. 질문을 안 하면 아우트라인만, 이렇게 이렇다더라 하는 것만 알지 실질적으로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뭐든 질문하세요.

질문자2(여) 큰스님,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 도중에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즉시 제도한다 그러셨는데, 그러면 짐승들이 사람으로 화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부처가 왜 부처인 줄 아십니까? 예를 들어서 소가 사람을 보면 저항력을 느끼듯이, 짐승이 사람을 보면 달아나갑니다. 그러나 내가 그 짐승 속에 들어가서 여러 짐승을 만날 때는 저항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를 건지려도 개구리가 내가 돼야 개구리를 건질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소가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소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소를 그대로 좀 연장을 하려면 내가 소 속에 들어가야 하고, 또 소로 연장할 게 없죠. 무명을 치고서 그대로 의식을 해서 내 컴퓨터에다 넣으면 그냥 전부 알아지는 거죠. 인간이 살아나가는 그 도리가 알아져요, 그냥 의식이. 그러면 그냥 그대로 사람으로 환생시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환생을 시키려고 시키는 게 아니죠. 그대로 그렇게 돌려서 내놓으면 눈도 떠지고 귀도 터졌으니까 사람한테로 다시 가서 환생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나 눈도 뜨지 못하고 귀도 뜨지 못하면 그냥 의식만 가지고 참, 소나 말이나, 즉 잠자리를 하는 데 그냥 들어가죠. 그렇게 그냥 들어가서 그 모습을 가지고 그냥 나오죠. 그러면 그 모습에서 천 년이 가나 이천 년이 가나 벗어날 수가 없죠. 그래서 사람 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질문자2(여)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이거는 제가 평생 생각하고 있는 문제인데요,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두 아들이 부모를 총으로 쏴서 죽인다든지 또 아버지가 아들을 불에 태워서 죽인다든지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저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렇게 되면 그런 인연으로 해서 자기 몸을 버리는 사람, 그러니까 죽게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하고 항상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큰스님 예전에 이런 말을 묻더군요. 어느 스님이 나한테 이렇게 물었어요. 첫째, “귀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하나 묻고요, 그다음에 묻기를 또 “그럼 죄가 없는 어린애가 서로 놀다가 연탄집게로다가 이 정수리를 찍어서 죽였는데, 어린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느냐? 그건 어디에 속하느냐?” 하고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을 했죠. “모르고 죄를 지은 거는 모르고 받게 마련이고, 알고 짓는 죄는 알고 받게 마련이다.” 그런 말을 했죠.

질문자2(여) 그런데 제가 하는 거는, 물론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총으로 쐈으면 그렇지마는 그 받는 부모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고….

큰스님 그럼 그걸 비유해서 한마디 할까요. 옛날에 거미와 깻벌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집 가장자리에 거미줄을 치고 거미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또 깻벌레라든가 무슨 벌레가 요만큼씩한 게 씩씩씩씩 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건 다 갉아 먹습니다, 그냥 뭐든지. 그런데 농사를 지으려니까 그거를 안 죽이고는 안 되겠어서 두 영감 마나님이 그냥 깡통에다가 오줌을 담아 가지고는 뭐 그냥 반 깡통씩, 한 깡통씩 잡아서 죽였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많이 죽였던지 말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영감 마나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그 집 자식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아시겠어요? 그 한번 이렇게 감춰지는 걸 못 보셔서 그러세요. 이 돌아가는 것만 보시지 50%로 돌아가는 건 못 보시기 때문에 그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두 아들을 낳았거든요. 하나는 거미고 하나는 깻벌레인데 아주 뭐, 금이야 옥이야 하고 기르는데, 하루는 스님네가 탁발을 하러 오셔서 뭐라 그랬느냐 하면 “아하! 이거 안됐구먼!” 하시더랍니다. 그래 “왜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댁의 아들이 두 형제가 있죠?” “예.” “내가 말을 할 테니 믿으시렵니까? 당신은 죽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꼭 3일만 있으면 당신 부부는 그냥 그 두 형제한테 뜯어 먹히고 맙니다.” 하면서 얘기를 쭉 해요. 그러니까는 “그러면 스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무얼 했느냐 하면, 철망 있죠? 철망 요렇게 좁게 해 가지고 쪽 둘러놓고는, 예전에 왜 병아리 기르면 철망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듯 그렇게 해서 둘러놓고, 거적을 둘러놓고 그 가운데다가 겻불을 피워서 두 군데에 놓으라고 그랬어요. 놓고 아들 둘이서 글방에 갔는데 기다리고 있다가 오기 직전에 딱 항아리 속으로 전부 들어가서 항아리 제 뚜껑을 자기가 덮고 그러곤 들어가서, “엄마! 아버지! 배고파.” 하고 아무리 울어도 그 착을 놓고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 소리 없을 때 인제 나오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한 시간을 그렇게 막 그냥 부르짖고 그러다가 한 반시간은 또 욕으로 나올 테니까 그때 보면 알 거라고 하거든.

