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이 물든 강물

서성림 유고시집|천년의 시작 펴냄|9천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가족 뒷바라지에 늘 종종 걸음인 일상부터, 손주들 대할 때면 한없는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 등은 우리 평범한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이 시집을 쓴 서성림 시인도 그랬다. 여기에 서 시인은 하나 더 있었다. 내면 깊이 간직한 소녀다운 순수함. 이런 감성들을 서 시인은 씨줄과 날줄로 꿰어 시(詩)라는 옷을 지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지난해 지병으로 작고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고운 말들이 시어로 온전히 남아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서 시인의 시를 진지하게 읽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장녀인 정주은씨는 이번 시집의 머리말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이렇게 고백한다.

“그동안 번잡한 일상에 치여 마주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시들을 이제 당신 떠나신 세상에 덩그러니 앉아 읽고 있습니다. 더 이상 어머니와 마주할 수 없지만, 시를 통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미처 몰랐던 당신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남겨주신 이 시들이 삶을 살아가다가 지칠 때 꺼내 읽고 다시 힘을 내게 하는 크나큰 위로이자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청계산 기슭 남보다 먼저 피어나/고요한 천지에 함박웃음으로/꽃잎 펼치고/까만 꽃술 자랑하며/하늘하늘 행인을 유혹한다/‘나 예쁘지 않아요? 쉬었다 가세요-’/간드러진 콧소리에/발길 멈추어/들여다보고 만져보고/철없이 아름답던/먼 추억 그리며/마냥 서서 바라본다.” - <진달래>中에서

지난해에 작고한 서성림 시인의 유고시집 〈노을빛이 물든 강물〉이 출간됐다. 이 시집은 우리들에게 평화, 안정과 그리고 안심을 일러준다. 아무 곳이나 펼치고 가만히 숨을 고르며 읽어보면 시가 어려워야 한다는 것도 꾸미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며, 시가 거창하게 인류와 사회에다 대고 외칠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집의 해설을 한 김용택 시인은 서 시인의 시를 한마디로 이렇게 평한다. “서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우리들의 어지러운 삶이 아주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이렇게 살면 되고 이렇게 살으라는 말을 아주 쉽고도 간단하게 해놓는다”고. 해설을 듣고 보니 이 시가 그렇다.

“또닥또닥 잠을 깨운다/무슨일이 있으려나/ 비 때문에 잘못 없으려나/출근길 막혀/지각 사태 나면 어쩌지/아침 까치 깍깍 울어대더니/그래도 좋은일이 있겠지” - 〈새벽 빗소리〉 中에서

김용택 시인은 “그렇다고 이 시집의 시들이 삶의 안정과 평화만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번뜩이는 통찰위에 번뜩이는 시적 표현을 해내기도 한다”며 “떨어지는 꽃잎은/떨어져 누운 꽃잎보다 아름답다”라는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즉 안정된 삶의 바탕위에서 바라보는 삶의 찬란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자기의 삶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또한 살아 생동하는 삶의 진실 앞에서 시인은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삶의 진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하다.

그의 시에서 겨울 잔디밭에 떨어진 잔잔한 햇살을 보았고, 바람 부는 강변의 억새들을 보았다. 잔물결을 보았고, 텅 빈 산을 보았다. 삶이 어찌 애잔하지 않겠는가. 삶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삶이 어찌 그립고, 또 그립지 않겠는가. 이 시집은 한 사람의 생이다. 그 생을 한군데 이렇게 잔잔하게 모았다. 이 또한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이 따로가 아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 있는가. 우리는 한 사람의 삶 앞에 기쁘고 슬프고 또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하게 된다.

참 다행이다. 그는 갔지만 그의 영롱하고 위안이 되는 시어와 시심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어서 말이다. 물론 시를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더 그가 그리울 수 있겠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시를 통해 영원히 살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고 떠났다. 시가 바로 서성림이고, 서 시인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저자 서성림은?
1951년 서울서 출생한 서성림 시인은, 1975년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0년 〈교단문학〉으로 등단했다. 前 한국문인협회 회원, 前 학여울문학회 회원, 前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前 이대문인협회 회원을 역임했고, 2016년 작고했다. 시집으로는 〈초여름의 향기〉 〈무지갯빛 바람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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