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하였는가? 지난 2주간 광화문 광장을 환하게 밝힌 100만 촛불은 화엄의 꽃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메운 촛불은 장엄한 연화장의 세계였다.

이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휘황하게 타올랐던 불빛은 국민 개개인의 촛불이자, 대한민국 전체의 불꽃이었다. 작은 촛불 100만 개가 모여 광대무변한 촛불의 만다라가 되어 어둠을 밝혔다.

어느 누구도 이 거룩한 촛불 앞에서는 삿된 생각이나 망령된 마음을 일으킬 수 없으리라. 그런데 어느 철부지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참담한 소리를 한다.

촛불은 홀로 타오른다. 심지를 자르라는 주변의 잡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방향을 바꾸려는 의도를 물리치고 스스로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힌다. 자신의 그림자가 줄어들수록 몸 안의 골은 깊어지지만 그곳에 아픔과 침묵의 눈물을 흘리며 빛을 내뿜는다. 촛불은 가장 내면화된 불이다.

촛불은 항상 수직으로 타오른다. 불꽃은 세상을 검게 물들인 뇌물, 청탁, 협잡 등의 온갖 죄악을 태우고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곧게 타오르는 불꽃은 악취를 풍기며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 인간을 바로 세워 직립인간이 되도록 활활 타오른다. 설령 촛불의 외모가 가냘프다고 심지에 심지를 맞대어도 불꽃은 제가 잘났다고 도드라지지 않고 두 불꽃은 하나로 더욱 커져서 다시 위를 향하여 비상한다.

촛불은 이렇게 소박하고 순수하다. 이런 촛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투덜거린다. 아니 울음 운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온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울음 운다. 그 울음소리를 속으로 꾹꾹 삼키며 눈물을 흘린다.

급기야 촛불의 행렬이 노도처럼 넘실거렸다. 그 파도의 심연에는 답답하고, 원통하고, 서러운 마음이 가득하였으리라. 그렇지만 어떤 폭력이나 물리적인 충돌도 없었다. 지고로 승화된 아름다운 모습이다. 연약한 불꽃은 완고함을 깨뜨리고, 부드러운 열기는 차가운 마음을 녹인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촛불은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불꽃은 불순물과 온갖 죄악을 태워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이룰 것이다. 촛불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오탁된 사회를 씻어내고 우리의 눈물까지 닦아 줄 것이다. 촛불은 내일을 향한 희망이며, 인간 본연의 심전(心田)으로의 복귀이다.

촛불 위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빛, 이 빛은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배달민족의 순결한 빛이며 동방의 빛이다. 우리는 이 고요한 빛을 보존하고, 앞으로 이어 나가도록 촛불을 밝혀야 하리라. 너와 내가 흘리는 눈물은 강을 이루고 화엄의 바다를 이뤘다. 하나 둘 모여든 작은 촛불은 횃불이 되고 화톳불이 되고 원자로가 되었다. 이렇게 손과 손에 촛불을 든 100만 시민들의 불꽃, 바로 화엄의 꽃이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한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촛불을 높이 들었다. 여기에는 내 안에 나라가 있고 나라 안에 내가 있으며 백성이 곧 나라요 나라가 곧 백성이라는,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의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렇게 광명한 화엄의 불꽃이 바람이 분다고 꺼지겠는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끝없이 펼쳐진 화엄의 바다가 바람이 분다고 마르겠는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백만 아니 5천만 국민이 한 마음으로 밝힌 화엄의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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