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활짝

주경 스님 지음|마음의 숲 펴냄|1만 5천원
“천길 벼랑 끝 나뭇가지 붙잡은 손을 놓을 수 없다면 반드시 기억하세요. 결국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버림과 비움만이 미덕입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버릴 때 버릴 줄 아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놓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래야 최선의 방향으로 한 발 더 나갈 수 있으니까요.” 〈나뭇가지를 붙들고〉 中에서

숲속을 지나가는 청량한 바람 같은, 맑은 샘물 같은 책 한 권이 출간돼 슬프고 우울한 우리 마음을 환하게 씻어준다. 고승들이 쓴 선시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꽃피우는 이야기 〈마음 활짝〉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서산 부석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불교신문사 사장으로 재직중인 주경 스님〈사진〉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출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염불과 경문을 배울 때, 한문 게송들을 외우며 그 뜻을 생각하다보면 가슴 뭉클해 질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염불곡조가 종일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 의미가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났으며, 가슴은 한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고 고백한다.

어느 시대에나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어려웠으며, 백성들은 궁핍한 마음에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왔다. 그때마다 수행 하던 고승들이 시로 마음을 다스리고 슬기롭게 삶을 대처해가는 방향을 제시했다. 은유와 역설로 이루어진 선시에는 고승들의 깨달음이 응축돼 있다. 이 책에 실린 선시들 역시 짧은 시 한 편으로 우리 시대를 대변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현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오랫동안 즐겨 읽던 고승들의 선시를 모아 이야기를 붙인 선시 에세이이다. 인정하면 깨닫게 되는 순간의 소중함, 비우고 버릴수록 채워지는 행복,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 고되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쉼,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연습,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성찰까지 삶에서 중요한 화두 여섯 가지를 모두 담아냈다.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으라고 우리네 등을 토닥여주는 〈마음 활짝〉을 만나보자. 국가와 대통령에 상처 난 마음부터 개인의 웅크려진 마음까지 치유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저는 매일 얼굴과 몸을 씻을 때 마음도 함께 닦아내라고 권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내가 화 냈던 마음을 이 물과 함께 씻어내겠다. 너무 욕심이 많고 과한 생각, 혹은 잘못 판단한 것들을 몸과 함께 씻어내겠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한다.

집안 곳곳 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묵은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기 마련이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느새 마음에도 먼지가 쌓인다. 타인의 시선과 관점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거나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을 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타인을 시기하고 미워할 때 우리 마음에는 수북이 티끌이 쌓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라고 권한다.

마음에 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홉을 갖고도 열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친다면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자. 모든 일을 좋다, 나쁘다, 그르다, 옳다 이분법으로 결론 내며 자신을 괴롭힌다면 며칠쯤 그 상황과 생각들을 묵혀두자. 지난 일을 잊지 못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면 하나씩 적어보자. 그리고 쓸모없는 나머지 생각들도 하나씩 지워보자.

저자인 주경 스님은 옛 고승들이 쓴 선시를 통해 고단한 삶에 지쳐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준다. 구체적인 실체와 삶의 현장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강조한다. “불의를 참으며 스스로와 타협하고, 길이 아니라도 참고 건너기 일쑤입니다. 코앞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신념을 버린 적은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마이웨이’가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밝은 사회와 건강한 정신으로 향하는 ‘따뜻한 신념’이면 좋겠습니다.”라고

이 책에 소개된 64편의 선시에는 옛 고승들의 깊은 사색이 그대로 농축돼 있다. 선시는 희망의 은유이며 깨달음의 결정체이다. 우리는 선시를 읽으며 고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고, 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진리의 꽃을 피운 시대의 스승들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삶과 행복은 물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조언도 함께 전한다.

마음에도 표정이 있다. 그 표정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마음이 찡그린다면 삶은 고단함과 괴로움으로 가득할 것이고, 마음이 활짝 웃는다면 삶은 사랑과 행복으로 넘쳐날 것이다. 이에 저자는 옛 고승들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선시로 마음이 활짝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삶에 해답은 없지만 현답은 있다. 그 현답을 지금 책 속에서 만나보자.

禪詩 감상 두 편

識淺名高世危亂(식천명고세위난) 아는 것은 얕은데 이름만 높고 세상은 어지럽고 위태롭구나
不知何處可藏身(부지하처가장신) 어느 곳에 몸을 숨겨야할지 알 수가 없네
漁村酒肆豈無處(어촌주율기무처) 어촌과 주막 어디 몸을 숨길 곳 없으리오마는
但恐匿名名益新(단공익명명익신) 다만 이름을 숨길수록 더욱 알려질까 두렵네
〈경허선사〉

春有百花秋有月(춘유백화추유월) 봄에는 꽃피고 가을에는 달 밝고
夏有凉風冬有雪(하유량풍동유설) 여름에는 바람 불고 겨울에는 눈 내리니
若無閑事掛心頭(약무한사괘심두)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편시인간호시절) 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시절일세
〈무문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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