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가 살린 사람들

세밑에 멀리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선림사에 다녀왔다. 친구가 1080배 백일기도 회향을 그곳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축하 차 함께 간 것이다. 저녁예불 뒤 친구의 마지막 기도에 동참해서 오랜만에 1080배를 했다. 300배를 하고 10분씩 쉬며 세 시간 정도 절을 하고 나니 가슴속 저 밑에서부터 잔잔한 기쁨이 올라왔다.

오랜 인연의 초등학교 동창과 절을 하게 된 것도 즐거웠지만, 처음 백일기도를 시도한 친구가 큰 장애 없이 끝까지 완주해주어서 정말 기뻤다.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좋은 방향으로 길을 찾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하고 큰 힘이 생겼다는 친구의 고백은 108배를 처음 권유한 나로서는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

참회의 공양으로 108배 서원
300일간 1만배 정진 진행
청소년 상담·포교에도 앞장

다음 날, 바람이 세차고 눈발까지 휘날렸지만 추운 새벽 예불과 함께 하는 108배는 집에서 하는 절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상큼하고 생기 있게 느껴졌다. 나처럼 새벽예불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에겐 절에서 그것도 새벽에 하는 108배는 언제나 감동이다. 새벽예불을 하기 위해 세 시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별빛, 코끝으로 쏴 하고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 어둠 속 나무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새벽예불에서 얻는 고마운 보너스다. 법당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광활한 우주에 나 홀로 있는 듯 한 그 적막감은 언제나 나를 벅차게 한다.

법당과 요사채 하나가 전부인 선림사엔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 스무 명 이상 있다. 오늘은 그분들과 함께 정진하는 도우 법사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 오십 대 중반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쯤 해인사 방장이셨던 법전 스님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김천 수도암에 가 있을 때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에 법당에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이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들어와 절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다들 절도있게 절을 잘하는지 교육을 잘 받은 신행단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가운데 조용히 앞줄에 서서 절을 하는 여성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는데, 몸을 움직이며 절을 하는데도 온 몸이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정한 얼굴과 조용한 몸가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느낀 그녀의 압도적인 아우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변함 없다.

그녀가 한 신행단체를 이끄는 법사이며, 수도암에 정진하러 왔다가 법전 스님을 만나 뵙고 화두를 받아 정진, 300일 동안 하루에 만배씩 정진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30대 초반에 그녀가 108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처님 전에 이렇게 서원했다고 한다.

“부처님,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 1080배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목숨이 다할 때까지 매일 108배를 열 번하겠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대학에 다니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속세로 다시 내려온 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살던 즈음이었다. 부처님께 올릴 수 있는 그 많은 공양 중에 왜 1080배로 공양을 올리려했는지 물은 적은 없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참회의 공양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참회는 모든 기도의 시작이니까.

그녀가 하루에 1080배를 하다가 만 배 기도를 시작한 것은 사십대 중반쯤이다. 하루 만배의 정진은 이미 사람의 힘을 넘어선 경지다. 적어도 3천배를 한번 쯤 해본 사람은 24시간 안에 만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일인지 안다. 오래 전 나도 도반들과 함께 하루 만배에 도전한 적이 있다. 성도절 전날이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 힘든 고행 끝에 도를 이루신 날을 기념하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10여 명쯤 되는 도반들이 절을 시작했는데, 5천배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7천배쯤에 이르러 ‘어머, 이러다 죽겠네!’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쉬는 방에 들어와 쓰러질듯이 누워버린 기억이 있는데, 어떻게 하루도 아니고 300일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1만배를 했다는 말인가.

하루에 만 배를 하려면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과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 그리고 두어 시간 쉬는 것 이외엔 절만 해야 한다. 글쎄, 그런 상황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는데 하루 두어 시간 쉬고 걷기만 하는 것과 같을까?

