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불교계, 청년식당 운영-학원가 청년들에게 무료로 식사 제공

지역상권 배려한 자비행  / 매주 수·목 저녁식사에
조미료 안 쓴 건강식 대접 / 인기 높아져 100인분 확대

후원·봉사자 자긍심 ‘UP’  /  지자체 지원 없이 자립 운영
사찰·신행단체 연계 모범 / “취업소식이 제일 기뻐”


12월 8일 빛고을자연사찰음식체험관 청년식당서 정안사 봉사자들이 청년들에게 손수 마련한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 대의동 일대. 흔히 광주의 고시촌으로 통하는 이곳은 사회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위해 학원과 고시원서 청춘을 보내는 청년들의 고단함이 짙게 배어있는 곳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부터 대기업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찾는 대학생, 그리고 학비를 마련하고자 각종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들까지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청춘들로 가득하다. 꿈과 희망, 좌절 등 복잡한 청춘의 일상이 펼쳐지는 이곳에는 엄마의 정성이 담긴 ‘집밥’을 무료로 나눠주는 청년식당이 있다.
 

청년식당은 광주지역 불교신행단체인 (사)자비신행회와 증심사가 설립해 운영하는 빛고을자연사찰음식체험관(이하 체험관)에서 진행하는 청년들을 위한 무료 식당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정안사 신도들이 음식을 차린 뒤 활짝 웃고 있다.

겨울 절기 중 하나인 대설(大雪)이 지난 12월 8일 오후 3시. 대의동 체험관은 인근 학원가 청년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엄마들이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이날 메뉴는 돼지고기주물럭과 야채오징어전.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해 직접 담근 김치와 나물 그리고 후식으로 준비한 과일이 함께 차려졌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삼삼오오 청년식당을 찾기 시작한 취업준비생들은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개인접시 위에 메인 요리와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식사를 시작했다. 삼각김밥, 컵밥, 라면 등 평소 학원가에서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청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식사를 마친 청년들은 감사인사를 전하며 밥값을 대신했다.
 

흔히 무료식당이라고 하면 청년들이 출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날 청년식당을 찾은 취업준비생들은 여느 영업식당을 가듯이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며 들어섰다. 지난 연말 개점한 이후 1년 남짓 봉사자들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이제는 자연스러운 청년들의 밥집이 된 것이다.
 

‘광주 고시촌’으로 통하는 대의동에 자리한 청년식당은 20~30대 취업준비생들에게 인기만점이다.
2년 전 목포에서 올라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청년(30)은 “매번 사먹는 음식이 질릴 때면 엄마가 손수 해주는 집밥이 종종 그립다”며 “공부에 지친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주면서도 마치 친엄마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음식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과 달리 광주지역은 고시원에 개인 냉장고를 구비한 곳이 없어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들이 많다. 이에 자비신행회와 증심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청년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부모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 저렴한 음식을 찾아 전전하는 고시생과 대학생 등 타지서 객지생활 하는 청년들에게 엄마들의 정이 담긴 따뜻한 집밥을 선물하고 싶은 배려에서다.
 

당초 청년식당은 자비신행회와 증심사가 공동으로 매주 수요일 60여 명분의 저녁식사를 마련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지난 3월부터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한 정안사가 힘을 보태면서 매주 수·목요일로 청년식당 운영일을 확대하고, 식사도 100여 명분으로 늘렸다.
 

대상은 대학생과 고시원 학생 등 20∼30대 청년층으로 국한시켰다.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점심 대신 일주일에 두 차례 저녁만 제공하기로 했다. 청년들의 건강을 생각해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사찰신도들로 구성된 한 가정의 엄마들이다. 배식 봉사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으로 매주 청년식당을 찾는다. 고등학교 교사로 은퇴한 어느 봉사자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만나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봉사자들은 단지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이 나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일자리를 구했을 때 청년식당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을 바탕으로 사회에 환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섭 자비신행회 사무처장은 “자원봉사자들은 학생들이 어느 날 시험에 합격해 식당에 나오지 않으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정이 가득 담긴 따뜻한 집밥으로 청년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 꾸준히 응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취재 당일 취업준비생에게 제공된 식단
한편 청년식당은 불교 봉사활동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릴 적 불교유치원을 다닌 한 청년은 “엄마에 의해 다녔던 불교유치원이라 아직까지도 불교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는데 우연히 들른 청년식당을 통해 불교를 새롭게 보게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지난 초파일에 절에 다녀왔다”는 후일담은 스님과 봉사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연이었다.
 

청년밥상은 광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무료 청년식당이자, 전국적으로도 불교계에서 처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식당운영에 관공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전액 불자들의 후원과 사찰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다. 때문에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자긍심도 남다르다.
 

증심사와 자비신행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빛고을자연사찰음식체험관
봉사자로 참여한 정안사 김영란 신도는 “한 달 메뉴를 미리 작성해 준비한다. 메뉴는 청년들의 영양을 고려하고, 주변식당과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련한다”며 “내 자식을 먹이는 마음으로 음식준비를 한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와 제철과일을 많이 먹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청년 취업난 해결은 이제 한국사회서 가장 큰 화두다. 어려운 취업 준비에 들어선 청년들에게 불교계가 마련한 따뜻한 밥상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청년식당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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