그래서 그냥 그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해 봤어요. 그냥 “엄마! 아버지! 어디 갔어?” 하곤 그냥 “배고파, 밥 줘!” 하곤 그냥 난리가 났거든요. 난리가 났는데도 가만히 있었더니 나중에는요, “얘, 시간이 늦어 가는데 큰일 났구나.” 둘이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고, 지금 이 고비가 넘겨지면 우리 원수를 갚지 못할 텐데 어떡하면 좋으냐?” “지금까지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그러고 막 울면서 그냥 이 연놈들 어디 갔느냐고, 응? 그 수많은 우리가 그렇게 몸부림치고 죽어 갈 때 어떻게 된 줄 아느냐고 그러면서 그냥 막 울거든요.

그러니까 항아리 속에서 소름이 쭉쭉 끼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항아리에 있으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죽은 듯이 가만히 숨도 못 쉬고 있는데, 한 시간 반쯤 아무 소리가 없더래요. 그래서 나와 보니까요, 그게 다 그 스님의 도력도 있겠죠. 그냥 한쪽은 깻벌레고 한쪽에는 거미인데요, 철망에 매달려서 겻불에 그냥 죽어 가는데, 그 많은 것을 다 그 스님이, 즉 말하자면 인과응보로서 그렇게 되는 거를 양쪽을 다 풀어 주고선 그냥 사람으로서 다시 인도환생을 시키기 위해서 그 의식을 빼느라고 전부 한군데서 죽게 했답니다.

질문자2(여) 그러면 만약에 스님이 오셔서 그렇게 지시하지 않으셨으면 그 자식들한테 죽음을 당해 가지고요, 그러면….

큰스님 그렇죠.

질문자2(여) 이 자식들은 다시 깻벌레가 되지 않고 그냥 사람으로서 그대로 생활이 되는 건가요, 그럼?

큰스님 깻벌레가 되지 않는 거보다도 그 부부에게 원수를 갚을 때에 깻벌레로나 거미나 그걸로 그냥 끌어당기겠죠.

질문자2(여) 그러면 큰스님, 우리가 지금 현재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는 그 인연은 그러면 그, 전생이라고 그러나요? 그런 인연에 같이 뭉쳐 가지고….

큰스님 그렇죠, 예. 어저께가 없으면 오늘이 없듯이. ‘어저께 댁하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만나지 않았을 것을….’ 하는 거와 똑같죠. 우리가 그렇게 연결돼 나가는 거죠. 우리는 연결이 없으면 화목도 없고, 연결이 없으면 싸움도 없고 그럴 거니까요. 그래서 자기 한 대로 또 이렇게 받고 돌아가는 거죠.

질문자2(여) 감사합니다.