처음 100일 동안은 집에서 절을 했는데,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초죽음이 된 엄마를 보고는‘부처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하며 절하는 엄마 곁에서 울며 300배씩을 했다고 한다. 절을 시적한지 100일 뒤 짐을 싸서 수도암으로 올라갔다. 절에서 해주는 밥을 먹고 절을 하니까 훨씬 수월했다. 나머지 200일 동안 무사히 절을 마치고 회향했는데, 당시 수도암에서 그녀가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가 절을 하던 당시 수도암 주지 소임을 보며 그녀를 외호해주신 원만 스님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하루에 그 많은 절을 하려면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다가와 절을 하는 방법을 묻거나 하면 하던 절을 멈추고 친절히 가르쳐주는 걸 보고 놀랐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독하게 만배를 하더군요. 보통 분이 아니라고 느꼈죠. 먹는 것부터 기도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저도 힘껏 외호해드렸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300일 정진을 하고 난 다음 그녀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그녀의 곁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정진하고 있고, 그동안 그녀의 지도를 받아 108배, 3천배를 하고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며 미루어 짐작해볼 뿐이다.

한번은 그녀가 이끄는 법회에 우연히 참석한 적이 있다. 한 3~400명은 족히 모였을 것이다. 대구에 새로 지은 어느 절 법당을 빌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법회를 하는데, 100여 평 정도 되는 법당 공간이 모자라 복도 밖까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것을 보았다. 어느 법회처럼 스님이 나오셔서 법문을 하거나 법사인 그녀가 대신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는 시간도 없었다. 삼귀의례를 하고 금강경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절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전날 저녁에 들어와 밤새도록 3천배를 하고 조용히 법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인데도 어느 야단법석에서보다 더 큰 힘이 느껴졌다. 그 차분하고 격이 있었던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 선림사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며칠에서 몇 달씩 머물며 기도를 하다 간다. 방학이면 초등학교 학생부터 중고등학교 학생, 대학생, 청년, 어른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거나 홀로 왔다가 절을 하고 간다. 올 겨울 방학에는 마산에 사는 중학생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하고는, 남은 시간엔 절 앞마당에서 공을 차며 놀다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108배를 해오던 아이들이라고 한다.

“굳은 표정을 하고 온 아이들도 며칠 절에 머물며 절을 하고 나면 잡초가 말끔히 사라진 밭고랑처럼 얼굴이 훤해지고 푸른 하늘로 튀어 오르는 축구공처럼 가볍고 명랑해져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녀는 일정하게 짜인 프로그램을 내놓지 않는다. 각자 환경과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근기를 보아가며 108배, 1080배, 3000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 알아서 자유롭게 보내도록 한다. 아름답게 변해가는 지리산의 사계절 풍광을 만끽하며 자유롭게 지내다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늘 그들에게 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절을 하고 간 아이들과 청년들은 크고 작은 일들을 의논하고 싶을 때면 큰어머니와 같은 그녀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낸다. 하루에도 수십 통이 넘는 문자를 받는 그녀는 한 번도 빠짐없이 따뜻한 답장을 보낸다.

그녀의 가장 큰 관심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포교다. 맑은 영혼으로 있을 때 108배를 하는 것이 좋은 인성이 형성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고민을 털어놓고, 108배를 하고 난 다음 자신감을 얻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모든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빛나는 영혼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자식들의 일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아무 걱정 마세요. 그 아이들은 이미 완전한 부처인 걸요’라고 말해준다. 그 말이 얼마나 진실하게 느껴지는지, 걱정이 태산 같던 부모들의 딱딱한 마음이 봄눈 녹듯 한다고 한다.

한번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처녀를 부모가 데리고 왔다. 절을 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에게 맡기고 갔다고 한다. 그녀는 내 자식처럼 곁에 데리고 있으면서 절을 시켰다. 밥을 먹다가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은 다반사고 주위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절을 하러 온 젊은 사람들에게 보살펴주도록 부탁도 하고, 꾸준히 절을 시킨 지 몇 년, 지금은 어머니가 경영하는 약국에서 일을 도와줄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취직을 앞둔 청년들이 절을 하고 난 다음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려 시험을 치른 뒤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평범한 일에 속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108배를 함께 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모습도 선림사에선 자주 볼 수 있다.

일 년에 몇 차례 선림사에 가서 나는 그녀를 만난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힘을 얻고 싶을 때나 지리산의 밝은 햇살이 그리울 때 그곳을 찾는다. 저녁 예불을 하고 한가한 시간에 그녀와 함께 차 한 잔을 나누며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와장창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나를 구속하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내가 다른 모양의 틀에 갇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이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를 보면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108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켰는지 느끼곤 한다. 청정한 한 마음이 한 국토를 변화시킨다는 열반경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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