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왕사 불적답사길

현담 스님 지음 / 영덕불교문화발전 / 연구원 펴냄 / 3만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고려 말의 뛰어난 고승인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 호는 강월헌(江月軒)인 선사는 나이 21세 때 문경 공덕산 묘적암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했다.

2008년 나옹왕사 기념사업회 결성
대승교화 큰 가르침 계승발전 목적
전국 사찰에 흩어진 발자취 답사
행장, 관련 학술지 발표글도 수록

전국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 양주 천보산 회암사 석옹화상 회상서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그 때 나이가 24세(1344년)이다. 이후 나옹선사는 원나라 연경으로 건너가 법원사서 인도승 지공선사의 지도를 받고 자선사 처림의 법을 잇는다. 광활한 중국을 주유하고는 공민왕 7년(1358)에 귀국한다. 오대산 상두암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으나 공민왕과 태후의 청이 하도 곡진해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 지도에 나선 곳이 황해도 신광사이다. 이 무렵 중국의 홍건적은 쇠퇴해가던 고려를 향해 개경까지 침입해와 노략질을 일삼았고, 공민왕은 한때 노략질을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천도한 일이 있을 지경이었다. 나옹선사는 홍건적이 쳐들어와도 오직 설법과 참선 지도에만 전념해 선사의 위엄에 눌린 도적떼는 저도 모르게 부처님께 향까지 사르고 돌아갔다고 전한다.

나옹선사는 혼자라도 절을 지키겠다 다짐했는데 한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선사에게 절을 지켜달라고 이른다. 과연 선사가 있는 신광사엔 홍건적이 나타나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다고 한다. 홍건적의 난이 진압되자 왕은 선사에게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 라는 긴 이름의 벼슬을 내렸고, 왕은 또다시 불교계의 중흥을 부탁한다. 이때 선사가 불교중흥의 터전으로 삼은 곳은 순천 송광사였고, 마지막 원력을 펼치는 장으로 회암사를 찾았다.

나옹선사의 지도력은 적극적인 현실참여, 실천하는 선으로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앉아서 참구하는 수행법을 멀리하고 편력의 도정에서 중생을 만나고 제도했다. 염불은 곧 참선이라 했으니 〈가사문학총람〉에 수록된 선사가 지은 참선곡은 오늘까지 널리 수행의 지침으로 여겨진다.

나옹화상의 고향인 영덕군에서는 지난 2008년 7월 31일에 비영리 법인단체인 ‘나옹왕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고려 공민왕의 스승인 나옹왕사의 깨달음을 통한 대중교화의 큰 발자취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나옹왕사 불적답사길〉의 저자 현담 스님〈사진 위〉도 사업회 위원으로 위촉돼 왕사의 깨달음과 중생교화 원력행을 가슴속에 새기게 됐다고 밝힌다.

머리말을 통해 저자이자 영덕불교사암연합회 회장 겸 서남사 주지인 현담 스님은 “영덕서 정진하는 수행자로서 고려시대 공민왕과 우왕의 스승인 나옹왕사의 불적답사순례길을 따라 전국을 순례하며 나옹왕사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불적답사로 신심을 다져 오늘 뜻 깊은 출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는 불적답사 순례사찰 일람을 비롯해 나옹화상의 행장, 북한 사찰을 비롯해 전국의 나옹왕사 관련 사찰의 역사, 나옹왕사 관련 학술지 발표 글들이 수록돼 있다.

한편 저자인 현담 스님은 1989년 입산 출가해 제방 선원서 수행 정진했으며 위덕대대학원서 불교학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또한 스님은 현재 영덕경찰서 경승, 포항교도소 종교위원, 나웅왕사기념사업회위원, 영덕지역사회복지위원, 불교문화발전연구원장, 영해318만세운동기념사업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불교포교와 수행 정진에 매진중이다. 저서로는 〈소통으로 가는길〉(2008년), 〈영덕폐사지불적답사와 불교현황〉(2014년), 〈불교신행성전〉(2015년), 〈그 깨달음의 언어〉(2016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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