큰스님 예, 그래서 그 아버지 어머니에게 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랬거든요. 오늘 당신 둘이 자는데 이 집에 전부 불이 일어나서 타게 되면, 그 두 형제가 그렇게 불을 놔서 타게 만들어 놓고 죽으면 그냥 거기에 달려들어서 전부 그냥 뜯어 먹어 가면서 같이 죽어 간다고요. 그래서 전부 깻벌레를 만들고 거미를 만들어서 그렇게 그 원수를 갚는다고요.

그러니까 우리 자신들이 그 50%에 관한, 돌아가는 일들을 모르고 있다 이거죠. 자기가 지금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그렇게 하는데, 좀 더 삼가서 한번 굴려서 생각해 보고, 욕을 하더라도 생각해 보고 거기다 맡겨 놓고 좋은 말로 부드럽게, 타이르더라도 부드럽게 타이르면 좋지 않겠느냐 이거죠.

질문자2(여) 큰스님, 자꾸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한 가정에 그런 전생의 인연으로써 태어날 경우가 있다면, 그게 전생에서 그 원을 풀지 못하고, 그러니까 원수를 갚는다는 그런 마음의 연속이 된다면, 만약에 그 부모들이 자기의 주인공한테 맡겨서 일을 했으면 그 깻벌레의 그 원수 되는 마음도 막을 수가 있는지요?

큰스님 그러니까 이 도리를 알면 깻벌레 의식을 그냥 자기한테로 넣어서 인간의 그 모든 것을 알게끔 해 주죠. 그럼으로써 그 불바퀴에 한번 넣어서 굴려서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삼십이상이 구족하며 삼십이응신이 모두 응해 주신다, 마음이 응해 주신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으로서 나툰다 이런 거죠. 이 몸에 들어 있는 이 생명체가 전부 보살이 돼서 털구멍을 통해서 천백억화신으로 나툰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어떠한 악이라도 잘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지난번에도 회사를 경영하시는 분들이 망하게 됐는데 어떤 두 사람이 자꾸 도둑질을 해 가지고 그 회사를 망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증거는 잡을 수가 없는데 그 사람이 하는 건 틀림없기 때문에 내가 그랬죠. “그 두 사람한테다 다 맡겨라!” 이랬어요. 그래서 맡기면서 그러라고 그랬죠. “너희들 둘밖에 이 회사를 일으킬 수가 없고, 너희들 둘밖에 도둑을 막을 수가 없고, 너희들 둘밖에 이 모두를 해 나갈 수가 없다.” 그러고 다 맡기고 돈을 벌어도 그 사람한테 더 줄 수 있는, 그리고 승진을 시키고 그러라고 그랬더니 지금 회사가 잘되고 있어요. 그날부터 도둑을 안 맞아요. 허허허.

그러니까 그와 같이 당신도 당신 배 속에 지금 어떠한 파워가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리고 당신, 나라는 이 존재를 아주 귀신처럼 그냥 높이 두지 말고 나라는 존재, 이 나라는 존재가 하상 뭡니까? 이 나라는 존재요? 저 가랑잎과 같아요. 한 철 나는 거. 한 철 났다가 가을이 오면 한 철 떨어지는 거와 같은 거거든요. 그런데 이 몸 있을 동안에 공부하는 게 그렇게 귀중해요. 이것이 없으면 부딪침이 없으니까 공부 못 해요, 상대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자기 주인공을 자기가 믿고 내부에서부터 파워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래서 진화되도록…. 그러면 이 의식 자체가 보살이 돼 가지고 자꾸 남도 건져 줄 수 있는 천백억화신으로서 화하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다니는 회사든지 무슨 어떠한 생각을 하든지 하여튼 자기 살기 위해서 남도 살리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 나도 살고, 이렇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부의 국토부터 잘 다스리십시오. 그리고 몸을 좀, 집을 좀 조용히 쉬고요. 그럼 이것으로써 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0년 4월 22일 모건힐지원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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